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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뿔났다

  • 승인 2018-03-23 1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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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고양이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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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탈을 쓴 생명체? 돌연변이?

얼마 전, 대만여행을 가게 되어 4일 동안 고양이를 다른 집에 맡겼다. 홀로 집에 남겨두기 미안해서였다. 한 번도 집밖을 나가보지 못한 고양이는 현관문을 나설 때 앞발과 뒷발을 필사적으로 휘두르며 본인의 권리를 내세웠다. 마치 재건축 허가 도장을 찍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생존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내몰린 달동네 주민 같았다. 고양이는 울부짖고 있었다. 그 처량한 소리가 두려움에서 기인된 것인지 그리움에서 기인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4일 후, 고양이를 데리러 그 집을 갔을 때 놀라고 말았다. 4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마치 제집인 마냥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었다. 털은 윤기가 흐르고, 며칠이나 봤다고 집주인에게 갸릉거리며 갖은 애교를 피우고 있었다. 고양이는 바닥에 벌러덩 누워 ‘네가 없어도 나는 이렇게 잘 살 수 있어!’ 라며 으름장 놓는 표정으로 나를 비스듬히 쳐다보고 있었다.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가 너무 낮설었다. 나는 고양이의 눈빛을 바라보며 이 녀석이 필시 고양이의 탈을 쓴 다른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또는 모든 것을 해탈하고 이미 이곳에 적응해버린 놀라운 적응력을 가진 돌연변이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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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악질을 하기 시작한 고양이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부들부들한 목덜미를 쥐어 들어올렸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는가 싶더니 동공이 커지며 버둥거렸다. 집으로 가자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이 아이는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거부의 몸짓을 표현하고 있었다. 언젠가 고양이는 집사를 자기가 결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이 녀석에게 무엇이었던가. 아이를 계속 이 집에 놓아둘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는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섭식을 거부하고 앞다리를 폴더처럼 접고 앉았다. 눈은 병든 닭처럼 시선을 잃고 허공을 헤맸다. 삼일동안 그릇에 놓인 사료는 전혀 줄지 않았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요즘 고양이 AI가 유행한다고 하더니, 고양이 조류독감이라도 걸린 것일까. 가지각색의 의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밖을 돌아다닌 적이 없는 집고양이가 독감에 걸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노화가 진행되었다고 보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 녀석은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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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은 있으나 병명은 없다

친절하고, 진료를 잘한다는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다음날 아침나절부터 병원에 부리나케 방문했다. 대기시간 내내 고양이는 아기 울음소리를 냈다. 곧이어 수의사가 왔고, 고양이의 복부가 조금 부은 거 같다는 소견을 냈다.

초음파 검사 결과, 별다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구토를 멈추게 하는 약을 처방받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수의사는 간식에다가 약을 타서 먹일 것을 권했다. 참치 통조림 같은 간식을 그릇에 덜어 약을 탔다. 2차 조제를 하는 동안 고양이는 나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려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그릇을 고양이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평소 같았으면 코를 킁킁거리고 정신없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었을 고양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 시간 후, 간식은 비쩍 말라가기 시작했다. 고양이도 저 간식처럼 비쩍 말라버리지 않을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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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물이라고 칭하는 고양이

나흘이 지나도록 토악질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털빠짐이 추가되었다.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움츠리고 있는 녀석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의 토악질은 공교롭게도 내가 밖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 왔을 때만 진행이 되었다. 무언가 수상했다.

흔히들 고양이를 영물(靈物)이라고 칭한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했다가 불행을 당했거나 고양이 때문에 목숨을 구한 전설들이 내려오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미신인지 사실인지는 알도리가 없지만, 고양이가 영특한 동물임은 분명하다. 영특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고양이는 내가 있을 때만 토악질을 해댔다. 그리곤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이건 분명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지인과의 통화에서 그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지인은 고양이의 증상을 듣더니 단번에 그 원인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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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토라졌다

“그건 고양이가 토라진 거야.”

보통의 고양이들도 본인들의 영역을 벗어났을 때에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특히나 길고양이 출신의 고양이들은 더더욱 이러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한 번 버림받았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은 어찌할까.

토라진 고양이를 달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수많은 달램과 애정 표현 끝에 녀석은 2주가 지나서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밥도 조금씩 입에 댔다.

고양이가 토라진 마음을 서서히 걷어낸 것은 아마 삶에 대한 안도일 것이다. 이번 계기로 고양이와 나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존재감에 대해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CREDIT

글·사진 신상천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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