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
?여전히 서랍 뒤에 머물러있는 순이
반려동물의 죽음은 반려인이라면 언젠가 맞게 될 시간이나 상상조차 아픈 탓에 쉬이 회자되지 않는다. ‘잠시만 안녕’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보며 이미 떠나보낸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그 시간을 앞둔 이들에게 마음 다짐의 계기를 전한다.?
2014년 5월, 두 마리 회색고양이가 나에게로 오다
“고양이 키우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
사장님의 그 한 마디에 번쩍 손을 든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오랜 자취생활에 줄곧 쌓인 외로움은 일상생활에 무료함을 안겨주었고, 나는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손을 들었다.
한때 나에게 고양이는 무서운 존재로서 각인되었다. 귀가 할 때마다 가까운 길을 놔두고 굳이 먼 길을 선택하게 할 정도였으니까. 밤에 보는 길고양이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날카롭고 주눅 들게 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만에 나는 양 손에 고양이 이동장과 용품을 쥐게 되었다.
?
?
집사로서 첫발을 내밀다
첫째를 키미, 둘째를 순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두 고양이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이었다. 키미는 고양이 특유의 도도한 면을 많이 지닌 반면, 순이는 강아지의 후덕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순이는 늘 키미한테 치이고 살았다. 따로 먹을 것을 챙겨주려고 키미를 등한시했던 적도 다반사였다. 우리 집으로 데려온 첫날, 구석에 숨어있던 순이는 30분도 되지 않아 내 배위에 누워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이제 막 집사의 길에 접어들었던 나는 그 소리가 골골송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4년 넘게 순이와 키미는 잔병 한번 치르지 않았다. 나는 두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저 감사했다.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는 사명감도 가졌다. 아이들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내 SNS에는 고양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지인들은 내 안부보다는 순이와 키미의 안부를 묻는 게 먼저였다. 그때마다 집사인 나는 아이들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
?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혹한 시간
작년 11월 공기가 제법 쌀쌀해질 때쯤, 순이의 몸무게가 빠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순이는 덩치가 작고, 입이 짧았던 터라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12월 중순, 순이의 증상이 심각해졌다. 자꾸 침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내 무릎에 고인 침의 양이 많아졌다. 순이를 차에 태우고 대구에 있는 24시 동물병원을 향했던 그 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순이는 복막염 진단을 받았다. 수의사에게 순이의 건강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났다. 잠시 차를 갓길에 세워 순이를 안고 한동안 울었다. 순이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혹한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해가 바뀌고,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딜 가도 아이의 진단명은 똑같았다. 하지만 순이는 활동량만 줄었을 뿐 이전처럼 밥도 잘 먹고 배변활동도 문제없었다. 병은 진단받았으나 이전과 별다른 변화를 감지할 수 없어서, 더욱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집에서 케어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의 증상은 눈에 보일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때는 노력 없이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순이는 신경마비증상(발작)을 보였다. 간헐적이던 발작 증세는 그 간격이 점점 좁혀졌다. 케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에 이르러 병원을 찾아갔다. 순이는 생사를 오가고 있었고, 결국 사지가 마비되는 상태에 달했다.
?
여전히 서랍 뒤에 머물러있는 순이의 자취
순이를 놓아주기로 했다. 집을 떠나기 전, 순이는 키미와 마주했다. 두 아이는 한동안 서로 눈을 맞추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병원에 도착하고, 순이를 보내주는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순이가 아빠한테 온건 큰 축복이었다고, 계속해서 얘기해주었다. 그렇게 아이는 내 손길을 뒤로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눈을 감았다. 아프다고 울부짖었던 순이는 눈을 감고 누워있는 것이 모습이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순이의 자취가 남아있다. “순이야!”하고 부르면 서랍 뒤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다. 며칠 전에 는 키미를 부른다는 게 순간 순이라고 부르고 말았다. 키미에게 정말 미안했고, 동생을 잃은 키미의 심정을 헤아려주지 못해서 다시 한 번 미안했다. 순이의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 나를 응시하던 눈빛은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 느낌도 생생하다. 순이는 먼 길을 떠났지만 아이가 남기고 간 자취는 한결같이 서랍 뒤에 머물러있다.
축복이자 기쁨이었던 순이야. 언제든 아빠 꿈에 찾아와서 인사해줬음 좋겠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친구들하고 마음껏 뛰어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렴. 살 좀 찌고, 이놈아! 꼭 다시 만나자!
CREDIT
글·사진 구교민
그림 지오니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