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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노령묘 별이의 별명

  • 승인 2017-11-28 10: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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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노령묘 별이의 별명

우리 동물병원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 별이는 평소엔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지만, 병원 대기실에 보호자들이 앉아 있으면 도도하게 보호자 앞에 가서 돌아앉는다. 마치 “어서 날 궁딩팡팡 해주시죠?”라고 말하듯이. 별이를 처음 보는 보호자들은 다소 당황하지만, 오래 본 보호자들은 으레 별이의 궁둥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그러다 그만두면 ‘냐~앙’ 소리와 함께 꼬리를 살랑거리며 보호자 무릎 위를 왔다가 갔다 하며 조금 더 해주길 요구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팔의 통증을 감수하고 이내 다시 별이의 엉덩이를 두드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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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는 ‘간호사 별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소싯적에 아픈 아이들에게 뭔가 얘기해주고 곁에서 간호해 주는 것처럼 입원장 곁을 맴돌며, 눈도 못 뜬 새끼고양이들이 병원에 오면 핥아 주고 품고 잤기 때문이다. 또 한동안은 ‘수의사 별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사라졌다 싶으면 진료실 원장 의자에 앉아 있거나, 진료를 할 때도 진료실 한 쪽에 앉아서 진료하는 과정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어떤 때는 데스크에서 손님을 맞이하거나 배웅하길 즐겨 ‘데스크 별이’로 통하기도 했다.

나이가 든 고양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는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작은 움직임에 호기심을 보이던 고양이도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이나 장난감에 대한 반응이 줄어든다. 움직임은 줄고 자는 시간은 더 많아진다. 나이가 들며 질병에 걸리거나 인지 능력이 감소돼 사람의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를 겪는 고양이들도 많다.

여러 가지 별명을 얻었던 별이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다. 용강동물병원에서 지낸 시간만 14년이고 구조됐을 때 3세령 정도로 추정했으니 지금은 17살 정도라고 생각된다. 예전처럼 입원실에 가서 입원한 아이들 곁을 지켜주지 않고, 예방 접종하러 온 아기 고양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다가오면 슬쩍 자리를 피해 병원 안쪽으로 들어간다. 진료할 때 진료실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좋아하던 깃털 장난감을 팔이 아프게 흔들어 대도 오히려 안쓰럽게 쳐다볼 뿐 시큰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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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앞서 얘기한 것처럼 보호자가 대기실에 앉으면 슬쩍 가서 엉덩이를 내밀고, 같이 지내는 고양이 귀염이나 요나가 귀찮게 굴면 깔아뭉갠 후 목덜미를 물어 노익장(?)을 과시하곤 한다. 치아도 건강하고 식욕도 좋아 사료도 잘 먹고 캔도 잘 먹고 치아 간식도 잘 먹는다. 일 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받는 건강검진에서도 다행히 아직 특별한 질병의 징후는 없다.

사람의 기대 수명이 늘어 100세 시대를 얘기하듯 고양이의 기대수명도 늘어 20세 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통계가 없어 고령 고양이들의 비율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고령으로 분류되는 15세 이상의 고양이들은 분명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앞서 얘기한것처럼 고령묘가 되면서 노화로 인한 신체 및 행동의 변화와 질병의 발병률이 증가하게 되는데, 어떻게 고령의 고양이를 관리하고 삶의 질을 유지시켜 줄 것인가가 앞으로 수의사와 보호자들의 중요한 고민이 될 것이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던 초보 수의사 시절에 만나 그 동안 수의사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줬던 별이가 이제는 더 어려운 숙제를 던져줬다. 나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더 분발해야 할거야, 라고. 이제 보니 별이는 병원에서 함께한 시간 동안 내 곁을 지키며 더 좋은 수의사로 나아가길 당부하고 있었다. 여러 별명이 있었

지만, 별이는 언제나 나의 ‘선생님 별이’였다.

CREDIT

용강동물병원 박원근 원장

그림 지오니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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