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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캣맘 부정기

  • 승인 2018-03-06 1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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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X

고양이와 캣맘 부정기

보통의 일상에 고양이를 더해보자. 묘하게 감칠맛이 돈다. 고양이와 ‘그 무엇’에 대한 시시콜콜한 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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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볍게 살고 싶은 욕망

누구나 취향을 지닌다. 내 경우 인생을 관통하는 취향은 ‘어중간함’이다. 음악은 미드템포가 좋고, 뜨거운 것은 입에도 못 대는 고양이 혀를 지녔다. 이 취향은 생활패턴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실없는 소리를 하는가 하면 누군가 느닷없이 밀도 높은 고민을 상담하면 동공이 흔들린다. 그러니까 요는, 무난하고 적당히 가벼운 인생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이 가볍게 살고 싶은 욕망은 두 마리의 고양이를 차례로 들이면서 자칫 흔들리는 듯 보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야 했으며, 고양이에게 쓰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을 집사로 살면서도 끝까지 외면하던 단어가 있었다. ‘캣맘’이라는 두 글자. 간혹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고양이를 위해 캔 하나 정도는 들고 다녔지만, 그뿐이었다. 내 호의는 늘 일회성이었다. 깃털 같은 인생을 위해서. 묵직한 이타적 삶을 거절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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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할거면 미행을 하지 말던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피했다고 생각했건만, 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집에 귀가하던 중 어린이 턱시도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눈이 마주친 이상 조공을 피할 수는 없는 일. 얼른 파우치를 까서 대접하고 자리를 뜨기로 했다. 구석진 곳을 찾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린이 고양이가 5m 거리를 두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뭐지 저 경계심과 미행의 어울리지 않는 콜라보는? 심장을 폭행당한 채로 결국 집에 들어가 물과 밥을 챙겨 들고 나왔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를 찾았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 번 사료를 챙겼다. 그러던 것이 이틀에 한 번 꼴이 되더니 종내는 하루에 한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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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사람아, 무정한 사람아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유가 리메이크했던 옛 노래 가사처럼 ‘무정한 사람’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릇의 사료가 줄어들지 않는 당혹감을 겪고 싶지 않았고, 수줍은 길고양이의 눈인사도 피하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 된 녀석들을 헤아리며 청승 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밥은 주되 엮이지 말자, 웃기게도 그랬다.

밥 주다 몇 번 얼굴을 마주친 뒤로는 만나지 않을 방법을 구상했다. 밥 챙기는 시간을 들쭉날쭉하게 해보기로 했다. 어느 날은 아침에 나가보고, 또 다른 어느 날에는 늦은 밤에 나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식사할 곳을 귀띔해준 모양인지 종종 턱시도 아닌 다른 녀석들을 마주쳤다.

처음으로 네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캣맘도 아니고, 캣맘이 아닌 것도 아닌 상태에서 겨울이 왔다. 그리고 1월 중순, 올 겨울 가장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기온은 영하 10도를 훌쩍 넘겨 모두 날씨 이야기만 했다. 얼른 퇴근하고 싶었다. 눈밭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이라도 보면 마음이 좀 평온해지려나.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으면서, 사료를 챙기면서 처음으로 턱시도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저 무사한지 확인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동안 매정하게 사료를 그릇에 담자마자 뒤돌아 갔지만, 열 발자국 걷고 나면 등 뒤에서 까드득 까드득 사료 씹는 소리가 나곤 했다. 부디 오늘도 그 소리를 들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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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끝난 캣맘 부정기


목도리와 장갑까지 끼고 나서야 다시 집 밖에 나갈 용기가 생겼다. 일단 얼어버린 물을 치우고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조금 거리가 있는 밥자리에 사료를 채우며 무심코 시선을 옮기니 그새 자란 턱시도가 모습을 보였다. 뜨거울 텐데 방금 부은 더운물을 할짝대고 있었다. 뜻 모를 눈물이 터졌다.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캣맘이다. 내 집이 없는, 공동주택에 사는 길 엄마다. 행여나 누군가 마주칠까 새가슴으로 떨곤 하는 길고양이들의 친구다. 편리함을 으뜸으로 쳐 아파트만 고집하던 나는 이제 주택에서의 삶을 꿈꾼다. 남들 눈치 보느라 자주 나올 수 없어 뜨거운 물을 주는 게 아니라, 적당한 온도의 물을 길 친구에게 대접하기 위해. 밤이나 새벽이 아닌 햇살 좋은 오후에 그들을 마주치고 싶어서. 고양이는 이렇게나 생산적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한다. 나의 캣맘 부정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CREDIT

에디터 이은혜

그림 이현진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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