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묘 육성 육탄전
5화 오프라 윈프리처럼
봄이 지나고 슬슬 초여름의 더위가 한차례씩 등짝을 후끈하게 달구던 정오였다. 더 더워지기 전에 에어컨을 사야겠다며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언니…… 카페 가던 고냥이가 어푸푸 어부 어부. 고으양이 아프 아프 다쳐서리. 새끼, 크헉 크흐윽 어떠…… 어떠해요~?”
학대 받은 고양이?
후배가 울먹이며 말하던 내용을 머릿속에서 번역해 보니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에 가끔 우유나 빵을 주던 새끼고양이가 있는데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죽게 생겼다며 어찌해야 하냐는 말이었다. 솔직히 난감했다. 내가 고양이 구조대도 아닌데 요즘은 주변에서 길냥이가 다치거나 버려진 것을 발견하면 대뜸 내게 전화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난 그 흔한 동물 단체나 협회 등에 한 군데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저 반려묘를 키우는 동네 친구들로 구성된 조합 형태의 모임에 속해, 다친 고양이들을 발견하면 치료비로 쓰자고 한 달에 만 원 정도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의를 받으면 딱 잘라 거절하거나 외면하기가 어렵다. 모른 척하고 알아서 잘하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결국 택시를 타고 그 카페가 있는 곳으로 친구와 함께 달려갔다.
여러 증인들의 카더라 통신에 가까운 내용을 조합해 보면, 그 동네 주변에 길고양이를 증오하는 할머니가 있고 꽤 위협적인 태도로 고양이들을 학대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루머 속 할머니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쌍한 고양이는 발견 당시 얼굴과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거기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의 협업으로 코너에 몰린 녀석을 잡아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내 내 팔뚝과 손을 물어뜯고 발버둥을 쳤는데 다른 길고양이들과 달리 너무 사납고 겁에 질려 있어서 정말이지 심한 학대를 받은 것은 아닌가 안쓰러웠다.?
결국엔 또 우리 집
하지만 동물병원에 도착해 원장님의 소견을 들어 보니 고양이의 상처는 사악한 할머니의 만행도, 또 다른 누군가가 학대한 흔적도 아니었다. 큰 고양이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고 염증이 심해진 상태라고 했다. 길고양이의 천적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먹이가 귀한 도심에서 고양이들끼리의 영역싸움도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실명이 되진 않을 거란 진단을 받았고 그 길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시간 동안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고양이는 목소리가 다 쉬고 온 몸에서 악취가 풍겨져 나왔다.
퇴원 후 또 한 번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제보를 한 후배는 이 녀석을 맡을 수 없는 상태였다. 곧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철에 그냥 방사할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이 싫었다. 집엔 이미 네 마리의 고양이들이 있어 포화 상태였고 이렇게 순화가 안 된 녀석을 매일매일 간호할 생각을 하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불쌍하다고 구조는 하는데 그 다음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급하면 무조건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게 맞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너무 대책이 없다 싶어 화가 났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녀석이 우리 집 거실에 떡하니 똥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그날부터 전쟁이었다. 수술 부위 소독을 위해 잡을 때마다 야생 그 자체인 녀석은 엄청난 반항을 했고 내 온몸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응급실과 외과에 두 번이나 뛰어가야 했고 그때 생긴 상처는 아직까지도 팔뚝과 허벅지에 길게 남아 있다. 다행히 녀석은 엄청난 식탐 덕분에 캔에 약을 섞어 줘도 잘 먹어서 빠르게 회복했다. 거의 다 나았기에 입양을 보낼까 했으나 성격이 너무 난폭하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해 중성화 수술 후 방사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수술을 받으러 갔는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작고 어린 녀석이 임신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중성화 수술이 진행된 상태였고 그동안의 의료 조치 때문에 그 미생의 새끼들은 태어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새끼가 새끼를 배고 있었다는 것에 당황스러웠고 여러 가지로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방사를 하려고 처음에 구조되었던 장소 근처에 갔으나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된 어린 고양이를 영역싸움으로 잔뼈 굵은 성묘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원망 대신 감사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이 녀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섯 번째 길냥이를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임신과 폭행 그리고 유산까지…… 유명한 흑인 배우 ‘오프라 윈프리’가 떠올랐고 나중에 그 여자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오프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프라는 여전히 사람을 경계하고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 빼고는 나를 아는 척도 안 하는데 최근엔 염치없는 태도 때문에 그냥 ‘염치’라고 부른다. 가끔 ‘염치야~’하고 부르면 모른 척 하다가 ‘오프라야~’하고 부를 땐 살짝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린다. 역시 웃기는 녀석이다.
오프라는 다른 고양이들과 장난을 치는 말괄량이가 되어 심하게 발랄하고 쾌활하게 살고 있다. 처음엔 이 녀석을 불쌍하다고 구조만 하고는 맡을 형편이 안 된다던 후배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오프라의 병원비를 모아 준 동네 길냥이 모임 친구들, 중성화 수술을 도와준 길고양이 구조 계의 대모, 새벽부터 물어뜯긴 상처를 정성스레 치료해 준 동네 외과 원장님과 간호사들까지 모두가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원망보다는 고마움의 눈물을 더 많이 흘린 시간이었다.
세상 모든 고양이를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끝내 외면할 수 없다면, 나의 노력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도움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고양이가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염치’녀석은 여전히 고양이 친구들만 좋아하고 나는 그저 밥 나르는 아줌마일 뿐이다. 집에서 키우는 진정한 길고양이다. 그래도 가끔 내 침대로 올라와 은근슬쩍 궁둥이를 들이밀며 누울 때는 정말 사랑스럽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다섯 마리 고양이들과의 삶이 또 시작되었다.
CREDIT
글 사진 한민경 (타로 점술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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