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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태천국

  • 승인 2018-09-27 17: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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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X

고양이와 나태천국

보통의 일상에 고양이를 더해보자. 묘하게 감칠맛이 돈다. 고양이와 ‘그 무엇’에 대한 시시콜콜한 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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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지옥, 근면천국


웹툰이 원작인 영화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나태지옥’을 아시는지. 망자들은 나태지옥에서 생전의 나태함을 심판받는데, 영원히 달리는 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기실 내가 아는 모든 한국인은 나태지옥에 가려야 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늘 업무를 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을 때에도 머리 한구석에는 업무를 위한 공간을 남겨둔다. 저녁 시간, 편하게 술을 마시다 갑자기 상냥한 목소리로 “네네 부장님”하고 전화를 받던 친구의 모습을 불과 지난주에도 본 참이다.

과거에는 그러려니 했다. 사람이라면 응당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OECD 근로시간 3위 한국에 사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하지만 이 생각은 고양이와 같이 살면서 바뀌었다. 나태하면 안 된다니... 얼마나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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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태함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고양이를 보라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라면, 무릇 나태함의 정수를 맛보게 된다. 고양이라는 족속은 절대 부지런한 법이 없다. 평생을 살면서 근면 성실한 고양이는 본 적이 없다.(당신의 고양이가 바지런하다면 동물병원에 데려가세요.) 고양이들은 청소년기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우다다를 하고 사람의 손발을 깨물지만, 그것을 부지런함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지 않을까? 청소년기의 주체할 수 없는 혈기와 에너지는 종을 뛰어넘는 것이니까. 그렇게 파란만장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중성화까지 하고 나면, 본격적인 나태천국이 펼쳐진다.

면밀하게 내 고양이들을 관찰한 결과, 이들은 하루 16시간쯤 자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자는 것은 사실이나 워낙 평생을 잠만 자는 족속들이다.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그루밍을 하기 때문에, 참으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스케줄이다. 자거나 먹거나 몸을 치장하거나. 이 간결한 일과에 부지런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묘생을 허투루 쓴다는 죄책감 역시 있을 리 없다. 츄르를 내놓지 않는 인간에게 가끔 힐난의 눈초리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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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성실함 순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그 가운데서도 업무량이 많은 직업을 택했던 나는 너무나 바빴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로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도 헌납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에 사료를 주고 나가는 것도 여유롭지 않았다. 늦은 밤 집에 오면 고양이와 놀아줄 기력도 없어 지쳐 쓰러지곤 했다. 운 좋게 쉴 수 있던 어느 주말, 꾸벅꾸벅 졸던 고양이가 햇빛 냄새를 머금고 내 몸 위로 올라왔다. 분명 우리는 함께 사는데, 고양이의 이 온기를 느껴본 것이 퍽 오래간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볕 좋은 날 고양이와 나란히 해바라기 한 번 해줄 수 없었고, 좋아하는 장난감 한 번 흔들어준 지가 언젠지 까마득했다. 그래서, 나는 각성했다. 더 여유로운 일을 찾았고, 예전처럼 종종거리며 집안일을 하지도 않는다. 고양이들만 입성 가능할 줄 알았던 ‘나태천국’을 찾은 것이다. 일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은 뒤, 내 고양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길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주변의 모든 인물은 부지런하다. 하루 중 대부분 일을 하고 있거나, 적어도 일을 ‘생각’하고 있다. 아차, 이런 말 하는 나도 주말 한낮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문서를 닫고 얼른 본연의 나태함으로 돌아가야겠다. 여러분, 우리는 조금 더 고양이처럼 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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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사진 이은혜

그림 지오니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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