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묘 육성 육탄전
4화 돌아온 고등어
우리 집 둘째 어린이에겐 세 마리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이 네 마리 꼬물이들은 박스에 담겨 버려졌고 구사일생으로 구조돼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며 입양을 가게 되었다. 이 네 마리의 운명을 보면 도시에서 태어나 버려지는 길고양이들의 팔자를 하나하나 알 수 있다.
정처 없이 떠돈 고등어
가장 먼저 입양을 간 얼룩 무늬의 카오스는 그나마 일반적인 가정에 입양됐다. 초반에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와서 커 가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겨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 다음으로 입양 보낸 노랑이 치즈는 가장 럭셔리한 주인을 만나 온갖 비싼 용품으로 치장하며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희귀병에 걸려 청소년묘가 되기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병이 깊어지자 입양자는 보살피는 게 힘들다며 고양이를 돌려보냈고 마지막 순간은 내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 입양을 간 고등어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녀석은 사람을 그다지 따르지 않았고 애교도 없었지만 타고난 미묘라 가장 먼저 입양이 낙점됐다. 그러나 그 낯가림 심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나빴던 탓인지 입양자가 키우기 힘들다 해서 지인 커플에게 재입양됐다. 그러나 그 부부가 아기를 가지면서 고등어는 다시 원래 입양자에게 되돌아가야만 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 입양 당시 간호사여서 신뢰가 갔던 입양자는 공무원 시험 준비 때문에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며 연락을 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고양이를 너무 싫어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당장 함께 살기도 어렵다고 호소해 온 그녀. 고등어는 그 룸메이트에게 알게 모르게 학대를 받아서인지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했고 특히 젊은 여자를 싫어했다. 손을 들어 쓰다듬으려 하면 때린다고 느꼈는지 기겁을 하고 오줌을 싸기도 했다.?
어찌하란 말이냐
결국 입양자는 고양이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막무가내로 우리 집에 고등어를 데려왔다. 화도 나고 원망도 들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욕할 수도 없었다. 본인도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얼굴에서 보였기 때문이었다. 길에다 다시 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고 고마울 뿐이었다. 입양자는 말이라도 나중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사료 값으로 보태 달라고 몇 만원을 쥐어 주곤 황급히 뒷걸음질 치듯 떠나 버렸다.내 앞에는 세 번의 파양으로 위축돼 벌벌 떨고 있는 다 큰 고등어 녀석이 이동장 안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물론 그 입양자는 다시 돌아오지도,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이미 세 마리나 키우고 있었기에 고등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벅찬 결정이었다. 다 큰 성묘에 전혀 귀엽지 않은 성격, 심지어 눈치도 없고 자폐처럼 싱크대 밑에 숨어서 몇 달을 두문불출하는 이 우울증 걸린 고양이를 어떻게 순화해 입양을 보낼 수 있을지……. 그저 앞날이 막막했다. 입양을 보낸다 해도 걱정이었다. 그런 고통을 또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품자니 허리가 휠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 집 셋째 토라의 질투와 시샘 그리고 텃세에 밀려 매일 털이 한 움큼씩 뽑힌 채 당하고 지내는 걸 봐도 속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인간에게도 고양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녀석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지. 고등어는 스트레스 때문에 온몸에 비듬이 올라오고 피부병까지 퍼져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
믿어줘서 고마워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더니 벌써 1년이 흘렀다. 고등어는 어느 정도 낯가림도 사라지고 토라의 수염을 왕창 뽑으며 한방 날리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는 내게 엄청난 애교를 부리며 눈앞에 알짱거렸다. 입양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녀석의 눈을 보면 행여나 그런 마음을 들킬까봐 애써 웃으며 예뻐했고…… 결국 나도 포기했다. 나를 신뢰하는 이 녀석에게 또 한 번 아픔을 줄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허리가 휘든 속이 아프든 또 한 마리를 품기로 마음먹고 나니 오히려 후련해졌다. 아주 천천히 마음을 열며 내게 다가오는 고등어의 소심한 몸짓에 나 역시도 아주 느리게 정을 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집 넷째로 자리매김한 고등어는 이상한 이름을 버리고 '치치'(눈치코치의 줄임말)라고 불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치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나도 처음부터 치치를 예뻐한 건 아니었다. 이유 없이 사고를 치고, 눈치 없이 사람을 놀래고, 우는 소리조차 고양이치고 매우 짜증스럽고 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치치를 제일 많이 쓰다듬는다. 그러면서 이 녀석이 나를 가장 신뢰한다는 걸 느낀다. 괜히 말썽을 부린 게 아니라 내 옆에 가까이 있고 싶어서 한달음에 뛰어 오다 보니 컵을 떨어뜨리는 등 조심성 없이 사고를 치는 거였다. 일부러 사람을 놀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어디서든 튀어나와 나를 쫓아다니는 거였다. 그 모든 행동들이 그저 나 하나만 바라보고 움직이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한 사고들일 뿐이었다.
내 옆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하며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치치. 그것 또한 또 다른 의미의 애정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치치에게 나 역시도 무한 신뢰를 보낸다. 곁에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항상 함께일 거란 믿음을 나누는 우리. 올 겨울도 우리는 조용히 쌓이는 눈처럼 잔잔하게 사랑을 쌓아 갈 것이다.?
CREDIT
글 사진 한민경 (타로 점술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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