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여전히 우리 집 밥그릇은 다섯 개

  • 승인 2018-01-23 15:16:37
  •  
  • 댓글 0


잠시만 안녕

여전히 우리 집

밥그릇은 다섯 개



c5c1965c06aef5c58fb6425f32834a3c_1516685



2009년 5월 11일 널 만나던 날

순돌이를 만났다. 겁에 질려 구석에서 긴장하고 있던 성묘 순돌이를 보자마자 왜인지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나이에 상관없이 들어온 순서대로 첫째부터 막내까지 형제관계가 정해졌다. 오남매 중 셋째였던 순돌이는 첫째, 둘째의 텃세를 잘 이겨내고 뒤이어 들어온 동생들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착한 아이였다.

순돌이와 살았던 8년 동안,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나가서 3일 만에 집에 찾아온 일,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길냥이들 때문에 첫째랑 싸운 일…… 하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전전긍긍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순돌이는 호기심이 많고, 사교적인 아이였다. 그 성격 덕분에 순돌이를 따르는 길고양이 동생들이 있었다. 가끔 집으로 동생들이 찾아오면 순돌이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 한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그 광경이 웃겨서 몰래 그들을 엿보기도 했다.

c5c1965c06aef5c58fb6425f32834a3c_1516686


내 착한 셋째야, 우리는 잠깐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 집 첫째가 노령묘로 접어들 때 우연히 <펫로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늘 보는 아이들과 이별을 한다는 게 체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이별에 대한 준비는 늘 하고 있는 게 좋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오늘은 우리 애들과 마지막 하루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 오남매와 헤어질 때 멋지게 인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이별의 첫 순서가 순돌이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왔던 나였지만 막상 순돌이의 심각한 몸 상태를 알았을 때, 소리 내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고 나서 나는 다른 아이들의 미용을 해줘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반려동물 미용을 업으로 삼는 내 직업을 후회했다.

c5c1965c06aef5c58fb6425f32834a3c_1516688

복수와 흉수가 차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순돌이는 잘 버텨주었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에 순돌이가 대변을 본 일이 있었다. 평소 깔끔하던 아이였던 터라 나보다 자기가 더 당황했을 것 같단 생각에 나는 조용히 순돌이를 토닥거려 주었다. 그때 옆에 있던 첫째는 평소와는 달리 얌전히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퇴근길에 병원에 들렀던 날이었다. 침대 위에 엎드려있던 순돌이는 동공이 풀려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나는“집에 가자, 내 새끼” 하면서 순돌이를 안았다. 버텨줘서 고맙다고 엉덩이를 토닥토닥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버스에서 순돌이는 숨을 쉬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가족들이 보고싶었는지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c5c1965c06aef5c58fb6425f32834a3c_1516688

여전히 우리 집 밥그릇은 다섯 개

순돌이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와 상자에 순돌이의 물품을 넣는데 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첫째는 방 한 편에 있는 선반대에 앉아 그런 나를 지켜보았다.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는 줄 알았던 녀석이 야옹거리면서 살며시 내 품에 안겼다. 한동안 나와 첫째는 서로를 위로했다. 한편 우리 집 막내는 순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이 컸는지 책장위에서 몇 시간째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시는 애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순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남은 네 아이들과 함께 마음을 추스르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화장한 순돌이는 메모리얼 스톤으로 보관 중이다. 스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살아생전 아이들을 끌어 모았던 순돌이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스톤을 보면 녹차를 마신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c5c1965c06aef5c58fb6425f32834a3c_1516688

여전히 우리 집은 밥그릇이 다섯 개다. 그리고 나는 다섯 그릇에 밥을 똑같이 나누어준다. 아직은 밥그릇 하나를 치울 수가 없다. 어디선가 슬금슬금 다섯 고양이가 다가온다. 우리 오남매가 다가온다. 정확히는 네 녀석과 하늘 위의 한 녀석이지만.

순돌아~ 우리 오남매! 또 엄마새끼 하자!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해~

c5c1965c06aef5c58fb6425f32834a3c_1516687

CREDIT

글 사진 이장미

그림 이현진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