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SCO
바야흐로 털갈이의 계절
클리닝 마스터를 만나다
집사에게 월동 준비란 곧 고양이들의 나부끼는 털을 제압하는 일이다. 퀘스트를 완벽히 처리하기 위해 수많은 집사들이 머리를 모았지만 털 완전 박멸에의 꿈은 여전히 요원한 일. 털과의 전쟁에서 연패를 거듭하던 한 초보 집사가 털 클리닝으로 소문난 비밀 사무소 CATSCO의 문을 두드렸다.
“웨잇. 거기 잠깐.” 집무실의 나무 바닥을 딛자 흔들의자 너머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자가 바로 ‘마스터’인가. “냄새부터 불결해. 문 앞에 써놓은 경고문을 못 읽은 거야?” 분명 문패 아래 ‘더러운 것은 돌아가라’라는 작은 글귀가 쓰여 있긴 했다. 사무실의 캐치프라이스인 줄 알았는데 방문자에게 하는 경고였다니. 의자가 빙글 돌아가자 마스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로 얼굴의 2/3을 가린 남자. 머리털도 모근까지 완벽히 밀어버려 거대 공룡의 알처럼 보였다. 그는 책장 위 먼지떨이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와 나를 패듯이 탈탈 털었다.
“쿨럭, 삼색 고양이 한 마리, 암컷, 쿨럭, 2세에서 3세. 중성화 완료. 쿨럭, 옷에 묻은 털색은 세 종류, 길이가, 쿨럭, 같으니 한 마리, 쿨럭, 일 수밖에.” 소설 속 어느 저명한 탐정을 흉내 내고 싶은 모양인데 기침 때문에 맘 같지 않아 보였다. 여하튼 대단하시며 알겠으니 어서 우리 집 털 난리 좀 수습해 주시라 부탁하려던 차, 마스터는 방 안에 있는 공기청정기 일곱 대를 풀로 가동시켰다. 원하는 쾌적함이 아니라면 대화할 생각도 없는 것인가
# 세탁 : 강적을 상대할 땐 발상을 전환하라
“스튜핏! 스튜핏!” 먼지떨이는 알고 보니 회초리였다. 나이 서른 넘어 허벅지에 매를 맞을 줄이야. “옷의 냄새로 보니 세탁기는 꼬박 돌리는 모양인데 고양이를 키운다면 방법이 틀렸어.” 마스터는 내 바지에 끼인, 아니 단단히 박힌 고양이의 털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리고 불결하다는 듯이 손을 탁탁 털었다. “아니, 세탁기가 하는 일에 제가 어떻게 관여할 수 있습니까?” “털이 옷에 그대로 붙어 있는데 문제가 없다는 건가? 정확히는 방법이 아니라 순서가 틀렸지, 순서가.” “순서요?” “세탁은 어디서 하나?” “동네 세탁소에서 합니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온 빨래를 건조기에 넣겠지?” “맞습니다.” 다시 회초리가 날아들었다. “건조기를 먼저 써야 돼, 건조기를!”
마스터는 세탁기에 빨래를 넣기 전에 건조기에 넣고 10분 정도 돌리라고 했다. 고양이와 살게 된 후 셔츠에서 속옷까지 털 코트화가 진행됐다. 처음엔 꼼꼼하게 제거했지만 언젠가부터‘이 정도면 아무도 털인 줄 모르겠지’라며 적잖은 털을 묻힌 채 외출했다. 아무리 강력하게 빨고 손으로도 문대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털을 박멸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조기를 먼저 돌리면 옷 사이사이에 박힌 털의 상당수가 알아서 빠져나온단다. 우화 ‘햇님과 바람’의 지혜인 것이다. 마스터는 세탁 시 섬유 유연제, 식초를 넣어 정전기를 제거하면 세탁 후 건조 시에 남은 털이 잘 제거된다는 팁도 더해줬다.
# 청소 : 롤 클리너 하나로 뭘 하겠다고?
어쨌든 잘 세탁한 옷에도 엄청난 양의 털이 묻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마스터는 옷에 묻은 털에 삿대질을 하며 각혈이라도 할 것처럼 조롱성 기침을 세차게 해댔다. 마스터란 칭호는 아무나 다는 게 아니구나, 중얼거리며 가방에 넣어온 롤 클리너를 꺼내 몸을 문댔다. 이 자의 발작 같은 기침부터 멈추게 해야 얘기를 더 듣든 말든 할 테니. 마스터는 롤을 굴리고 있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갑자기 일어나 구석의 찬장을 열었다. 그곳엔 생전 처음 보는 최첨단 청소 도구들이 완벽한 직각과 거리를 유지하며 도열해 있었다. 마스터는 더 깊숙한 곳을 뒤지더니 한 쌍의 고무장갑을 꺼냈다.
“수백 개 제품을 써봤지만 이만한 게 없지” 마스크 사이로 혼잣말이 들렸다. 괜히 신뢰가 갔다. 곧 고무장갑은 내 얼굴 위로 던져졌다. 군소리 없이 양손에 끼고 털을 훔쳤다. 효과는 상당했다. 장갑에 물기가 묻었다면 더 깔끔하게 정리됐을 것이다. 리필할 클리너 테이프도 없어 경제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옷을 밀고 있는 사이 로봇 청소기가 이상한 돌 하나를 싣고 접근해 왔다. 아무래도 예사 로봇 청소기는 아닌 모양이다. 로봇이 들고 온 현무암처럼 구멍이 뚫린 이 돌의 이름은 퍼좁. 이 또한 털 제거 효과가 막강한 걸로 알고 있다. 특히 이불이나 카펫 위 털 청소에 효과적이라는, 블로거들의 찬양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기본 아이템 롤 클리너,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고무장갑, 거친 재질의 옷감에 좋은 퍼좁의 삼각편대라면 크고 작은 모든 털들을 싹 다 솎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청소2 : 죽은 털을 다시 살려내서야
공기 청정기의 알림 등이 모두 파란색(청결)을 나타내자 마스터는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상대방의 청결 수준에 따라 매너의 차이가 상당한 사람이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고양이 털이 나부낍니다. 고양이가 아니라 누에고치 같아요. 이 털은 팔 수도 없고…” “집 청소는 어떻게 하십니까?” “꽤 꼼꼼하다고 자신합니다. 하루에 두 번은 청소기를 돌리고요. 걸레질도 빼놓지 않죠.” “청소기를 돌릴 때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무슨 말씀이시죠?” “이를 테면 분명히 빨아들였던 털들이 다시 나타난다든가.” “어, 그러고 보니 그런 위화감이 들긴 했지요. 근데 그건 모모가, 아. 제 고양이 이름입니다. 모모가 제가 안 본사이 그새를 못 참고 뛰어다녀서 빠진 거라 생각했어요.” “저런, 고양이가 애꿎은 미움을 샀군요?” 이 무드에도 회초리가 날아들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무게가 제로에 가까운 털은 조금 큰 먼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청소기는 털에게 날개를 달아주죠. 바닥에 깔린 털을 부양 해 날아다니게 하거든요. 그래서 청소 후에 다시 바닥에 털들이 내려앉은 걸 보신 겁니다. 그건 새로 뽑힌 모모의 털이 아니라 당신이 자유를 준 조금 전 그 털이에요. 여기 청소기 뒤에 얼굴을 가져다 대보십시오. 잘 박혀 있던 머리카락도 빠질 강풍아닙니까?” 말하는 도중 자기 말에 몰입해 흥분하는 스타일이었다.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그건 물걸레질로 닦아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물기는 말입니다. 바닥에 털을 붙여 버리는 접착제입니다. 물이 마르고 나면 눌러 붙어 있던 털이 그대로 부활해 버리죠.” 청소기도 물걸레도 안 된다니. 이 자는 반만 년 동안 인류가 이룩한 청소의 유구한 역사와 과학적 진보를 모조리 부정할 셈인가! “대신 이걸 써 보시죠.”
마스터가 찬장에서 꺼내온 것은 기다란 밀대. 이건 앉아서 닦아야 하는 물걸레질의 수고를 덜기 위한 오래된 발명품이 아닌가. 엇, 그런데 밀대 끝 걸레를 부착하는 부근이 조금 독특하다. “정전기 부직포란 겁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마스터는 설명을 이었다. “걸레 밀대에 젖은 걸레 대신 부직포를 붙여서 밀면 정전기가 마치 자석처럼 털들을 빨아들이죠. 부직포에 붙은 털 제거도 편할뿐더러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 자, 은근히 경제적인 부분까지 신경 쓴다. “정전기 부직포로 큰 털들을 끌어 모아 정리한 후, 남은 털은 청소기로 제거하는 게 좋겠습니다. 공기 청정기가 있으면 금상첨화겠네요. 다시 말하지만 물걸레질에 의지하지 마세요. 제대로 털과 먼지를 제거하지 않고 물걸레질을 하면, 오히려 부유했던 먼지가 다시 바닥에 들러붙으니까요. 물걸레질은 청소용이 아니라 향균이나 유광 효과를 내는, 요리로 치면 가니쉬 같은 절차죠. 아시겠어요?”
*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CREDIT
에디터 김기웅
그림 우서진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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