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의 고양이
마음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별,나의 고양이
그래픽디자이너 이재민?
스튜디오 fnt의 그래픽디자이너 이재민은 ‘고양이 아빠’다. 2013년 봄 첫째 시루를 가족으로 맞았고, 2017년 가을 사무실 근처 길고양이 미미의 딸 자루를 둘째로 들였다. “세상에 사람과 동물이 이렇게 많은데 어떤 인연으로 너와 만나게 되었을까. 오래 함께 살다가 다음 생에도 또 만나자.”
그가 시루에게 남긴 메모를 읽노라면 뭉클해진다. 고양이를 가족으로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마음이어서. 함께하는 고양이가 주는 평안에 감사하며, 그는 자신의 디자인에 고양이를 슬며시 등장시킨다.?
2015년 44개국 44명의 디자이너가 자신들만의 평화의 깃발을 디자인해 전시한 네덜란드의 <플래그 오브 피스(Flags of Peace)>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그는 ‘갤럭시 뮤(Galaxy Meow)’라는 이름의 깃발을 만들었다. 깃발에 그려진 건 단순하게 도안한 고양이 코와 수염뿐이지만, 부분만 보아도 고양이란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평화의 상징으로고양이를 등장시킨 건 “지구와 환경, 사랑과 우정 같은 거창한 소재보다, 보드랍고 따뜻한 털을 지닌 동물을 상상할 때 내가 더 쉽게 평화로워지기 때문”이란다.
2017년 과자·베이커리 페어 <과자전>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로 아트워크를 의뢰받았을 때는 고요한 과자마을을 지키는 고양이를 등장시켰다. 일본 전통 판화 우키요에처럼 ?고요한 화면에서 고양이의 형상은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이 아주 작아도 단 하나만 있으면 능히 어둠을 밝히듯, 이 작은 고양이는 우리 마음의 그늘을 걷어내고 영원히 반짝인다.?
스튜디오 fnt 멤버들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생활용품 브랜드 TWL의 로드숍 ‘Things We Love-Shop & Studio’에서는 1년에 두 차례 플리마켓을 연다. 봄의 춘우장, 가을의 만추장이 그것인데, 이 행사를 알리는 전령으로 등장시킨 동물 역시 고양이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나른한 봄 날씨에도, 포근한 이부자리 속이 그리운 쌀쌀한 계절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이 고양이이기 때문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고양이가 작업에 자주 등장한 건 TWL의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부터였던것 같아요. TWL의 공동 대표 둘과 저, 모두 고양이랑 살다보니 하는 이야기라든지, 공통된 관심사가 고양이인 경우가 많았어요. 시기적으로 시루가 온 다음부터는 아예 작업에 의도적으로 고양이를 등장시키려는 시도를 종종 해왔던 것도 같아요.”
물결처럼 굽이치는 옆구리의 무늬가 예쁜 시루는 2013년봄, 부산에 행사 차 내려갔던 TWL의 스태프들이 구조한 길고양이였다. 서면 시장바닥에서 셔터 문 구멍에 몸이 끼어울고 있던 꼬마 고양이를 외면할 수 없어 데려왔다. 그렇게 서울로 온 시루는 이재민 작가와 가족이 되었다.
“시루가 처음 온 게 2013년 5월 26일이니까 4월 초 생으로 추정해요. 저 혼자 사는 집에 시루만 있는 게 마음이 쓰여서 시루 물건을 조금씩 사기 시작했죠. 강단 없이 마냥 아기 같은 성격이라 미안한 마음이 많았어요.”
이재민이 보기에 시루는 야무지게 의사 표현을 못 하는 꼬마 같다. 다른 집 고양이들은 반려인을 친구처럼 여기고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하지만, 시루는 “이거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해도 돼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는 느낌이란다. 소심하다기보다는 겁 많은 아기 같은 느낌이어서 더 보호해주고 싶다.
시루가 좋아하는 자리는 아빠가 음악을 듣는 스피커 앞이다. 시루가 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스피커 앞에 수건을 깔아뒀더니, 그때부터 여기 앉아도 된다고 생각했던지 자주 올라온다. 그래서 그 자리 근처의 스피커에는 늘 시루의 털이 붙어 있다.
“잠을 자면서도 음악을 듣는지 귀를 쫑긋거려요. 너무 전통적인 곡보다는 1960~1970년대 CTI 레이블 등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좀 더 재즈 펑크나 퓨전에 가까운 곡도요. 마우스를 움직이다 시루를 쓰다듬기도 하는데, 그럼귀찮다고 꼬리를 팡팡거려요.”
시루를 위해 둘째를 들일까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고양이를 두 마리씩 키울 상황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다 운명처럼 둘째가 왔다. “몇 년 전 연건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는데, 건물 뒤 공터에 자주 오는 삼색 고양이가 있었어요. 저희는 미미라고 불렀는데, 잠시 사라졌다가 올해 아기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나타났더라고요. 우리가 먹이를 주는 걸 본 주민들과 갈등이 심해진 바람에, 고민 끝에 입양을 보내기로 했어요.”
결국 미미는 TWL 사무실 고양이가 되었고, 아기 고양이들은 다른 직원들의 집으로 입양을 갔다. 그중 고등어 무늬 자루가 시루의 동생이 되었다. 자루는 금세 새 집에 적응했고 시루를 많이 따랐다. 하지만 엄마가 “인간은 가까이하면 안돼” 하고 가르쳤는지 쓰다듬진 못하게 한다. 언젠가 자루가 마음을 열고 만지는 걸 허락하길 바랄 뿐이다.
195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는 “인생의 시름을 달래주는 두 가지가 있다면, 그건 음악과 고양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재즈 마니아이자 두 마리 고양이의 아빠로 사는 이재민에겐 부쩍 와 닿는 말이다. 하지만 두 가지가 주는 위로의 결은 조금 다르다. 그에게 음악이 “내 주변에공기처럼 얕고 넓게 드리워진 무엇”이라면, 고양이는 “음악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삶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음악이 내게 주는 것에 비하면, 내가 음악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하지만 고양이와 나는 많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지요. 밥, 신뢰, 물리적 접촉, 애정, 시선, 털, 체온 등 여러 가지로요. 확실한 건, 고양이와 음악 둘 다와 함께하는 삶보다 더 좋은 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고양이와 함께하면 느껴지는 삶의 온기가 달라진다고 그는믿는다. 혼자 살며 가끔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뭔가 꼬물꼬물 부드럽게 움직이는 존재가 집에 있음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된다. 내 인생에 들어온 고양이 가족이 소중하기에, 세상의 다른 고양이들도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CREDIT
글 고경원
자료협조 이재민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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