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MY CAT
두려웠던 묘연이 열어준 세상
나에게 고양이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동물이었다. 멀리서 보는 건 좋았지만 막상 고양이가 따라오면 나도 모르게 도망치기 일쑤였다. 집 계단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살아도 멀리서 지켜만 보고 간간이 간식 몇 개를 주는 걸로 그쳤다. 귀엽긴 하지만 막상 키우기는 싫은 그런 동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주 고양이를 사랑하고, 또 실제로 키우는 집사가 되었다.
가장 외로울 때 찾아온 아이
2014년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해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고 서로 지쳤으며 마음이 공허한 상태였다. 그때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자고 제안했는데 선뜻 키우기에는 덜컥 겁이 났다. 그 후에도 동생이 고양이를 데려오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나는 극구 반대했다.
한 달 후, 동생이 문자로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새끼고양이 네 마리가 꼬물꼬물 붙어 있는 사진이었다. 시장 상인 분이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키울 사람이 없으니 데려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작고 어린 생명을 보니 문득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결국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심했고, 네 마리 중 카메라를 마주보던 치즈색의 고양이가 지금의 모모가 되었다. 모모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디가, 왜 아픈 거니?
처음 집에 왔을 때 모모는 태어난 지 고작 한 달째였고, 어미 젖 대신에 박스 안에 흩뿌려져 있던 식빵 부스러기를 먹고 지낸 모양이었다. 제대로 못 먹어 500g이 채 안 나갔고 병원에서는 체중 미달이라고 했다. 귀에는 진드기에, 두 눈은 부어 있고 배가 빵빵해 기생충 검사도 했다.
다행히 나와 동생의 보살핌으로 모모는 점점 건강해져갔다. 하지만 초보 집사인 나는 아직 실수투성이였고, 뭐가 잘못됐는지 한 달 반 동안 모모의 설사가 그치지 않았다. 이유를 몰라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신장에 이상한 게 보인다고 했다. 정밀검사를 해봐야 하지만 전염성 복막염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검색해봤더니 치사율이 100%인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착잡한 심정으로 모모를 꼭 끌어안았다. 온갖 생각이 다 났다. 무서웠고 눈물도 났다. 내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런 건가…?
하지만 정말 다행히, 피 검사를 했더니 전염성 복막염의 가능성은 안 보인다고 했다. 안심했지만 모모는 또 약을 먹는 중이다. 중성화 수술 이후 물을 잘 안 먹어서 방광염이 생긴 탓에 열심히 보조제를 먹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모를 잘 돌보는 것밖에 없겠지. 부족한 집사 만나서 고생이 많은 것 같다.
새로운 세상에 입문하다
모모와 같이 지내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많이 배웠다. 또 집에 들어갈 때도 누군가 날 반겨준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지고 외로움이 사라졌다. 자기 전에 모모를 만지면 그르렁대는 소리를 들으며, 허전하고 힘들었던 모든 마음이 채워지고 힐링 되는 듯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다. 하지만 때로 집에 혼자 있을 모모를 생각하면, 이 모든 고마움이 오히려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울 것 같은 모모에게 평소 더욱 관심을 가지기 위해 모모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SNS에 올려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 보니 점점 고양이에 대한 관심의 폭도 증가했다.
길고양이들도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캣맘까지는 아니지만 TNR에도 관심을 가지고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를 하기도 했다. 감정이 더 풍부해졌는지 동물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면 절로 눈물이 나온다. 말 못하는 동물뿐 아니라 약자들의 존재 자체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 작은 고양이 한 마리로 집안사람들의 감정과 생각까지 변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단순한 케어가 아니라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우리가족 모두를 변하게 해준 모모를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모모의 시간에 맞춰서 사랑해줄 것이다. 우리 가족이 된 고양이 박모모!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CREDIT
글 사진 박은영 (모모 반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