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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둘, 강아지 하나_우리는 모두 …

  • 승인 2018-05-08 1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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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둘, 강아지 하나_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집을 찾는다. 머무를 곳을 찾지 못했던 유기견 푸들 ‘타리’와 까만 고양이 ‘실비’ 그리고 삼색고양이 ‘해적이’는 제주의 한적한 중산간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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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에서 만난 푸들 ‘타리’

타리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 여름, 집 근처 ‘로타리’였다. 서울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해 제주로 떠돌아온 나는 길 위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타리를 만났다. 타리의 이름이 ‘타리’인 건 바로 그 이유이다. 타리는 정처 없이 걸었다. 앞으로걷다가 금세 방향을 바꿔 뒤로 걸었다. 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타리는 한여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에서 차선을 넘나들며 걸었고, 덕분에 한적한 시골길은 곤란한 차들로 엉켜버렸다.

보통의 제주에서는 개들을 풀어서 키운다. 특히 내가 사는 시골의 어르신들은 큰 개도 그냥 풀어서 키우신다. 그런 동네 개들은 보통 마당부터 골목길 사이사이에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는데, 어딘가를 갈 때면 한껏 꼬리를 세우곤 마치 출근을 하는 우리들처럼 걸어간다.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게 티가 난달까. 그런데 타리는 고양이만 키운 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유기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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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집에서 만난 턱시도 ‘실비’

나는 서울에서부터 턱시도 ‘실비’ 그리고 삼색이 ‘해적이’와 함께 살았다. 실비는 6년 전, 학교 앞 술집 <실비집>에서 주운 고양이었다. 어느 날 새벽, 한 여자가 안고 있던 실비는 <실비집>에 버려졌고, 실비는 갈 곳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맞은편 술집에서 버려지는 실비를 보고 있던 한 선배에게 구조되었다. 그런데 실비가 3일 만에 새끼를 낳았다. 임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어 달 뒤, 나는 실비의 새끼 중 삼색묘 해적이를 입양했고, 그렇게 단둘, 오붓한 집사 생활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외출하면 혼자 남은 해적이는 내 뒤꿈치를 무는 버릇이 생겼고, 집에 돌아올 때면 현관문 밖에서도 해적이의 외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해적이에게는 늘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실비와 해적이는 같이 살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청춘을 함께했다. 누군가와 헤어진 밤에도 실비와 해적이는 나의 옆을 지켜주었다. 6개월 동안 떠난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실비와 해적이는 종일 나를 반겨주었다. 차가운 도시를 떠돌다 집으로 돌아오면, 실비와 해적이가 누워있던 침대는 따뜻했다. 실비와 해적이는 존재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6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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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로타리’입니다

실비와 해적이를 만난 이후 길에서 떠는 생명들이 쉽게 지나쳐지지 않았다. 더구나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차들이 뒤엉킨 로타리에서 이 아이를 외면할 자신은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동물병원이었다. 접수를 받아주던 간호사분이 이름을 물어왔다. 나는 얼떨결에 ‘로타리’라고 대답했다. 역시나 타리에게서는 전 주인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타리는 목줄도, 옷도, 칩도 없이 혈혈단신 떠돌고 있었나 보다. 병원에서는 상태를 보아 일주일 남짓, 떠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의사는 미용도 되어있고 발톱도 깎은 걸 보면 주인이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유기동물보호센터로 데려갈 것을 권했다. 설령 맡아서 키운다고 해도, 유기동물은 전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훗날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분실신고가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동물이 재산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수의사의 조언이 이어지는 동안 타리는 내 무릎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이 들었다.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한 척인지 낯설었다. ‘개’라는 동물은 조금 뻔뻔한 걸까, 아니 어쩌면 이렇게라도 붙잡고 싶었던 게 아닐까. 타리의 뒤통수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수의사는 다시 말을 바꿔 주인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내 손에 2m 남짓의 목줄과 강아지용 사료 샘플을 한 움큼 안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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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안으로 굽어서 미안해

집으로 돌아와 보니 타리의 얼굴은 굳어진 눈꼽에 꼬질꼬질했다. 타리는 생각보다 얌전히 샤워기에 몸을 맡겼다. 냥님들 한 번 씻기려면 제일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던 지난 세월이 떠오르며, 타리는 참 순하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샤워기에 털이 젖어갈수록 잔뜩 벗겨져 빨갛게 부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남은 털도 잡아당기면 쑥쑥 빠졌다. 고된 길생활이었겠구나. 그러고 보니 아직 제대로 밥을 챙겨주지도 않았다. 밥보다 씻기는 게 먼저라니... 고백하자면 그 와중에도 나는 타리가 고양이들에게 피부병을 옮기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타리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당혹스러워하는 고양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동물병원에서 받아온 강아지 샘플사료를 2봉이나 해치웠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타리의 눈이 꾸벅꾸벅 감겼다. 침대 밑, 타리가 따로 누울 수 있는 자리를 깔아주었지만 전 주인과 침대에서 자던 버릇이 있었는지 타리는 기를 쓰고 침대로 올라왔다. 걱정했던 대로 용감한 ‘실비’가 공격적인 하악질과 울음을 쏟아내며 타리를 경계했다. 세 마리 중 한 마리도 침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각자의 입장이 이해는 됐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소심한 해적이는 결국 토를 하기 시작했다. 길에서 떠돌던 타리를 외면할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지만 역시나 실비와 해적이의 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함께 사는 건 역시 무리일까? 다음날 아침 나는 타리를 데리고 ‘제주유기동물보호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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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그림 김지은
사진 김지은, 정인성
에디터 김지연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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