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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 승인 2017-11-14 09: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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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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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작

누군가 당신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60 평생 착실하게 교직 생활을 해온 사람. 길고양이가 딱해 밥을 챙겨주던 사람. 유난히 몸이 약하던 사람. 그리고 한 고양이를 평생 마음에 품게 된 사람.

당신이 방글이를 만난 것은 2년 전, 호되게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교직 생활을 하며 길냥이들의 밥을 챙겨주던 당신에게 방글이는 다른 아이들과 좀 달랐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모진 이들에게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기어코 밥을 먹으러 오곤 했으니까요. 자세히 보니 뒷다리도 쓰지 못하는 불구였습니다. 임신묘의 딱한 사정에, 당신은 어느새 방글이를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고양이에게 새 삶을 선물하기 위해, 구조를 결심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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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그리고 당신의 변화

사람들의 괴롭힘으로 밥 주는 장소까지 빼앗기던 그 날, 당신은 방글이를 구조합니다. 휘청이던 몸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습니다. 만삭의 방글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안전하게 세상에 나온 새끼 고양이들은 각자 입양을 가게 되었지만, 방글이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병원과 임시 보호처를 전전하다가 결국은 15살 노견이 있는 당신의 집에 오게 되었지요.

그런데, 방글이의 상태가 이상했습니다. 자신의 꼬리를 물어뜯는 자해행위를 하고 또 하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방글이를 좀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에도 이상이 나타났습니다. 혹시나 싶어 찾아가 본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파킨슨병. 치료시기를 놓쳤다는 그 말에 당신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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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종이우산

당신이 내게 내민 손

병으로 교직을 떠나게 되었고, 순식간에 일상은 마비됐습니다. 하루를 약으로 버티는 일이 늘어났죠. 정신이 까무룩해져 순간순간 기억을 잃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문득 맑은 정신이 돌아올 때면 병원에 있을 방글이 생각에 당신은 황망해지곤 했습니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당신은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쓰게 됩니다. 문맥도, 앞뒤도 없지만 이상하리만치 절박함이 뚝뚝 묻어나던 글. 그래요. 당신이 내게 남긴 첫 번째 글이었습니다. 파킨슨병 환자가 장애묘를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문신을 새기듯 남긴 글. 나는 그 글을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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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은 당신의 손

긴 시간은 필요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연이 내 가슴을 두드렸으니, 이유는 그거면 충분했어요. 부랴부랴 임시 보호처를 리모델링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방글이를 돌보아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먼발치에서 걱정할 당신에게도 작은 평안을 주고 싶었습니다.

방글이를 제게 맡기고 헤어지는 순간, 당신의 남편이 속삭이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팠지... 이제 끝났다. 이제 끝났어...”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장 많이 아파했던 것은 어쩌면 방글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 앞으로 편지가 하나 왔습니다. 당신이 손수 쓴 방글이의 일지였습니다. 언제 처음 발견했는지, 어떻게 케어했는지... 기억을 더듬어가며 쓴 글이었어요. “제가 이제는 글씨도 제대로 못 쓰는 퇴물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방글이를 사랑합니다”까지 읽고, 한참동안 다음 줄을 읽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방글이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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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이의 시작

당신의 절박한 안부 글 이후로 계절이 두어 번 지났습니다. 방글이는 임시 보호처에서도 유독 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이였습니다. 자해의 흔적으로 단미 수술을 받아 꼬리는 흔적기관이 되었지만 그런 것쯤, 아무 상관없었죠. 방글이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모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번엔 당신을 활짝 웃게 해볼까요? 아니면 울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방글이가 가족을 찾았습니다. 따스한 집에 입양됐어요. 입양 가던 날, 막내딸이 온다고 떡도 하셨답니다. 요즘 방글이는 고3 오빠, 중2 언니, 엄마, 아빠, 고양이 동생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지내고 있어요. 당신과 내가 간절히 기도하던, 그런 가족이라면 믿어지시나요?

당신을 떠올리면 이상의 ‘이런 시(詩)’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 시구로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CREDIT

글 사진 로마맘

에디터 이은혜 ?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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