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LTER
나의 살던 집,
과천 재건축단지 고양이
산 생명은 집이 필요하다. 소유의 형태가 어떻든 밥을 먹고 비를 피하며 몸을 누이고 다음 날을 준비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 생명이 인간만 가리키지 않음은 당연하다.
즐겁고 소중한 나의 집
과천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이 차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부터였다. 관악산과 청계산의 품에 안긴 12개 단지 아파트 속에서 사람도 식물도 동물도 무럭무럭 자랐다. 도시였지만 마을이었고, 사각형 콘크리트였지만 집이자 고향이었다. 시간은 생명을 키웠고 추억을 쌓았지만, 건물과 시설을 낡게 했다. 사람은 깨끗하고 편리하며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원했다. 그렇게 재건축이 결정되었다. 30살 넘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으나 5층짜리 아파트와 어깨를 견줄 듯 자란 나무, 그에 기대어 살아온 동물에게는 달랐다.
떠난 사람 남은 생명
다수의 사람이 과천 재건축 현장에서 고양이를 돌본다. 그중에 현주 씨와 민수 씨가 있다. 2017년 봄에 이미 아파트를 떠났지만 그 후에도 밤이면 연어처럼 돌아와서 네 개의 면이 도로로 닫힌 단지의 고양이를 돌본다. 하루에 사료만 15~20킬로그램을 소비하는데, 35~40킬로그램을 줬던 초기와 비교하면 그간 이동과 사망이 꽤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과천 주공에서 재건축은 10년이 넘도록 떠돈 유령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는 없길 바랐고 누군가는 그 존재가 지독히도 간절했다. 그럼에도 언젠가 올 것이 확실한 이 미래를 나름 준비했다. 3년 동안 대대적인 TNR을 진행했고, 재건축이 확정된 후 6개월 동안 밥자리를 바꿔가며 고양이가 스스로 현장을 벗어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과천 주공아파트가 사람의 집이자 고향이었던 것처럼 고양이에게도 그랬다. 고양이는 사람만큼이나 아파트를 좋아했고 거기에 살고 싶어 했다. 하나의 층이 사라지면 그 아래층으로 하나의 동이 무너지면 그 옆 동으로, 지붕 없이 다 드러난 지하실도 자신의 정든 집이라고 돌아가서 잠을 자고 새끼를 낳고 젖을 먹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외면하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2017년 12월에 접어들 때쯤, 현장에는 아파트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둘은 제발 고양이들이 펜스 밖으로 나와 인근 주택가나 그린벨트 지역으로 이동하길 바랐다. 하지만 고양이는 밥을 먹으러 외부로 나왔다가도 다시 아파트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해 연말, 출입은 완전히 통제되었다. 컨테이너 현장사무소 외에 아무것도 기댈 것 없는 황량한 현장에 고양이들만 남았다. 현주 씨와 민수 씨는 그들을 위해 펜스 너머로 봉지밥을 던져 넣었다.
회귀
두 사람 모두 재건축이 끝난 아파트로 돌아올 예정은 없다.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함께 단지 고양이를 돌보다 떠난 사람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오지 않기를 선택한다 해도 아무도 둘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높이 20센티미터, 폭 30센티미터 짜리 고양이 통로로 본 허허벌판과 짙은 어둠, 날카로운 바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재건축 지역 고양이의 대책으로 사람들은 이소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포획도 문제지만, 환경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나 이소 지역 고양이와의 충돌 문제를 생각하면 결정이나 이행은 어렵다고 둘은 생각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밥을 주고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집 하나를 놓아주는 것이 전부다.
우리는 고양이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 재건축 지역의 고양이를 모두 포획해서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하여도 다른 고양이가 현장으로 찾아들 것이다. 바람이나 햇빛, 풀씨가 완전히 제거된 공간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고양이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미 파악한 개체가 현장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사람은 관공서와 조합, 건설사가 재건축 현장의 고양이를 고려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을 돌볼 규칙이나 제도가 생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일은 사람, 기업, 관공서와 아주 가깝게 닿아 있다. 그들은 현장의 상황에 민감하고, 그들의 반응에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도 섬세하게 반응한다. 이 모든 활동이 시공사와 현장 노동자, 조합, 관공서의 양해가 있기에 가능한 까닭이다.
두 사람은 이 두껍고 높은 펜스가 사라지고 고양이와 주민이 마주할 날을 기다린다. 그 만남이 연민을 일으켜 손 내밀어 줄 누군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여린 기대를 소중히 안고 오늘도 빈터로 돌아간다. 그 터에는 집이 다시 설 것이다. 사람의 꿈과 욕망, 계획을 담을 그 집의 옆에 옛집을 그리며 혹서와 한파도 묵묵히 감내한 생명들이 힘들었던 티도 내지 않은 채 있을 것이다. 민수 씨와 현주 씨의 바람처럼 그들에게 부디 연민을 느껴주기를.
CREDIT
글 김바다
사진 김민수, 이현주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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