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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 아저씨, 거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

  • 승인 2018-03-12 11: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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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US CAT

냥 아저씨, 거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냥거주입’

노란 공기에 입김이 더운 3월. 썰렁하게 얼어붙었던 거리 위에 발걸음이 앉는다. 길게 이어지는 노크 소리에 작은 존재들이 고개를 내민다. 아- 사람도 고양이도, 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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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면 고양이도 개강을 한다

봄이라기엔 아직 추운 계절. 학생들의 온기가 학교를 덥히기 시작한다. 이맘때 함께 개강하는 존재들이 있으니, 겨우내 웅크리고 버티다 슬그머니 교정에 나타나는 길고양이들 되시겠다.

대학교 안이라고 로묘(路猫)들의 생이 꽃길일 리 없다. 몇몇 학생들은 더럽다, 혹은 시끄럽다며 자신들의 삶터를 침범한 고양이를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몇몇은 길 위에서 명멸하는 생을 외면하지 못했다.

2015년 하반기부터 한국의 대학들에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국 약 30여 개의 동아리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의 학내 길고양이 보호 동아리 ‘냥거주입’도 그중 하나다.

우리... 동거할게요

2017년 5월, 페이스북을 통해 20명 남짓의 학생들이 모였다. ‘냥 아저씨, 거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를 줄여 ‘냥거주입’이라는 동아리명도 지었다. 그러나 중앙동아리가 아니다 보니 학교 측의 지원은 전무했다. 동아리 인준을 받기까지는 최소 3년이 걸린다고 했다.

학생들끼리 주머니를 털어 사료를 샀다. 개체 수 파악도 되지 않았고 급식소도 따로 없던 시절, 1회용 종이컵에 사료와 물을 담아 놓아두고 ‘학생들이 준 거니 버리지 말아달라’는 팻말을 꽂아 뒀다. 학생들과 길고양이의 대학 내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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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중에도 등교했던 이유

냥거주입 회장 유영 씨는 양재역 근처에 산다. 학교까지는 왕복 세 시간. 하지만 방학 중에도 종종 학교를 찾았다. 토익이나 자격증 공부를 위해서냐고? 기숙사와 교양관에 위치한 교내 길고양이 급식소에 사료와 물을 채워 넣기 위해서다.

없어지는 사료 양으로 추정한 교내 길고양이 개체 수는 약 15마리. 직접 마주쳐 안면을 튼 고양이 다섯 마리는 이름을 받았다. 길고양이라는 뜻으로 로묘,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티거. 샤샤, 코트, 빌리는 각각 프랑스어, 폴란드어, 힌두어로 고양이라는 뜻이다. 길고양이도 외국어 이름을 갖다니, 역시 외대는 외대다.

“저희 학교는 특성상 해외로 나가는 친구들이 많아요. 초대 회장님만 해도 지금 이집트에 계시거든요(웃음). 또 학교가 서울이 아니라 용인에 있다 보니까 방학이 되면 학교 주변에 동아리원이 거의 없어요. 이번에는 학교 앞에 남은 친구가 한 명뿐이라, 그 친구가 사정이 여의치 않은 날에는 제가 와서 급여했죠.”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졌던 올겨울, 급식소에 남은 사료의 양이 평소보다 많은 것을 확인할 때마다 다들 무사한지 걱정했다는 유영 씨. 눈 내린 다음 날 급식소 주변에 찍힌 발자국을 볼 때면 그래도 살아 있구나,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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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이 다 녹으면 정말 봄이 올까

동아리 운영에는 물론 시련이 있었다. 길냥이 보호가 아니라 여자친구 만들기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을 걸러내야 했다. 누군가 기숙사 급식소에 빵 봉지와 담배꽁초를 넣고, 쪽지에다가 ‘안하면 안 되? 시끄러워’(그렇다. 맞춤법도 틀렸다.)라고 써 놓은 적도 있었다.

학생들끼리 꾸린 동아리, 주머니 사정은 넉넉할까 걱정되어 물었더니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학 길고양이 돌봄 사업’에 함께하면서부터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단다. 카라로부터 필요한 사료의 반액과 TNR 비용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를 주축으로 전국 14개의 교내 길고양이 보호 동아리들과 ‘대학길냥이’ 네트워크도 형성했다. 손재주가 좋은 몇몇이 캐릭터를 만들고, 굿즈를 만들었다. 대학길냥이의 이름으로 궁팡마켓, 국캣 등 고양이 관련 행사에 굿즈를 들고나가 판매했다. 수익은 물론 길고양이를 위해 사용된다. 착실하고 야무지게 꾸려가고 있는 동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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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이 터에 맺혀라

사람을 피해 도망가거나 쓰레기통에서 먹이를 뒤지던 교내 길냥이들이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늘어지게 누워 하품을 한다. 학교 터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보람차다.

사료를 급여하고 특식 캔을 따자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프로 급식묘 로묘가 다가온다. 그런데 머리 양옆에 못 보던 상처가 눈에 띈다. 다행히 굿즈 판매 수익금이 꽤 남아있고 마침 토요일에는 회의가 있다. 동아리원들과 로묘 포획과 치료를 논의해 봐야겠다는 유영 씨. 그녀의 미간이 좁다. 그저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동호회가 아니라 생명을 보듬는 모임이다 보니 마음에 닿는 무게감이 다른 탓이다.

3월, 달력은 이제 봄이라는데 아직 한참 차다. 그래도 볕이 들 기미는 있다. 동아리 연합회에서 학생·소수자 인권 위원회 발족을 추진 중인데, 동물권과 동물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권리도 함께 보장하려 한다는 소식이다. 시민단체의 도움이 있었다 한들 학교의 공식 단체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었던 입장에서는 봄볕 같은 얘기다.

따뜻한 이들의 마음이 봄을 부르고 있다. 이 터에 봄이 맺히길 기대해 본다.

CREDIT

에디터 강한별

사진 구현회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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