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는 외출 중
프로 외출냥이 : 뽀리 이야기
강렬했던 첫 만남의 기억
이제 곧 만으로 열 살이 되는 뽀리는 ‘프로 외출냥이’다. 나가고 싶을 땐 매너 있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줄 알고, 노크도 할 줄 아는
‘신사 고양이’다.
냥줍 단계
어느 대학 캠퍼스 건물 안에 잘못 들어와 길을 잃고 패닉이 된 고양이를 발견한 건 2009년 2월이었다. 여자 직원의 비명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시커먼 고양이가 빗자루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고양이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빗자루, 몽둥이 등을 들고 내쫓고 있었다. 나 역시 고양이는 무서웠다.
평소 동물을 좋아했지만 고양이는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야산에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자란 고양이는 매우 공격적일 것 같았다. 사람을 피해 도망을 가보지만 어느 열린 문으로 들어가도 사람들이 있는 좁은 복도였기 때문에 고양이로서는 도저히 스스로 나갈 수 없을 상황이었다. 매우 놀란 표정이었고, 제 정신이 아닌 게 한 눈에 보였다. 살려달라는 건지, 엄마를 찾는 건지, 눈에 초점이 사라진 채 일관된 울음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도 성묘도 아니었다. 예쁜 고양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저 겁에 질린 어린 고양이를 구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고양이의 진로를 방해하고, 눈높이로 앉아 ‘이리와’ 하고 팔을 벌렸다. 지금은 알지만, 이건 고양이 언어로 싸우자는 건데, 청소년 고양이는 다급했던지 ‘살았다’ 하는 눈빛을 하고선 나의 품으로 총총 뛰어 들어왔다. 그렇게 집사들의 관문인 ‘간택’ 단계를 거치고, 길고양이였던 청소년 고양이는 집고양이 뽀리가 되었다.
고양이 키우기 고민 단계
품으로 뛰어 들어온 고양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양이에 문외한인 나는 다음 단계를 알 수 없었다. 일단 진정시키기 위해 창고방으로 데려가 먹이를 조금 먹였다. 다음을 생각했다. 이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낼 것인지, 집으로 데려가 키울 것인지 고민했다.
사람들이 어미 고양이와 함께 다니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최근 혼자 돌아다니며 점점 말라갔다고 했고, 엄마를 찾아서 들어온 건지, 배고파 들어온 건지 사람 사는 곳으로 들어 왔다가 못 빠져 나간 것이라 추측했다. 야산에서 뛰어놀며 자유롭게 지내던 고양이라 그 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집생활에 적응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풀어주기 위해 마지막 만찬인 소세지를 들고 창고방으로 갔다. 문을 닫고 조용해지자 뽀리는 어느 구석에서 슬그머니 나왔다. 허겁지겁 소세지를 먹는데 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이라 뭐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그때의 뽀리는 누군가 돌봐줄 존재가 필요해 보였다. 풀어주려던 마음을 바꿔 입양하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집생활 적응 단계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안 나오거나 문이 열리면 금방 도망칠 거라 예상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바로 나와 돌아다니며 집을 여기저기 구경했다. 사람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도 괘념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할 걸 알고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양이 용품이 하나도 없던 터라 바로 주문을 했고, 사흘 뒤 사료와 화장실, 모래가 왔다. 모래를 화장실에 붓는 와중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고, 나와서는 부어준 사료를 세 접시나 깨끗하게 비우는 뽀리를 보며 이 고양이는 바깥 생활을 못 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왔다. 문을 열어두어도 문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문을 무서워했다. 나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렇게 알콩달콩 집냥이로 유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외출냥이 단계
이제 곧 만으로 열 살이 되는 뽀리는 프로 외출냥이다. 나가고 싶을 땐 매너 있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줄 알고, 마실 다녀와서는 노크도 할 줄 아는 신사 고양이다. 일부러 길고양이들을 찾아가 시비를 걸지도 않고, 만나게 되어도 심하게 싸우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길 출신이긴 했지만 처음 집에 왔을 때는 바깥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조금만 나도 무서워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기본적으로 고양이는 소리에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하긴 하지만 뽀리의 경우, 구조 당시 많은 수의 인간에게 한꺼번에 둘러싸여 격렬한 적대적 반응을 겪었기 때문에 트라우마로 남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한 번씩 이상행동을 보이면 영락없이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게 안타까웠던 우리 가족은 사회성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고양이에게 창밖을 보여주고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 냄새를 맡게 해주며 끔찍했던 야생의 기억들을 좋게 다듬어주려 노력했다.
외출냥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른 고양이를 만나면 죽일 듯이 덤벼들어 싸웠다. 우리 가족은 이 꼭두새벽에 동네 떠나가라 싸워대는 저 문제의 고양이를 마음속으로나마 모르는 척해야 했다. 외출하겠다고 고래고래 떼써서 밖으로 어쩔 수 없이 내보내주고 나면, 또 나가서 불쌍한 길고양이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매일 밤 노심초사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
이 고양이가 달리 똑똑해서가 아니다. 외출냥이 뽀리를 키우며 생겼던 문제와 해결 에피소드를 <프로 외출냥이 : 뽀리 이야기>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뽀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출냥이가 되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일에도 어떤 교육 철학이 필요했다. 가족과 뽀리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먹고 자는 문제 외에 뽀리에 대해 중요하게 대화한 주제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고양이의 개성과 사회성이었고, 두 번째는 고양이의 입장, 즉 고양이의 자유 의지, 세 번째로는 환경이었다. 이 고양이가 달리 까탈스러워서가 아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누구나 생각해봤을 주제에 대해 이 코너를 통해 나눠보려 한다.
CREDIT
글 사진 손향기
에디터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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