아파도 사랑해
두려움을 극복한 짱가가
내게 준 커다란 울림
우리 집에는 사실 짱가 이전에 가족으로 온 녀석들이 있습니다. 사고로 뒷다리 마비 판정을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걷게 된 모세. 그리고 아깽이 시절 골반이 부서진 채 안락사를 기다리다 우연히 눈에 띄어 큰 수술을 하고 지금은 잘살고 있는 레아입니다. 둘은 유달리 친하고 서로를 아끼며 챙겨주는 사이랍니다. 두 녀석은 걷지 못할 거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수술 후, 스스로 걷고 뛰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에 짱가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사람처럼 생각이 앞서 미리 걱정하고 절망하기보다 본능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어떻게든 힘든 현실을 이겨내는 자생력을 가진 녀석들이란 걸 믿었기 때문이죠. 역시 기대에 부응하듯 짱가는 씩씩하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츰 멋진 놈으로 변화했습니다.
네트 망을 타고 방문 꼭대기까지 올라 제 간담을 서늘케 하더니 아예 그걸 넘어 거실로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차츰 기력을 찾은 짱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활동적이고 발랄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청각과 후각이 더 발달한 듯 보였고, 집 안의 장애물들을 용케 피해 다니며 위험에 대해 스스로 대처하는 기특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아이의 세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었습니다. 사람처럼 복잡 미묘하지도 않고, 어떤 계산도 넣지 않는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우려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열두 시간 반에 걸친 수업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밤 열 시 반에 들어와 집 안을 정리하고 아이들 밥을 주려고 보니 짱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더니 캣타워 꼭 대기에 겁먹은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앉아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짱가를 들어 내려놓고 캣타워 발판을 보니, 언제 올라가 얼마의 시간을 그 위에 잔뜩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건지, 발판 위 한쪽엔 응가를,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온통 소변에 젖어 축축했습니다. 짱가의 배와 가슴 쪽에도 쉬가 잔뜩 묻었고, 얼굴에는 침이 가득하였습니다. 안 보이는 눈으로도 응가를 피해 그 좁은 캣타워 꼭대기 한쪽에 앉아 있느라 얼마나 애를 쓴 건지, 불러도 대답 없는 나를 온종일 얼마나 애타게 불렀을까를 생각하니 울컥했습니다.
짱가는 내가 없으면 캣타워에 올라가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내가 있을 땐 올라갔다가도 내려오고 싶으면 나를 부르는 아이였지요. 자기 발이 닿지 않으면 아무리 낮은 곳이라도 절대로 뛰어내리거나 모험을 하지 않는 아이인데 가뜩이나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날인데 무슨 용기로 그 위를 올라간 건지, 화가 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온몸이 엉망인 짱가를 정신없이 씻겼습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인데 그 날은 씻기는 내내 찍소리 한 번을 안 냈습니다. 다 씻고 수건으로 둘둘 말아 안으니 제 품에서 발발 떨었습니다. 오래오래 껴안아주고 ‘괜찮다 괜찮다’고 얘기하였습니다. 집안에 온도를 잔뜩 올리고 드라이기를 꺼내 뜨거운 바람으로 털을 말리는데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던 걸까. 그리고 얼마나 나를 원망했던 걸까... 밀려오는 자책감에 비로소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는 동안 집안에 다른 아이들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알았는지 나를 재촉하지도 조르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이 모든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을 위해 밥을 챙겨주었습니다. 다행히 짱가도 잘 먹어주었습니다. 오래오래 물을 마셨지요. 그리고는 동굴 같은 상자 속으로 들어가 등을 돌리고 앉았습니다. 미안한 마음과 속상함에 내가 짱가를 키울 깜냥이 안 되는 위인인데 내 욕심에 끌어안고 있는 게 아닌가란 자책이 처음으로 든 날이었습니다. 진즉에 온종일 옆에서 지켜 줄 엄마를 찾아줬더라면... 가뜩이나 추운 날 창문 옆 캣타워 꼭대기에서 오랜 시간 전전긍긍하고 불러도 대답 없는 날 원망하며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아이를 키우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닌가란 후회가 많은 밤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짱가는 일주일 동안 캣타워를 쳐다보지도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무슨 결심을 한건 지 슬슬 다시 캣타워 근처를 서성이기 시작했습니다, 짱가가 실수로라도 다시 오를까 봐 그 아픈 일이 또다시 되풀이될까 봐 나름 캣타워에 오를 모든 경로를 차단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듯했습니다. 언제까지 못 올라가게 막을 수도 없고 짱가가 또다시 오르지 말란 법이 없으니 몇 번의 실패를 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익숙하게 오르내리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짱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니, 조금이라도 발이 닿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발끝이라도 닿는 곳이면 조심스럽게 더듬더듬 올라가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짱가를 낮은 곳부터 오르내리는 연습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집 안 어디서든 겁먹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역시 짱가는 이름값을 하더군요. 처음엔 올려놓으면 두려워 내려오지 못해 칭얼대더니 조금씩 적응했습니다.
물론, 조급해하지 않고 짱가를 격려하고 다독이며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냈습니다. 어느덧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터득하는 짱가를 보며 저 역시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어쩌면 짱가보다 못한 인내심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쉽게 포기하거나 부정하고 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짱가와 함께 어느새 저도 성장하고 있었던 거지요.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가 제겐 커다란 울림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름도 없이 보호소에서 죽어갔을 아이였던 우리 짱가가 인연이라는 실을 따라 제게 왔다는 건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우연히 눈에 띈 것도, 처음엔 단순히 동정과 안쓰러움에 데리고 온 그 어리고 연약하던 녀석이 대수술을 참고 견뎌서 살아나 준 것도 기특하고 대견했습니다. 절망이란 건 애당초 없는 아이처럼 늘 씩씩한 긍정 덩어리입니다.
이 녀석은 용기가 뭔지, 매번 새로운 희망을 몸소 보여준 천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보통의 인연을 넘어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아닐까요?
CREDIT
글 사진 이유성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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