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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 육성 육탄전 | 3화 혼돈의 카…

  • 승인 2017-08-14 10: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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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 육성 육탄전

3화 혼돈의 카오스?

연희동으로 이사 후 고양이 ‘랍비’, ‘어린이’와 함께 아옹다옹 살던 어느 날이었다. 추석을 얼마 앞두고 첫째의 뒷목 털이 빠지고 상처가 덧나 병원에 갔다. 병원비 부담에 그냥 후시딘만 바르다가 너무 심해져 부랴부랴 달려간 그날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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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무리

동물병원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프라다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갓 태어난 두 마리 꼬물이가 그야말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아기고양이 치료 차 데리고 오신 건가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대기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말씀하셨다.

“어미가 우리 집에 새끼를 낳고 죽었어. 다른 녀석들은 건강해서 여기저기 보냈는데 이 두 녀석은 눈이 아파서……. 혹시 누가 데려다 키울 수 없는가.”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었지만 이미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던지라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덜컥 입양해 버릴 것 같아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랍비의 영구처럼 털이 벗겨진 상처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할머닌 기어코 내 앞으로 다가와 턱 앞까지 그 프라다 쇼핑백을 들이밀며 동정심을 호소하셨다. 어떻게 그냥 외면할 수 있을까.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니 두 눈에 고름딱지가 뒤덮인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보였다. 젖소 무늬 수컷과 카오스 무늬의 암컷 남매. 겨우 탯줄이 떨어진 듯한 두 생명은 병아리보다 작은 소리로 삐악삐악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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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그 때 마침 원장님이 대기실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나오시더니 꼬물이들을 발견하고는 여기저기 살펴보셨다.

“이대로 두면 며칠 안에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죽을 텐데.” 원장님의 그 한마디에 이미 두 마리 유기묘를 입양한 처지지만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어 “제가 임보를 하겠다”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무언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유체이탈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고 생각은 하나 이미 내 몸은 그 프라다 쇼핑백을 끌어안아 버렸다. 원장님은 분유와 주사기 그리고 안약을 주시며 “가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잘 치료해주라”고 격려해주셨다.

망연자실. 집에 돌아와 애꿎은 랍비만 혼냈다.

“이 녀석아, 네가 목덜미만 쳐 긁지 않았어도 병원에 안 갔고, 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이런 사서 고생도 안 했을 거 아니냐.” 엄한 짜증을 부리면서도 꼬물이들이 작은 몸을 가냘프게 떨며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에 마음이 사르르 녹으며 분유를 타고 절로 엄마 미소를 짓는 내 자신이 사실은 랍비보다 더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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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미안해

생전 처음 분유도 타보고, 그걸 주사기로 먹이고, 계속 붙어있는 눈곱을 시간마다 닦아주며 추석에 집에도 못가고 뜬눈으로 연휴를 보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수면부족과 이불빨래로 스트레스 지수가 차오르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졸린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분유를 타 먹이려고 하는데 뭔가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이 두 녀석이 동그랗게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우유의 냄새를 맡고 진격의 거인 못지않은 포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두 눈으로 무언가 본 듯이 나와 젖병을 향해 나름 뛴다고 뛰는 시늉을 하며 기어오는 녀석들. 고름 때문에 앞이나 제대로 보일까 싶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다니. 그야말로 기적 같았다. 거기다 눈망울은 어찌나 예쁜지. 그 눈을 바라보는 내 눈이 눈물로 가득 차 오히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빛나는 눈을 영영 못 볼 뻔 했다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찌됐든 살 권리가 있는 녀석들인데……. 한 점 때도 없는 말간 눈을 동그라니 뜨고 여기저기 탐색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괜히 짜증내고 후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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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예쁘니까

캣맘들이자 동네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놀러 왔다. 그 중에 젖소무늬 녀석은 친한 이웃 언니에게 둘째로 입양을 보내기로 약속도 했다. 카오스 암컷 역시 여기 저기 수소문을 거쳐 입양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데서 문제가 터졌다.

아기 고양이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근처에도 못 가고 빙빙 돌던 우리 집 둘째 어린이가 언제인가부터 카오스 녀석을 예뻐하기 시작했다. 카오스 꼬물이도 애교가 상당히 많아 사람이건 고양이건 찰싹 붙어 냥냥거리는 게 아주 물건이다 싶었는데 결국 어린이를 꾄 듯했다. 순진한 어린이는 카오스 꼬물이 곁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쳐다만 봐도 그저 좋은지 항상 쫓아다녔다. 아직 어려서 그럴까 쭙쭙이(엄마 젖을 빠는 시늉)가 필요했던 카오스 꼬물이가 어린이의 귀를 물러 터질 때까지 쭙쭙이 하고 또 하는데도 어린이는 귀찮아하는 내색도 않고 참았다. 소심한 어린이……. 그 남자의 사랑은 그랬다.

결국 둘이 허구한 날 목을 끌어안고 붙어 있는 바람에 입양 보내기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나 보려고 카오스를 친구 집에 하루정도 맡겼더니 어린이는 거의 식음을 전폐한 채 카오스를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뭘까? 이 두 녀석의 관계는……. 어린이는 정말 끔찍이도 카오스 꼬물이를 아꼈고 카오스도 어린이 옆에 껌처럼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별 수 있나. 입양 보내기를 포기하고 카오스 꼬물이를 어린이의 여동생으로 들이게 됐다. 이름은 토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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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는 자신의 독특한 털 무늬를 뽐내며 아주 도도하고 싸가지(?) 없게 성장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예쁘다는 착각 속에. 물론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어린이다. 어린이 눈에는 토라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런 여동생이었는지 매일 매일 그루밍을 해주고 간식을 양보하고 자신의 귀를 쭙쭙이로 기꺼이 내주며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토라는 어릴 적 너무 작게 태어나서 그런지 다 큰 지금도 손발이 작고 얼굴도 작다. 하지만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 특유의 당당함과 도도함으로 오늘도 앵그리버드 같은 눈을 하고서는 여기저기 귀여워 해 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랍비, 어린이 심지어 나에게까지 와서 당당하게 야옹거리는 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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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사진 한민경 (타로 점술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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