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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

  • 승인 2017-11-07 10: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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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ETHER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겨울 집

링컨이 민주주의를 논하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라는 말을 남겼다면 두령이형은 길고양이 집을 논하며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이라는 표절, 아니 패러디를 남겼다. 길고양이를 위한 겨울 집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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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들려준 것은 전직 길고양이 출신, 현직 기업 상무 ‘두령이형’이었다. 두령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두령이형으로 불리는 이 사나이는 치대고 싶은 매력의 고양이다. 두툼한 솜방망이로 건네주는 명함에도 두령이가 아닌 두령이형이라고 쓰여 있었다. 두령이형은 이제 막 시작된 스타트업 기업 ‘따뜻한 친구들’의 상무 겸 홍보팀장이다. 길고양이를 위한 집, 길고양이 전용 밥그릇 테스트 현장에는 늘 두령이형이 투입된다. 길고양이 출신인 두령이형의 호불호는 개발 프로세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말 그대로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겨울 집이 되는 셈이다.

공개된 프로토타입의 길고양이 집은 독특하게도 우유갑 모양이다. 플라스틱 외관에 내부는 보온 유지를 위한 스티로폼을 넣었다. 우유갑 뚜껑 부분은 열 수 있어 물품을 보관하거나 벽돌을 넣어 무게를 무겁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집 지붕에 쓰인 문구는 ‘안녕, 낯선 사람’ 하고 말을 걸어온다. 인간 친구가 전해준 온기로 겨울을 무사히 나고 싶다는, 부디 해치지 말아달라는 진심이 담긴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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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개발 중인 길고양이 집이지만 벌써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길고양이를 위해 만들어 본 겨울 집은 맞지만, 상품화를 결심한 것은 사람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길고양이집을 보고 얼른 만들어달라고, 내 지갑 속 돈을 털어가라는 독촉(!)이 끊이지 않았다. 마당냥이나 외출냥이용으로 구입을 원한다는 집사들의 연락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이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캣대디의 문의다. 길 위의 생명들이 무사히 겨울을 나길 바라는 따끈한 마음들은 이렇게나 많다. 마음만으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길고양이들이 추위에 떨지않아도 될 만큼.

길고양이를 위한 마음은 기업을 만들고, 지갑을 열게 하고, 심지어 고양이를 일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사람이 길고양이와 공존하는 희망을 살며시 품어도 괜찮지 않을까. 진흙탕이라고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인터뷰

두령이형 | 코리안 쇼트헤어, ‘따뜻한 친구들’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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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과거 길고양이 시절 ‘두령이파’ 보스였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어떻게 회사원이 되신 거예요?

그럼 나도 거두절미하고 얘기하겠네. 나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두령이파의 대장이야. 다만 지금은 따뜻한 친구들의 상무를 겸하고 있을 뿐이지. 지금 두령이파 일은 부하들이 맡아서 하고 있어. 영역을 지키는 우두머리 일을 어떻게 그만두겠나. 그만두고 싶어도 딸린 길고양이들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어.

명함을 보니 직함이 홍보팀장 겸 상무시던데요. 역시 큰 머리, 아니 브레인 역할인 건가요?

큰 머리 뭐?(발끈) 예민한 곳 건드리기 있는 건가? 전국에 있는 대두묘들의 원성을 한 번 받아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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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흠. 그래. 머리 언급만 빼면 맞는 말을 했다네. 난 두령이파의 대장이자, ‘따뜻한 친구들’ 상무로서 홍보팀장과 영업팀장 몫을 해내고 있지. 게다가 틈틈이 디자인 컨펌, 성능 테스트도 하고. 브레인 역할이라기보다는 브레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아마 난 지금 한국에서 가장 바쁜 길고양이일 거야. 잠도 20시간 자던 걸 19시간으로 줄였다니까.

디자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렇게 감각적인 길고양이 집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후후. 나랑 따뜻한 친구들이 개발한 길고양이 집이야. 이름은 두령일호(DR01)지. 감각적이라니 듣기 좋은 칭찬인 걸. 그렇지만 그만큼 길고양이 집이 우리나라에 없다는 말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네. 마음이 아주 복잡해지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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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가요? 색이 검은색 무광인 것도 독특해요.

우유팩으로 정한 이유가 있다네. 우선 익숙한 모양이라 낯설지않지 않은가? 그리고 청소나 관리가 쉽도록 뚜껑을 열 수 있도록 만들었지. 알겠지만 고양이들이란 어찌나 위생에 신경을 쓰는지. 지붕에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재미있고 따뜻한 메시지를 붙일 수 있어. 해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될 수도 있겠지.(잠시 고요) 집인 검은색인 이유는 우선 눈에 잘 띄지 않기 위해서야. 두령일호(DR01)는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중요했거든.

정성을 들여 스티로폼으로 겨울집을 만들어도 자꾸 버려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두령일호는 손톱만한 미적 감각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버리지 않겠죠?

길냥이 시절에 스티로폼이나 종이박스 집 많이 봤지. 오갈 곳 없는 추운 날 얼마나 의지가 되던지… 정말 귀하게 이용했는데 그런 집을 보기 흉한 쓰레기로 보고 치워버리는 인간들도 있더군. 그런 일로 인간끼리 싸우기도 하는데 중간에서 참 난처했어. 이번에 만든 집은 그런일이 줄어들길 바라면서 제작했지. 어쩐지 버리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예뻐야 되지 않겠는가? 그게 포인트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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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길고양이들에게 테스트도 해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반응은 어땠나요?

일단 두령파 부하인 빅나루, 앤소니에게 2채를 분양해줬지. 엄청 좋아하더라고. 비나 바람, 추위를 피하는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피드백을 받았어.

겨울 집 말고 다른 아이템도 개발하고 계신가요?

개미가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밥그릇을 제작하고 있지. 나 혼자 아이디어를 내는 건 아니야. 인간 동료들과 협업이지. 다년간의 길고양이 경력으로 그 때 겪은 불편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개발하게 됐어. 이름은 ‘가장 작은 길고양이 급식소’로 지어봤는데 어떤가. 감성적이지? 빗방울도 개미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열심히 실험 중이야.

정말 추위가 코 끝까지 도착했어요. 뭘 준비해야 할까요?

길고양이들에게 고하겠네. 얼른 살을 많이 찌우고 털도 찌우게. 추위랑 바람 피할 곳도 미리 점 찍어두고. 최대한 따스한곳을 물색해 둬. 나는 집을 많이 만들 테니까 그 때까지만 버텨. 길고양이도 기죽지 않고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살 권리는있는 거니까. 내가 그 권리를 위해 열심히 발로 뛸게.

*두령이형과 친구들이 만든 겨울집을 더 보고싶다면 이곳으로.?

CREDIT

에디터 이은혜

자료협조 박경민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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