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라라의 가출기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원룸 계약기간을 조금 남겨두고 나는 고양이를 들였고, 고양이 모래를 버리는 문제로 건물관리인과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첫사랑 라라와 그 당시 임시보호 중이던 엘립이, 두 고양이를 데리고 작업실을 빌려서 거처를 옮겼다. 두 고양이는 서로가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도 엉덩이를 붙이고 숨어 있었다. 하루 이틀은 같이 있었지만 계속 그렇게 작업실에서 생활할 수 없어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왔다. 문을 열고 기분이 싸해서 창문을 보니 방충망이 라라의 몸 크기만큼 뚫려 있었다.
난 목소리가 떨렸고 최대한 진정하려고 애썼지만 죽을 만큼 불안했다. 전단지를 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옆 방 작업실에 계신 분에게 부탁해 전단지를 만들고, 어스름하게 밤이 오는 시간에 동네 주변을 돌았다. 세상은 고즈넉하게 여름밤을 맞았는데 나만 조용한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동네를 5바퀴쯤 돌았을 때였다. 카페 앞 계단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담 너머나 수풀 사이, 자동차 밑을 살펴보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그들 중 한 여성이 나에게 물었다.
“고양이 잃어버리셨어요?”
그녀는 매우 마음 아파하면서도 상실감을 숨긴 채 내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고양이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 거고, 다른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경계하면서 더 멀리 갈 거니 전단지를 붙이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숨겼던 상실감의 실체를 내게 말해주었다. 자신도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몇 년을 찾았지만 찾지 못 했다고.
나도 탐정이 되리라
나는 전단지를 수거해 작업실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온갖 카페와 지식인의 정보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한 고양이 탐정이 라디오에서 인터뷰한 것까지 들었다. 나도 탐정이 되리라. 내가 찾은 정보들을 정리해보면, 절대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 주변을 샅샅이 뒤져야 하고 주인의 옷이나 담요, 먹던 통조림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인터넷의 바다에서 내가 라라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다닐 때 희미하게 자꾸 방울 소리가 났다. 내가 드디어 미쳐서 환청이 들리나.......
하지만 나가보면 막상 정적이 흐르는 집 주변. 개미 한 마리도 없는 것 같은 고요. 귀뚜라미만 귀뚤귀뚤 울다가 멈췄다. 밖에 놔둔 캔도 그대로였다. 심난하게 머리를 싸매고 누워서 눈 좀 붙이려고 하면 또 들렸다. 희미한 방울 소리. 환청인가 생각해도 나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나가보면, 나뭇잎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정적. 자꾸 왔다 갔다 하니 왜 그러냐고 물어보셨다. 난 혹시 몰라 평소에는 달지 않는 방울을 라라에게 달아주었고, 자꾸 그 방울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잔고를 확인하며 고양이 탐정의 번호를 적었다. 그러던 순간, 옆방에 사는 분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방울 소리가 들려요!”
부엌 쪽에서 방울소리가 들렸다며 내가 미처 가보지 않은 작은 창문 쪽을 가리켰다. 라라는 멀리 떠나지 않았다! 난 작은 담을 넘어서 옆집 사이에 있는 철창 사이에 몸을 구겨 넣고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배수로 같이 생긴 사이 길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엉금엉금 기어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랬더니 작고 낮은 지붕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매우 어두워서 하얀 봉지인지 다른 고양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하얗고 둥그런 털덩어리였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나고 기뻐서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고 “라라야. 라라야.”라고 살살 불렀다. 나를 본 라라는 지붕 끝부분까지 옮겨가버렸다.
몸을 숙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있었더니 한참을 경계하듯 이리 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게 눈을 고정시키더니 집중해서 날 바라봤다. 난 조용히 또 “라라야. 라라야.”하고 불렀다. ‘기억해내렴. 이 바보야!’
라라는 한 발 한 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숨도 쉬지 않고 손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잡으려 하면 도망갈 수 있기에. 이 조심스러운 바보는 조그맣고 세모난 코로 킁킁거렸다. 그때였다. 라라는 나를 제치고 본능적으로 도망치려했다. 하지만 난 이 놈을 놓치지 않았다. 라라를 안았다.
라라가 다시 내 품에
라라는 어리둥절했는지 하악질을 하면서도 잘 안겨 있었다. 난 반갑기도 하고 어이도 없어서 엉덩이를 살짝 때려주었다. 그랬더니 어이없이 골골송을 부르신다. 품에 안으니 그 체온과 뽀송뽀송하지만 더러워진 하얀 털이 어찌나 애틋하게 느껴지던지. 다시 한 번 맺어준 묘연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라라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다짐을 밤새 라라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말해주었다. 절대로 너를 놓지 않겠다고. 유기묘였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하겠다고.
또 한 번의 가출
라라 이 녀석은 뚱하고 시크한 표정으로 두 번째 가출을 했다. ‘밥이 맛이 없었니? 집이 마음에 안 들었니? 밖에서 사는 게 좋은 거니?’
작업실을 금방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결정해서 좀 더 넓은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역시 사이 안 좋은 엘립이와 함께. 그리고 추석이라 잠시 본가에 다녀왔다. 친구에게 잠깐씩 들여다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둘은 계속 숨어 있는 듯 했다. 집에 온 나는 집 정리로 바빴다. 여름은 쉽사리 지나가지 않아 창문을 열고 잠이 들었다. 비가 와서 창문에 임시 가림 막으로 썼던 책들을 내려놓았다. 아직 적응을 못 했으니 구석에서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라라보다 바보였다. 다음 날 아침 또 방충망을 뚫고 라라는 내게 큰 교훈을 주러 가출을 했다.
친구는 두 번째인데다가 고양이이니 못 찾을 거라고, 괴로워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했다. 난 또 방울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친구는 너의 희망이 그런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거라고 했다. 쓰라린 소리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가 집을 나가면 찾지 않거나 알아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또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찾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라라는 가까이 있단 확신이 들었다. 그가 떠나고 조용한 저녁이 왔다. 나간 창문 밖 담장 위에 놓았던 통조림도 없어졌다. 난 CSI처럼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수색을 시작했다. 난 고양이가 되어 작은 틈과 판자 사이 숨을 곳을 찾았다. 그리고 또 보았다. 머리만 숨긴 채 하얀 털궁뎅이는 노출시킨 비행 고양이 라라를. 데려와 목욕을 시키니 그제야 날 알아보고 골골송을 부른다. 배를 만져보니 통조림을 평소보다 많이 먹어 불룩해져 있었다.
“난 너를 놓아두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이후 라라는 오랜 시간 창밖을 보는 것에 만족하며 집 안의 1인자로서 안락한 삶을 살고 있고, 엘립이는 외동으로 입양 가서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고 있다.
CREDIT
글쓴이 최유나
그림 지오니
에디터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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