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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털갈이의 계절 클리닝 마스터를…

  • 승인 2018-01-16 10: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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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CO

바야흐로 털갈이의 계절

클리닝 마스터를 만나다Ⅱ?


여름철 적이 모기라면 겨울의 적은 고양이 털이다. 창문 열기 두려운 혹한의 계절엔 무한대로 뿜어져 나오는 고양이털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 호에 이어 CATSCO 클리닝 마스터와 함께 털 완전 박멸에의 꿈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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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3줄 요약


1. 세탁 시엔 발상을 전환해라.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기 전 10분 정도 건조기에 넣고 돌리면 박혔던 털이 알아서 빠져나온다.

2. 롤 클리너 하나로는 옷에 붙는 털 떼를 제압할 수 없다. 롤 클리너, 고무장갑, 퍼좁의 삼각편대라면 든든할 것이다.

3. 훈풍이 뿜어져 나오는 진공청소기는 바닥의 털을 부양하게 해 청소가 잘 됐다는 착시를 일으키며, 걸레질은 털을 바닥에 부착시켜 아예 제거 불능으로 만든다. 정전기 부직포로 털을 크게 훔친 후, 청소기와 물걸레로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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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 오, 나의 사랑스러운 사치품


클리닝 마스터는 청소의 기본기를 열성적으로 강연한 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력이 쇠한 모양이다. 조금 전에 퍼좁을 실어 가져다준 로봇 청소기가 마스터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지능이 상당한, 굳이 말하자면 반려 로봇으로 보였다. 로봇은 스트레스가 차오른 주인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 갑자기 ‘강력’ 표시등에 불이 들어오더니 굉음을 내며 사무실을 재빠르게 돌아다녔다. 먼지가 내려앉는 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마스터가 나를 응대하는 사이 차차 쌓였던, 눈으론 보이지 않던 먼지 층이 로봇 청소기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최대치의 흡입력을 가동한 로봇은 사무실의 구석구석을 누비다 곧 문 앞에서 전원이 꺼졌다. 하얗게 타버린 것이다.

사무실이 쾌적해지자 마스터는 놀랍게도 정신을 찾았다. 얼굴은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해사했다. 마스터는 문 앞에 로봇을 들어 충전기를 물려줬다. “기특하죠? 웬만한 사람보다 나아요.” 그러더니 꼬옥 껴안는다. 대체 둘은 무슨 관계인가. “미안하지만 당신같은 사람은 로보를 들일 자격이 없어요. 충성스럽지만 연약한 우리 로보는 아주 미세한 먼지만을 처리할 수 있거든요. 털 뭉치가 굴러다니는 당신 집에서 혹사당할 로보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울컥하는군요.” 난 그런 징그러운 로봇엔 관심 없다고. 여유가 된다면 로봇 청소기를 구매하되 청소를 일임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겠다.

이후 마스터와 대화를 이어갔지만 나는 그의 화만 더 돋울 뿐이었다. 마스터는 한숨과 탄식, 분노와 절규를 이어가다 고개를 크게 가로젓더니 외투를 입었다. “자, 집으로 안내하세요.” 그의 등엔 허름한 배낭 하나가 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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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살기 : 청소의 어나더 레벨로 떠나 보자


좁은 자취방의 문을 열자 모모가 반갑게 달려 나왔다. 방묘문에 매달려 야옹, 야옹거리는 모모를 떼어 내고 마스터를 방 안으로 들였다. 어느새 마스터는 화재 현장에 돌입한 소방관처럼 대형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몸은 방사능 피폭도 막아낼 듯한 작업복으로 무장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마스터는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슬며시 배낭의 지퍼를 열었다. 거기엔 생소한 청소 도구가 가득했다.

그가 먼저 꺼내 든 건 묵직한 포대였다. 포장을 뜯더니 가루를 설설 뿌려댔다. 한 줌, 두 줌, 천천히 마루와 러그와 카펫 위로 가루를 살포하던 마스터는 점점 흥분하며 양손을 포대에 넣어 가루 폭탄을 사방에 투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악귀를 때려잡는 퇴마사의 박력이었다. 마스터는 흰 자가 뒤집힌 채 불결함을 향한 끝모를 증오를 발산했고, 집은 삽시간에 최루탄이 터진 데모 현장처럼 자욱해졌다. 모모는 신이 났는지 눈밭을 뒹구는 시골 개 같이 가루 사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포대가 거덜 나고 시간이 좀 흐르자 공기를 떠돌던 분노 어린 가루들은 바닥에 내려앉았다. 마스터는 배낭 안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선 청소기를 꺼내 들었다. 산소마스크 속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잇츠 파티 타임. 엄청난 파워의 청소기가 굉음을 내며 바닥에 붙은 가루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로보가 그냥 커피라면 이 청소기는 TOP였다. 본체와 연결된 호스가 갈증난 코끼리의 코처럼 꿀렁거리며 가루를 마셔댔고, 가루는 놀랍게도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던 털들을 끄집어내 청소기의 코 속으로 돌진했다. 뭉게뭉게 가루 연기 사이로 포대에 적힌 글씨가 보였다. 가루의 정체는 베이킹 소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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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모든 가루가 사라지자 공기가 휴양림에 온 것처럼 상쾌해졌고 정신이 찬물로 세수를 한 듯 개운해졌으며 믿거나 말거나 지병인 비염이 해결됐다. 청결은 하사불성 만사형통.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가 아닌 일상에 은밀히 침투한 불결이구나. 득도에 이르며 감격에 빠진 나의 뒷목을 후려친 건 마스터의 먼지떨이(회초리 대용, 1편 참고)였다. 다시 산소마스크 사이로 발음이 불명확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다.

마스터는 배낭을 뒤지더니 양 손에 검을 든 무사로 변했다. 하나는 유리창을 청소하는 대형 와이퍼였다. 저걸 스퀴지라고 하던가. 그리고 다른 한쪽은, 칫솔이다. 스퀴지는 다시 카펫과 러그,그리고 침대의 이불을 향했다. 유리창의 물기를 제거하듯 스퀴지를 꾹 눌러 당기니 더 깊숙하게 박힌 바이러스 같은 털들이 자취를 드러냈다. 채 복귀하지 못한 베이킹 소다마저 단번에 정리됐다.

칫솔은 물티슈를 말아 청소기와 스퀴지가 놓친 사각지대를 공략했다. 정말이지 고양이의 털은 민들레 풀씨처럼 공기가 통하는 모든 곳에 자리했다. 칫솔은 키보드 사이, 창문틀, 경칩, 옷소매를 훔치며 암행하던 털을 말살했고, 비로소 아득해 보였던 털완전 박멸에의 꿈이 잠시나마 실현될 수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모든 승부는 디테일에서 갈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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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방 : 뿌리를 강력하게


그제야 마스터는 작업복을 벗고 산소마스크를 뗐다. 그의 시선은 이제 모모를 향했다. 이 모든 난장의 원흉이자 지금 이 순간도 책임지지 못한 털을 양산하며 인류 세계에 흘리고 있는 무법자. 마스터는 모모의 가슴팍을 잡고 살포시 들어 창문으로 가져갔다. 방충망만을 남겨두고 삼중창이 활짝 열렸다. 한기가 엄습했지만 동시에 따뜻한 오후의 햇볕도 내리쬈다. 마스터는 모모를 창문턱에 앉히고 가장 안쪽 문을 닫았다. 어리둥절한 모모의 실루엣이 보였다. 모모는 유리창을 긁어대며 당황해 하다 햇살의 아늑함을 느꼈는지 다리를 몸 안에 집어넣고 식빵 자세를 취했다.

남의 고양이에게 웬 학대냐고 따지기도 전에, 그의 의중이 읽혔다. 모모에겐 바깥 공기와 일광욕이 필요했다. 답답한 마음에 실내에서 날뛰다가 잘 박혀 있던 털마저 빠져나가 버리고, 건조한 실내 환경이 털을 푸석푸석하게 만들어 계절성 탈모를 유발한 것이다. 모모가 바깥바람을 쐬고 있는 동안 마스터는 배낭을 정리했다. 괴팍하고 거칠었던 출장 청소가 거의 끝난 모양이다.

그의 어깨너머로 질문이 들려왔다. “인간이 가장 많이 빗질해 주는 동물,무언 줄 아십니까?” 답이 고양이라면 너무 빤한데. 강아지일까? “말입니다. 말의 피부는 예민하며 그 털은 수려하기에 말 빗질엔 정교하고 세심한 기술이 도입됩니다.” 이 자는 도무지 대답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당신이 올 해 CATSCO의 첫 번… 아니 백 번째손님이기 때문에, 특별히 드리고 가겠습니다.” 마스터는 말을 미

용하는 특제 브러시를 바닥에 내려놨다. 말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품질 좋은 브러시 하나면 고양이 몸에 박혀 있던 죽은 털, 상한 털, 빠지다 만 털이 일거에 해결된단다. 처음 보는 브러시를 이리저리 살피다 현관을 문득 보니, 마스터는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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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마스터가 떠나고 몇 주가 흘렀다. 그의 유난스런 결벽증과 전장을 방불케 한 청소는 아주 오래 전 꿈처럼 희미해졌다. 그가 분노하며 박멸하고 간 털과 먼지도 어느덧 다시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마스터는 그날 이후로 만날 수 없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영존한다. 나는 인내하며 크고 작고 굵고 얇은 털들을 지혜로이 제거하고 있다. 그리고 털을 뿜는 무법자를 돌보는 일을 무엇보다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

일단 모모에겐 전용 침대가 생겼다. 침대를 좋아하게 만드는 데 애를 좀 먹었지만 이제 모모는 틈날 때마다 내 침대로 올라오지 않는다. 인간이 그렇든 고양이도 바닥보다 고도가 높고 푹신한 장소에서 취침하길 선호한다. 이제 잠자리만큼은 쾌적함이 보장되고 있다. 아울러 오메가3, 코코넛 오일, 올리브 오일 등 모발과 피부 건강을 돕는 영양제도 종종 급여하는 중이다. 털이 빠지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놓는 일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은 잠자리와 영양분으로 좀 더 건강해진 모모는 이젠 털을 좀 더 꽉 잡아둔다.

변화는 더 있다. 패브릭 소파를 과감히 팔고 가죽 소파로 교체했다. 가죽엔 털이 박힐 일도 없거니와 소파 위에 천을 하나 깔고 생활하면 틈새에 들어갈 일도 없고 청소도 용이하다. 겨울옷도 정전기가 덜 나고 털이 엉겨 붙지 않는 패딩 위주로 장만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털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야겠냐고. 그러나 미세 먼지와 황사를 걱정하면서 더 큰 입자의 털을 저항 없이 마시는 건 건강에 대한 모욕이다. 그리고 털로 인한 알레르기와 비염의 고통은 환자가 아니라면 짐작할 수 없는 스트레스다.

이제 유난 떠는 집사들에게 털 날림쯤은 사랑으로 극복하라 말하기 전에 퍼좁이나 돌돌이 하나씩 선물해 주자. 말끝마다 코를 마시며 괴로워하는 친구를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CATSCO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그건 추천하지 않는다.?

CREDIT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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