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집냥이와 길냥이
미리 쓰는 겨울 일기
고양이 애호가에게 겨울은 복잡한 계절이다. 겨울 내내 절친이 될 코타츠를 꺼내자 반색을 하는 내 고양이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바깥의 혹독한 추위를 버틸 생명들이 떠오른다. 집냥이와 길냥이, 그리고 그 주변인들의 입동은 어떻게 다를까.
월요일 AM 7 : 00
코끝이 차가워 눈을 뜬다. 밤사이 제법 추워진 모양이다. 반려인이 눈 뜨자마자 찾게 되는 건 두 마리 집고양이. 보리는 다른 장소에서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고, 곁에는 알콩이 혼자다. 먼저 눈을 끔벅거리며 아침 인사를 건네자 고양이식 눈인사로 천천히 답해준다. 따뜻한 녹차를 마신 것처럼 몸이 녹는다. 월요병을 치유하는 처방전은 고양이다.
화요일 PM 10 : 00
아무래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보일러를 틀었다. 반려인은 가스비를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 날이 조금 더 추워지면 와인으로 뱅쇼를 만들어 마시자는 생각을 연이어 한다. 열 살 치즈냥 보리는 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뜨끈한 기운이 바닥을 타고 올라오자 골골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한참 골골대던 보리는 느릿하게 침대로 향한다. 오늘은 동생 알콩이와 함께 자고 싶은 모양이다.
월요일 AM 6 : 00
호오- 하면 입김이 나오는 아침. 밤사이 기온이 더 내려갔다. 캣맘은 이불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웠던가 하고 생각에 잠긴다. 찌뿌둥한 몸은 비명을 지르지만 하나, 둘 떠오르는 얼굴들 때문에 결국 몸을 일으킨다. 사료와 고양이 습식 캔을 바리바리 들고 나가니, 늘 모이던 그 자리에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조심한다고 했건만 무심코 손을 깊이 내밀자 한 녀석이 하악질을 한다. 하악질이 새하얗게 공기 중에 흩어진다. 날이 춥긴 추운 모양이다.
화요일 PM 8 : 00
캣맘은 마음이 복잡하다. 10년 동안 아이들 밥을 주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온 고양이가 있었다. 장대비가 와도 내내 빗속에서 길엄마를 기다리던 아이, 너무 예뻐 이뿌니라고 이름 붙여준 냥이. 그 아이가 최근 점차 음식을 잘 먹지 못하더니 눈에 띄게 추레해진 것이다. 구내염이 확실해 보였지만 자칫 병원에서 묘생을 마감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큰 소동 없이 살게 두는 것이 나은 선택은 아닐까 물끄러미 아이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들은 혹독한 겨울이 올 것을 대비하는 것처럼 열심히 먹는다.
수요일 AM 10 : 00
알콩이가 보이지 않는다. 소리 내 불러 봐도 기척조차 없다. 처음 3분은 웃을 수 있었는데 점차 입이 바싹 마른다. 이사를 하면서 열어둔 현관문을 기웃대다가 보리가 30분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기억 때문에 반려인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알콩아, 알콩아? 하는 목소리가 끼익거린다. 급하게 외투를 껴입고 허둥지둥 핸드폰을 챙기는데 낑 하는 작은 소리가 난다. 설마 하면서 침대 한 편에 구겨져있던 담요를 살피니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알콩이가 보인다.
목요일 PM 5 : 00
함께 7년을 키우다 보니 생김새도, 하는 행동도 닮아간다. 보리와 알콩이는 지금 똑같은 식빵 자세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밥도 같이, 낮잠도 나란히 자는 일이 늘었다. 두 녀석이 티격태격 대던 일도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싸우지 않는 건 기쁘지만, 가끔 한밤의 광란 우다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보리도 알콩이도 나이를 먹어간다. 보리는 열 살이다. 다음 달을 보내고 나면 금방 열한 살이 되겠지.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갔으면. 아니, 내 시간을 조금 떼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반려인은 두 고양이를 오래 눈에 담는다.
수요일 AM 5 : 00
캣맘은 비장하고, 이뿌니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길 엄마는 마음을 굳혔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구조해서 치료받게 하자고. 통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뿌니였지만 길엄마가 도착하기도 전에 기다리고 있었다. 캣맘이 묵묵히 통덫을 설치했다. 고양이는 통덫을 피해 캣맘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애를 태웠지만, 결국은 배고픔이 이겼다. 그 뒤부터는 전쟁이었다. 통덫을 어떻게 들쳐 업고 병원에 갔는지, 길엄마와 이뿌니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목요일 PM 3 : 00
동물병원 원장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10살로 추정되는 길고양이가 입원한 것이다. 길고양이의 수명은 집고양이와 비교 할 수 없이 짧다. 이 정도의 고령은 수의사로 지내며 처음이었다. 고양이는 야생성이 강해 모든 의료진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아마도 이 아이의 평생 밥을 책임졌을 캣맘이 병원에 도착해 말을 걸어주자 고양이는 차분해졌다. 심한 구내염으로 전체 발치가 예정되어 있어 다소 부담을 느끼던 수의사의 마음도 한결 누그러졌다. 그래, 다 잘 될 거야. 내년은 더 좋은 해가 되도록 만들어 줄게.
길에서 10년을 살아낸 이뿌니는 모든 수술을 건강히 잘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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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은혜
그림 지오니
자료제공 박고은, 정마온니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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