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 X 네이버 포스트2
리리와 나의 집
이사는 무서워! 고양이와 이사하기
리리를 구조해 집으로 데려왔을 당시에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가족들이 작은 고양이를 환영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고,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집을 구하기 전에는 예산에 맞는 집만 있으면 이사도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을 구하러 다녀보니 다른 조건이 맞아도 고양이가 있으면 계약할 수 없다는 집주인들이 꽤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고양이가 있어도 상관없다는 집을 겨우 찾아냈다. 집도 넓은 편이고 아래층이 비어있어 리리가 새벽에 뛰어다녀도 괜찮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예민한 리리를 데리고 이사하는 것도 큰 걱정이었다.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이사를 하는 동안에는 동생에게 맡겨두었고 이사를 완료하고 정리를 웬만큼 끝낸 후에 데려왔다. 이동장 안에 평소 리리가 꾹꾹이 하던 담요를 깔고 이동장 위에도 담요를 씌웠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리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사 갈 집에 대해 설명해줬다.
낯선 공간을 두려워하는 고양이에게 이사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리리는 이사 온 첫날밤, 벗어둔 내 잠바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고 이튿날 겨우 나와서는 또 행거 아래로 들어갔다. 억지로 나오게 하지 않고 주변에 화장실과 밥만 두고 기다려줬다.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었지만 여전히 멀리까지 나오지는 못했다. 3일쯤 지났을까, 퇴근하고 돌아왔더니 평소처럼 마중을 나왔고 집안 곳곳을 기웃거리며 둘러봤다.
리리를 위한 공간
가족들과 살 때는 내 방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따로 리리의 공간을 만들 수가 없었다. 화장실과 밥그릇이 거의 붙어 있는 환경에 뛰어다닐 만큼 넓지도 않아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때 리리는 책장에 올라가서 책들을 다 떨어뜨리고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자기도 했는데, 그런 기억 때문에라도 이사를 하면 제일 먼저 캣폴을 해주고 싶었다. 거실 창가에 캣폴을 설치하고 캣폴 아래에 스크래쳐를 여러 개 두어 첫 번째 리리의 공간을 만들었다.
리리는 내 마음도 모르고 거의 일주일 가까이 캣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잘못 산 건 아닌가 후회할 즈음에야 캣폴 위에 올라가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캣폴 위에서 편안하게 자는 리리의 모습을 보면 나의 마음도 평화로워진다. 신기하게도 고양이가 자는 모습은 매일 봐도 지루하지 않다. 리리가 자고 있으면 세상이 조용해지고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큰 방에는 리리가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선반을 설치했다.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리리를 상상했지만 이번에도 집사의 예상을 빗나갔다. 리리는 창밖 보는 것을 무서워해서 낮에는 구경도 하지 못하고 가끔 새벽에만 아무도 없는 조용한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그 외에도 모든 곳이 리리의 공간이 되었다. 커튼과 침구를 스크래처로 써서 구멍이 뚫리고 패브릭 소파도 리리의 전용 놀이터 겸 스크래처가 된 지 오래다.
처음에는 리리가 물건을 망가뜨리면 혼내곤 했는데 이제는 물건들을 어떻게 쓰던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리리가 위험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만이 내 몫이다. 가족들과 살 때보다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지니 리리도 훨씬 편안해 보인다. 집주인답게 위풍당당해졌다.
리리가 있어 소중한 일상
우리는 이사한 집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느새 리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예전에도 혼자 자취한 적이 있었지만 차가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늦게까지 집 주변을 서성이다 들어가곤 했는데 리리와 함께 있는 지금은 외출을 했다가도 귀가를 서두르게 된다.
리리와 나를 닮은 우리의 집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작은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리리에게 고맙다. 나 하나밖에 챙기지 못할 때는 모든 기준이 나에게 맞춰져 있었지만 지금은 늘 리리를 먼저 고려하게 되고 리리를 위해 좀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앞으로 몇 번의 이사를 함께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공간이든 리리와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다. 리리의 마음도 나와 같기를.
CREDIT
글 사진 박지은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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