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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릉아, 너는 여전히 아름다운 냥이야

  • 승인 2017-10-27 09: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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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릉아, 너는 여전히 아름다운 냥이야

협회로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낙성대에서 고시촌을 운영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였다.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여자가 동물을 여러 마리 키우고 있는데 하루 종일 집안에서 게임만 하느라 방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이런 제보가 많다. 애니멀호더까지는 아니지만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로 혹은 불쌍하다는 감정으로 무턱내고 데리고 와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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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고시원 좁은 방문을 열었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환기도 되지 않는 작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눈이 시리고 아플 정도였다. 삼삼오오 작은 눈동자들이 한쪽에서 빼꼼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개 한 마리와 관리소홀로 너무도 일찍 엄마가 되어버린 6개월령의 엄마 고양이, 그리고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불안한 눈동자로 귀퉁이에 뭉쳐 있었다. 화장실에는 모래 한 톨이 없었고 모래 대신 깔아 놓은 신문지가 긁히고 긁혀 찢겨 있었다. 덩그러니 놓인 밥그릇과 물그릇은 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여자는 우리의 방문에도 게임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미 고양이 이름은 ‘갸릉이’라 했다. 갸릉갸릉 골골 소리를 잘 내서 지어줬다고 했다. 하지만 갸릉이는 삶에 찌들대로 찌든 리틀맘일 뿐이었다. 마지막 골골송을 언제 불렀을까 싶을 만큼. 그런 지경에서도 제 새끼들을 지키겠다고 연신 우리에게 하악질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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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릉이는 당시에도 임신한 상태였다. 집에 먹을 게 없어 젖이 돌지 않고 새끼들마저 병에 걸려버리자 오직 살기 위해 스스로 창문을 열고 나갔다고 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역한 음식물 쓰레기라도 먹기 위해 나갔는데, 여자가 깜빡 창문이라도 잠그고 외출하는 날이면 창문 앞에서 밤새 문이 열리기만을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불쌍해도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단다. 그동안의 일을 들려주는 주인아주머니 또한 우리만큼이나 기막혀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갸릉이의 중성화와 새끼 고양이의 입양 추진이었다. 여자에게는 더 이상 고양이 수를 늘리지 말 것 그리고 갸릉이와 개는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줄 것을 당부했다. 갸릉이가 혹시 다시 외출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지자체 TNR에서 포획되지 않도록 귀 끝을 자르긴 했지만 마음에 걸렸다. 이상하게 계속 눈에 밟히고 자꾸만 걱정이 됐다. 며칠 뒤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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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은 빠져 바닥에 떨어지고

집은 비어있었다.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갸릉이와 새끼들이 탈진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변기물과 마른 화분흙을 먹으며 겨우 버텼던 듯싶었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얼마나 창문을 긁고 긁었는지 갸릉이의 발톱이 핏자국과 함께 차디찬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여자가 밀린 월세도 해결하지 않은 채 개만 데리고 사라져버린 후의 일이었다. 처음 아이들을 봤을 때, 그때의 판단대로 밀고 나가지 못했던 내 자신을 책망했다. 그냥 그날 데리고 올 것을…….

새끼들은 힘겹게 좋은 곳으로 입양 보내고 리틀맘 갸릉이는 협회 쉼터인 휘루네로 입소시켰다. 갸릉이는 한동안 물과 사료가 언제나 가득 채워진 그릇 앞에서만 잠을 잤다. 먹는 양을 조절하지 못해 피똥을 싸고 설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갸릉이는 우리에게 다시 골골송을 들려줬다. 사료에 대한 집착도 사라지고 맘 맞는 친구도 사귀며 잘 지내는 듯했다. 갸릉이의 연두색 영롱한 눈빛이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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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웠던 기억까지 도려내주세요

이대로라면 새로운 주인만 찾아주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갸릉이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한쪽 어깨가 위로 솟은 상태로 절뚝거리며 걸어 다녔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어깨 부근에 엄청나게 큰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성인 남자의 주먹보다 크게 자란 종양이 어깨뼈를 밀어내 급기야 탈골에 이른 상태였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날 검사가 힘들었는지 갸릉이는 입원실에서 나를 보며 끼융끼융 그렇게 울어댔다. 두 번에 걸쳐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남아 있는 종양이 다른 곳으로 전이될 수 있으니 팔 전체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할 때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옆에서 기도해주는 것 외에 갸릉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에. 보기에도 무섭고 큰 종양이 갸릉이 팔에서 잘려나가는 순간, 종양뿐 아니라 갸릉이의 괴로운 기억까지 모두 잘려나가길 간절히 빌었다. 갸릉이 몸에서 나온 종양은 미국행 종양 조직통에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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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에서 깨어난 갸릉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 머리를 부딪쳤다. 진정제를 맞은 다음에야 얇게 숨 쉬며 숨을 골랐다. 갸릉이가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출퇴근길에 병원에 찾아가 다독였다.

두 번째 수술까지 씩씩하게 받은 갸릉이는 현재 한손으로 야무지게 모래도 덮고 벽도 긁으며 멋진 점프도 보여주고 있다. 유독 콩벌레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드는 것을 좋아했던 갸릉이. 이젠 완벽하게 몸을 동글게 말 수 없어도, 하얀 양말을 예쁘게 신은 팔 하나를 잘라냈어도 갸릉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갸릉이 그대로임에 감사함을 느낀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새끼를 지키려 했던 강한 모성애, 큰 병도 싸워 물리친 갸릉이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 한쪽 팔이 없어도 갸릉아! 너는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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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사진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박선미?

본 기사는 <매거진C> 과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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