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동묘에서 만난 동묘의 기억

  • 승인 2017-11-13 10:32:22
  •  
  • 댓글 0

ON SITE

동묘에서 만난 동묘의 기억

921b0a9624d1904af04d25069697228f_1510536

동묘에서 만난 동묘

몇 년 전이었을까. 퇴근 후 추위로 벌게진 뺨을 문지르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아는 친구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양이가 이상하단다. 나는 그녀가 고양이를 키우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너 언제부터 고양이 키웠어?”라고 묻는 내게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며칠 전 동묘 애완동물 거리에서 추위에 떨던 새끼 고양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무작정 2만원을 주고 사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고양이는 축 늘어졌다. 병원을 전전했다… 이후의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자면 추운 겨울 동묘에서 사 온 새끼 고양이는 알 수 없는 질병을 버티지 못하고 고양이별로 떠났다. 그녀는 첫 반려동물을 잃고 오래 의기소침했다. 한동안은 고양이를 산 동묘 근처에 가는 것도 꺼려했다. 철창 속에 모여 꼬물대는 고양이를 보면 죽은 새끼 고양이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몇 번의 겨울이 지나갔다. 안녕하지 못하던 수많은 동물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동묘에서 2만원에 구해온 그녀의 동묘(冬猫)가 생각나 그 곳으로 다시 발걸음했다.

921b0a9624d1904af04d25069697228f_1510536

921b0a9624d1904af04d25069697228f_1510536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동묘

흐린 날씨 때문일까. 얼마 전 있었던 큰 화재의 영향일까. 유난히 스산하게 느껴지는 골목을 지나자 하나 둘 동물이 담긴 철제 케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무채색의 거리, 칼바람 속에서 버티기 위해 서로의 품을 파고드는 동물들. 귀엽다는 생각보다 딱하다는 감정이 앞선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이곳의 동물들은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 끈 것은 토끼 우리였다. 사람의 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케이지 안쪽에 예닐곱 마리의 토끼가 모여 있었다. 무심코 가까이 다가가니 한 녀석이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우뚝 서더니 앞발을 내민다. 마치 어서 이곳에서 꺼내달라는 것처럼. 내민 앞발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노랗게 묻어있다.

애써 눈길을 돌린다. 토끼장 옆에는 햄스터장이 놓여있다. 작은 리빙 박스에 햄스터가 빼곡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햄스터를 사려는 듯 화기애애 모여 있다. 애완동물거리에서 목격한 가장 활력 넘치는 장면이었다. 햄스터와 햄스터장을 사는 학생들 뒤로, 하얀 새가 겹쳐 보인다. 날 곳을 잃고 누군가 자신을 택해주길 기다리면서, 철장 속에서 미동조차 없는 새였다.

921b0a9624d1904af04d25069697228f_1510536

921b0a9624d1904af04d25069697228f_1510536

고양이 없는 거리에

누군가 이야기했다. 동묘역에 있는 청계천 동물거리에서는 못 구하는 동물이 없다고. 농담 삼아 고래가 있냐고 물어봐도 일주일이면 구해줄 수 있는 곳이 그곳이라고 했다. 실제로 동묘에서는 일상에서 쉽게 보기 힘든 동물들과 만날 수 있었다. 프레리독부터 도마뱀까지. 인절미 같은 털색을 지닌 프레리독은 틈만 나면 철창 사이로 탈출을 시도했나보다. 수백 번 수천 번 얼굴을 들이밀어 얼굴 모양으로 케이지가 휘어있다. 비틀린 철장 사이로 내민 주둥이는 털이 숭숭 빠져있다.

동묘, 겨울 고양이를 찾으러 왔다가 고양이 아닌 다른 동물들을 잔뜩 만났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청계천 애완동물거리에서 더 이상 취급하지 않는다는 상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깃털 하나 만큼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작은 동물들이 담긴 케이지에는 수통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했고, 자신의 배설물이 덕지덕지 붙은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털친구도 있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없어진 그 케이지는 또 무슨 동물들로 채워졌을까. 집에 가는 지하철 안, 녹슨 철창 속 까만 눈망울이 떠오른다. 미안함에 끝까지 똑바로 눈을 맞출 수 없었던 수많은 눈동자들 말이다.

CREDIT

에디터 이은혜

사진 김기웅 한은주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