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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외출냥이 : 뽀리 이야기 외출냥…

  • 승인 2018-10-10 14: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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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는 외출 중

프로 외출냥이 : 뽀리 이야기

외출냥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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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냥이 입문 1

뽀리는 성격상 외출냥이가 될 수 없는 고양이였다. 수컷 고양이라서 그런지, 원래 고양이가 그런 건지,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장소에 다른 고양이가 나타나면 용서치 않고 싸워댔다. 평화롭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온순한 고양이였다면 외출냥이로 적격이었겠지만, 그런 성격이었다면 굳이 사람이 사는 집에 같이 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길에서 태어나 인간에게 적대적이고 까칠한 고양이가 별안간 인간과 함께 살아야 했기에 뽀리에게는 길고양이 습성과 집고양이 습성이 둘 다 있었다. 새끼 때 데려온 게 아니라 거의 다 자란 상태, 6~8개월 길에서 자라온 고양이를 데려온 거라, 돌보는 입장에서 고양이의 출신과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교태롭고 느긋하여 지나가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다가가 먹이를 구걸하고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였다면 아마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여느 고양이와 비슷하게 겁보, 쫄보인 고양이였기 때문에 처음 데려 왔을 때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 했다. 집을 둘러보며 사방이 막힌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고, 사람이 사는 집을 자기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 같았다. 안정감이 생겼는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그렇게 집고양이가 될 거라 생각했다.

고양이에게 밖을 보여준 건 괜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집에서 매우 잘 지냈지만, 한 번씩 보이는 뽀리 얼굴의 그림자가 우리의 죄책감을 자극했고, 그럴 때면 괜히 밖에서 잘 지내던 고양이를 억지로 구조해 감옥에 가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생겼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기운이 없어 보이면 츄르를 주던가, 참치를 주었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뽀리를 안고 베란다로 갔다. 베란다 창문 밖으로는 경치가 뻥 뚫려, 하늘을 보기 좋기도 했고, 근처 사는 길고양이들이 햇볕을 쬐며 누워서 쉬고 있거나 자고 있는 아랫집 지붕을 볼 수 있었다. 뽀리에게 다른 고양이의 존재를 알려주며 쓸쓸해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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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양이에게 조금씩 바깥의 소식들을 궁금하게끔 만들고 조금씩 외출시키기 시작했다. 심심해하지 않았으면 했고, 길고양이 적 습성을 금기시 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빌라에 살고 있었고, 옥상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베란다가 익숙해지자 옥상에 안고 올라가 옥상 문을 닫고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게 했다. 낚시도 하고 공놀이도 했지만 뽀리는 숨바꼭질을 제일 좋아했다.

그 후로 옥상에 올라가 놀고 싶으면 문 앞에 앉아 있곤 했다. 문을 열어주면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같이 놀았다. 놀이도 놀이이지만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그 더러운 시멘트 바닥에 뒹굴다가 배를 뒤집어 햇볕을 쬐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길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살며 알게 모르게 받을 스트레스를 이렇게 해서라도 풀어주게 되는 거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 뽀리의 영역은 우리 집과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옥상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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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냥이 입문 2

첫 가출 사건의 시작은 ‘발정’이었다. 아직 집도 가족도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고 친해지는 시기를 가지기로 했는데, 그때 발정이 온 것이다. 개를 키워본 적이 있었지만 중성화 수술을 해본 적은 없었다. 키우던 개가 발정이 오면 아빠가 슬쩍 데리고 나가 결혼을 시키고(?) 오곤 했다. 그때도 어릴 적 일이라 동물의 발정 시기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발정은 우리의 무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새벽 내내 짐승의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렇게 운지 사흘이 되던 날, 그 소리를 견디기 힘들었던 우리는, 문을 열어달라고 문 앞에서 우는 고양이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옆집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도 다 들릴 정도로 방음이 안 되는 집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웃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까지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뽀리는 나갔고 집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뽀리는 다음날 아침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뽀리가 갈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우리 가족은 크게 걱정했다. 저녁까지 기다려 봤지만, 저녁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를 떠난 거라 생각했다. 가슴이 아팠다. 야생 고양이를 데려온 죄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고양이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뽀리는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꾀죄죄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고생한 것이 한눈에 보였다. 뽀리는 배가 고파서 더 돌아다닐 기운이 없었는지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차 밑에서 나오려 하지 않아 먹을 것으로 유인하여 겨우 꺼내서 데리고 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야생 고양이의 눈으로 돌아가 있었다. 집으로 데려오자 그제야 우렁차게 울어대며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첫 번째 가출은 끝이 났다.

우리는 뽀리의 중성화 수술을 그동안 조금 미루고 있어왔다. 아무리 반려동물이라지만 동물의 번식 본능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제거하는 일은 우리 가족의 윤리와 부딪혔다. 개를 키울 때도 마당에서 개를 풀어 키우면서 살았기 때문에 중성화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죄책감도 무거운데 또 다른 책임감의 무게는 우리에겐 어마어마했다. 뽀리의 발정 울음소리는 이전의 소리와 달라졌고, 죽을 듯이 울어대서 성대결절이 온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고양이 발정에 대해 검색해보면서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뽀리를 위해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고양이에 대해 무지했던 우리는 또 한 번 뽀리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두 번째 가출은 수술하러 가기 일주일 전에 일어났다. 그날 밤도 소리를 토해내듯 울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양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문 앞에서 울면 계단에 소리가 울려 퍼져 옆집은 물론이고 아랫집에도 소음이라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고양이는 이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건물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들어오겠지 하는 마음도 사흘이 지나니 사라지고, 영영 떠난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도 참 어리석게 뽀리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고 싶을 때 왔듯이, 가고 싶을 때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뽀리가 그때 번식 행위를 했을 거라 생각하고, 그 후로 몇 개월 뒤 만난, 뽀리를 닮은 길고양이에게 뽀들이(뽀리 아들 줄임말)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밥을 주곤 했다. 일주일 뒤 아침,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뽀리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팠던 것이다. 이름을 부르자 달려 나와 집으로 함께 들어갔다. 목욕을 시키고 밥을 주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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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여정, 그것은 외출냥이로의 과정

이런 과정이 어째서 외출냥이로의 입문인가.. 조금 의심스러울 수도 있겠다. 뽀리는 이때의 경험이 축적된 것인지 수술이 회복된 다음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밖을 나가고 싶어 했다. 우리는 어딜 돌아다녔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양이들끼리의 길이 있었는데, 뽀리가 길고양이들을 따라 그곳에 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배를 곯아가며 여기저기 누비며 3대 욕구를 해결했으리라 추측한다. 길고양이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전염병이 생기거나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를 만나기 전에도 그렇게 살았고, 병원 검진에서는 매우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차 사고만 당하지 않길 바라며 돌아오길 기다렸다. 이후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뽀리를 위한 조건과 기준들이 이때의 경험으로 많이 결정되었다.

처음 옥상의 경험이 외출냥이로의 실습 과정이었다면, 발정으로 인한 불가피했던 두 번의 가출은 고양이의 행동반경, 즉 지경을 넓힌 사건이 되었다. 없었어도 좋았을 가출 사건은 고양이의 까칠한 성격이 아주 조금은 무던하게 된 데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결정적으로 외출냥이로 못박게 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뽀리 묘생에 큰 사건이었을 ‘사랑’이었다.

CREDIT

글 사진 등사자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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