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COMPANIONS
행복할 거니까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1년이 걸렸다. 가까스로 야옹이를 구출해서 협력병원으로 가는 차 안엔 침묵이 흘렀다. 그 보드랍고 긴 털이 갑옷처럼 딱딱하게 엉켜버린 것처럼, 기쁨과 슬픔, 미안함과 노여움, 삶의 회한 같은 감정들로 마음이 뒤엉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짙은 잿빛의 야옹이는 소위 말하는 A급 페르시안이다. 9년 전 100만원을 주고 사왔다며 내심 자랑하듯 말하던 야옹이 주인의 면상이 떠올랐다. 주인은 작년부터 야옹이를 놓고 우리와 실랑이를 벌였다. 야옹이가 아프다며 연락은 계속 해오는데 보낼 듯 말 듯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구조 건을 두고 ‘실갱이 건’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아픈 고양이를 위해 돈까지 써가며 치료해 줄 마음은 없지만 고양이가 다시 건강해지면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야옹이의 주인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Don’t touch me
처음 마주한 야옹이는 집 지키는 개처럼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자기만의 세계에서 철옹성 같은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고 몸은 비쩍 마른데다 털은 갑옷처럼 딱딱하게 뒤엉켜 있었다. 나를 보더니 여느 길고양이들보다 더 경계하며 화를 냈다. 완벽하게 인간을 거부하고 있었다.
주인은 비싼 돈 주고 사왔는데 애교도 없고 경계만 하는 야옹이를 나쁜 고양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람을 잘 따르도록 성격까지 개량된 페르시안이 이토록 경계가 심한 경우는 대부분 환경 탓인데 말이다.
야옹이가 움직이는 시간은 하루 한 번 식사 때였다.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주린 배린 채우기 위해 걸어 나오는 모습은 꼭 다리가 처음 생긴 인어공주의 걸음걸이와도 같았다. 고통스러움 그 자체였다. 야옹이는 한 때 성행했던 발톱제거수술을 받았다. 사람으로 치면 손발가락의 끝마디를 절단하는 것과 같다는 발톱제거수술을…….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처 발톱이 제거되지 않은 발가락에는 늘 염증이 차 있었다. 주인은 야옹이가 컨디션이 나빠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마다 협회로 연락했다. 고양이가 죽을 것 같다고…….
“애도 못 낳는 병신 고양이”
주인은 또 야옹이가 발정이 날 때마다 동네 전봇대에 묶어뒀다. 야옹이를 살 때 낸 돈의 절반도 안 되는 중성화 비용이 아까워서였을까. 야옹이의 발정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인은 동네 길고양이와의 교미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때마다 생김새가 다른 야옹이는 길고양이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야옹이는 단 한 번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이런 야옹이를 주인은 “애도 낳지 못하는 병신 고양이”라며 거칠게 다뤘다. 주인의 폭언과 폭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비쩍 마른 야옹이가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야옹이는 이런 식으로 9년을 버텨왔다. 이번에 다시 가서 보니 전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었다. 더 이상 광범위하고도 애매모호한 동물현행법만 따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주인에게 강경히 대응하기로 했다. 먼저 협회 차원에서 법적으로 대응 가능한 법률자문을 구한 후 주인을 설득했다. 방치는 학대의 전형적인 유형이니 야옹이가 남은 묘생이라도 편히 쉴 수 있게 소유권을 포기해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병원비를 부담해야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말에 주인은 야옹이를 떠넘기듯 우리에게 주었다.
행복이 기다리고 있어
1년 동안 인내를 삼키며 온갖 설득 끝에 데려온 야옹이의 눈빛은 꺼져가는 불빛처럼 흐렸다. 병원에서 도착해 기본검사 후 발톱제거수술 부작에 대해 상담했지만, 담당 수의사는 중성화 수술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극심한 탈수와 빈혈 그리고 자궁축농증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고. 저체중이라서 수술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면 통증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야옹이를 나는 진심으로 위로했다.
“야옹아, 사람이 싫지? 왜 모두가 너를 괴롭히고 힘들게 할까 생각했지? 사람으로서 미안해. 내가 대신 다 사과할게. 야옹아…….”
야옹이는 말하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친 야옹이는 현재 협회 회원의 기부로 개별 룸서비스가 제공되는 고양이 호텔에 묵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차가운 바닥이 아닌 따뜻하고 폭신한 이불에서 자고, 개 사료가 아닌 맛난 고양이 사료와 캔을 공급받으며. 또한 폭언과 폭력이 아닌 상냥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손길로 보살핌을 받으면서 말이다.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의 손을 극도로 싫어하는 야옹이를 보며 나는 다시금 희망을 품는다. “야옹아. 우리 한번 해보자. 너에게 꼭 행복감을 맛보게 해 줄 테니, 너도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힘을 내 줘.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행복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널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CREDIT
글 사진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박선미?
본 기사는 <매거진C> 과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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