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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아래서 주인 기다리던 로등이
입양 가던 날

부산의 한 원룸촌에는 특별한 고양이가 살았다. 밤이 되면 늘 가로등 불빛 아래 누군가를 기다려 ‘로등이’라는 별칭이 붙은 노랑둥이였다. 로등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것은 자신을 버린 전 주인이었다. 그 로등이가 부산에서 인천을 거쳐 안성으로, 입양을 갔다.
네가 로등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로등이에는 이름이 많다. 많았었다. 로등이, 모찌, 지오... 근처를 오가는 마음씨 좋은 사람 친구들이 밥과 물을 챙겨주며 제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 노란 고양이는 유독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낮에는 늘어져 어슬렁거리다가도, 밤만 되면 꼭 가로등 아래 우두커니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발자국이 가까워지면 귀를 쫑긋 세우고, 행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했다. 질리지도 않고.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 이 애는 전 주인을 기다리고 있구나’ 로등이는 캣맘이 어루만져주면 얼굴을 들이밀며 온몸으로 골골대면서도 절대 따라가지 않았다. 망부석처럼 앉아있다 취객의 발길질에 걷어차여도 잠시 피할 뿐,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소설을 써보자. 아마도 주인은 환한 가로등 아래서 로등이를 버렸을 것이다. 이 유순한 고양이는 잠깐만 있으면 주인이 돌아오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을 것이다. 사람 좋아하는 노랑둥이를 봐주는 길엄마들이 생겼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로등이를 보고 있노라면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알아차리게 되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인천, 다시 안성으로
길에서 산 시간과 치아 상태로 짐작했을 때 올해 5살. 인생의 대부분을 기다리며 살았다. 로등이는 야생성이 전혀 없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온정으로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 중성화 수술도 길엄마를 통해 받았다. 그런데 최근 로등이가 음식을 거부하고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구내염 증상이었다. 길엄마들은 고민 끝에 로등이를 구조했다.
먹지도 못하는 모습에 예감은 했지만 로등이는 이가 녹아있었다. 하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작 5살 나이에 전체 발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순하디 순한 녀석 아니랄까봐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 이후 로등이는 반 개도 못 먹던 츄르를 두 개나 먹어치웠다.
그 이후의 일은 1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는 일처럼 진행됐다. 힘들이지 않고, 모두가 놀랄 정도로 순조로웠다. 로등이 이야기를 온라인에 올리자 바로 인천에서 연락이 왔다. 좋은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임시 보호를 하겠노라고. 임시보호자는 이 녀석을 위해 이사까지 미뤘다. 로등이를 돕고 싶다며 전국 각지에서 십시일반 병원비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로등이를 태우고 안성에 간다.

임시 보호자가 로등이를 데리고 나왔다. 이 추운 날 자기 외투를 로등이 케이지에 덮었다. 뒷좌석에 케이지를 올리고 안성으로 출발. 로등이는 흥분과 두려움으로 분홍 코가 되어 케이지 속에서 눈을 굴리고 있다. 덜컹이는 차 안이 불안한지 다소 날카롭게 울기도 한다. 피곤함 반, 달랠 요량 반으로 케이지 위에 머리를 기댔다. 로등이는 울음을 멈추고 소형 엔진 같은 골골송을 들려준다.
케이지 위에 머리를 기대고 선잠에 빠졌다가, 새 가족에게 가고 있노라고 상황을 설명했다가, 이 고양이의 고단한 5년을 생각하다가 어느새 안성이다. 로등이도, 우리도 모두 긴장했다. 쭈니라는 몰티즈 강아지와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집. 이 아이가 불청객이 되지 않았으면. 먼발치서부터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뛰어오는 큰형 쭈니를 보자 맥이 탁 풀리며 웃음이 난다. 좋은 가족에게 왔다는 안도감이 몸을 감싼다.

버선발로 달려 나온 쭈니와 엄마. 그런데 덕근이와 써니 두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놀란 마음에 침대 아래로 줄행랑친 녀석이 하나, 먼발치서 기웃대는 녀석이 하나. 그래. 고양이는 개가 아니었지. 성묘끼리의 합사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로등이가 낯선 환경에 떨다 써니가 은신하던 침대 아래로 들어가게 된 것. 써니에게는 소심한 하악질을 두어 번 하더니 같은 침대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밝은 곳에서 보고 헤어지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눈을 맞추니 끔벅끔벅 눈인사를 해준다.
엄마는 로등이 이름을 ‘다이아몬드’로 짓기로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아이와 평생 변치 않고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며 지은 이름이다. 줄이면 ‘아몬드’가 된다. 남은 여생, 아몬드가 고소하고 든든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묘한 확신과 함께 집을 나선다. 사람이 매몰차게 내친 솜방망이를 다시 사람이 잡았다. 가로등이 다이아몬드가 되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 모두가 기쁘다.


CREDIT
에디터 이은혜
사진 정미애, 엄기태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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