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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속으로 들어간 고양이, 민화작가 …

  • 승인 2017-07-17 11: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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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의 고양이

민화 속으로 들어간 고양이

민화작가 박혜진과 락군?

박혜진표 민화의 생명력은 위트와 유머다. 그는 민화의 채색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현대적인 도상과 전통적인 도상을 교차시켜 새로운 현대회화를 만든다. 그림 속 고양이는 앞발로 레고 장난감을 쓰러뜨리고, 담장을 오르내리며 숨바꼭질을 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다녀왔거나 혹은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대신 다녀오기도 한다. 모로코, 남극 대륙 등 이국적인 풍광에 스며든 고양이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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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민화를 그린다는 건

조선시대 민화작가들이 그랬듯 박혜진 작가도 회화 전공자가 아니다. 학교에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쇼핑몰을 운영하다 회사원 생활도 했다. 그 사이 2년 정도 문화센터에서 민화를 그리고, 동양화가의 화실을 잠시 다닌 것이 그림 경력의 전부다. 기법을 배우는 건 재미있었지만 본대로 그리는 건 싫었던 작가는 전통 민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그렸다. 연화도를 배경으로 호박과 고양이를 그린다든지, 모란도 뒤에 숨은 반려묘 락군이를 그리는 식이었다. 급기야 범고래와 인사하는 락군이가 등장하는가 하면, 펭귄 무리 속으로 숨어들어 탐험을 즐기는 철수, 락군, 호돌이가 단체 출연하기도 한다.

그의 민화에 등장하는 ‘철·락·꽃·똘·꼬’ 패밀리는 작가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고양이 가족이다. 첫째 철수, 둘째 락군, 셋째 꽃순이, 넷째 똘이, 다섯째 꼬꼬의 줄임말이란다. 2002년 11월 친구 작업실 근처 길고양이의 새끼였던 철수를 데려온 것이 ‘패밀리’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고양이? 집에 들이기만 해봐라” 하고 엄포를 놓았던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철수를 “왕자님”으로 부르는가 하면, 철수가 외로워 보이니 동생을 들이자고 할 만큼 고양이에 푹 빠졌다. 가족의 환대 끝에 들인 둘째가 2004년 1월에 데려온 락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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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이 되어준 ‘철·락·꽃·똘·꼬’ 패밀리


철수 7살, 락군 6살 때까지만 해도 박혜진 작가는 길고양이를 ‘집고양이와는 별개인 야생동물’ 정도로 여겼다. TNR의 필요성도 몰랐고 사람과 공존해야 하는 동물이란 인식도 없었다. 그 생각을 깨준 것이 길고양이 꽃순이다. 아픈 몸으로 치료해달라는 듯 어머니 가게에 쏙 들어온 꽃순이를 돌보다 2009년 4월 입양했다.

한데 락군이의 반발이 심했다. 꽃순이가 앉은 자리마다 오줌 테러를 해댔다. 결국 작가는 2010년 무렵 작업실 겸 집을 얻어 분가하면서 락군이를 데리고 나왔다. 여러 고양이 중 락군이가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도 늘 작업실에서 같이 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락군이의 모습을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낯선 사람을 무서워해서 구석에 숨는 탓에, 실존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투명고양이’가 바로 락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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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호돌이는 동네 슈퍼에서 묶어 키우던 새끼고양이였다. 가게 앞에 둔 삼단 서랍장 한 칸이 호돌이의 집이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몸이 커지면 서랍에 못 들어간다”며 호돌이를 굶기다시피 했고, 물그릇이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가게 앞에 묶어두었다. 보다 못한 작가의 어머니가 대신 키우겠다며 조른 끝에 2011년 크리스마스 날 간신히 데려올 수 있었다. 호돌이를 처음 거실에 내려놓았을 때 보인 반응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집에 와서 목줄을 풀어줬더니 거실을 쉬지 않고 뱅글뱅글 돌더라고요. 내내 묶여서 얼마나 뛰고 싶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동물도 조기교육이 중요한데, 호돌이 성질이 고약한 것도 묶여 자란 영향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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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별 떠난 꼬꼬야, 나비 되어 다시 오렴?

막내 꼬꼬는 2010년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분가 준비를 하던 시절 만난 길고양이였다. 셋째 꽃순이를 키우며 길고양이의 세계를 알게 된 작가는 꼬꼬에게 왠지 마음이 갔다. 밥을 주려고 몸을 숙이면 등에 올라타 꾹꾹이를 할 만큼 사람을 좋아해 더욱 그랬다. 2011년 겨울, 호돌이와 꼬꼬 중 하나를 입양해야겠다 고민하다 좀 더 상황이 나빴던 호돌이를 택했지만, 꼬꼬도 자꾸 눈에 밟혔다.? ?

뒤늦게 꼬꼬를 데려온 건 칼리시로 인한 구내염이 심해져 밥도 못 먹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한 달간 집에서 치료하며 돌보다 가족이 되었지만, 작업실에 살던 락군이를 뺀 나머지 고양이들에게 그만 병이 옮았다. 그 과정에서 셋째 꽃순이를 잃었고 꼬꼬도 2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제 ‘철·락·꽃·똘·꼬’ 패밀리는 셋만 남았지만, 누가 “고양이가 몇 마리 있어요?” 하고 물으면 “세 마리”란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떠난 두 아이가 지금도 집 어딘가 있는 것 같아서. 3점 연작인 <묘접도>는 떠난 꼬꼬를 기리며 완성한 작품이다. “꼬꼬가 투병할 때였어요. 의사 선생님이 꼬꼬가 치료도 잘 받아서 착하고, 이마 무늬도 예쁘다며 ‘머리에 나비가 있네’ 하시는 거예요. 그 이야기 듣고부터 검정 나비가 날아와 머리에 앉은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묘접도가 나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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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묘접도> 연작은 끝난 게 아니다. 꼬꼬 머리에는 나비 무늬가 남고, 흰 나비가 멀리 날아가는 그림으로 끝을 맺을 생각이다. 작가는 매화골에서 여왕으로 군림하고 살던 꼬꼬가 지금도어느 화단에서 나비랑 놀거나, 나무에 주둥이를 긁고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올해 9월 열릴 제9회 고양이의 날 기획전에도 참여하는 박혜진 작가는, 이번 전시에 아홉 마리 고양이 요정이 등장하는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꼬꼬가 요정이 되어 오빠 락군 곁에 머물며 도와주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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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그림들


박혜진 작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그림을 지향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일상을 그린다. 내 눈에 귀여운 순간, 마음에 꽂히는 한마디, 여행하다 문득 든 ‘우리 애들이 여기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이를 한데 모아 따뜻한 눈으로 고양이를 그려내고, 고양이를 보는 다른 이들의 눈길이 따뜻해지는 계기를 만드는 것-그것이 화가로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라 믿는다. 길고양이였던 꼬꼬를 모델로 <초충묘도>를 그리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길고양이를 돌보거나 입양한 분들이 이 그림을 좋아하셨어요. ‘내 새끼가 길에 있을 때도 저랬겠구나’ 하고 느끼신 것 같아요. 길고양이를 잘 모르는 분들에겐 한쪽 귀를 커팅한 꼬꼬의 그림을 보여드리고 자연스럽게 길고양이 TNR을 설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저도 꽃순이를 키우기 전까지 TNR을 몰라서 ‘귀를 왜 잘랐어? 학대 아니야?’ 생각했거든요.” 고양이들의 오늘 하루가 행복하고, 내일은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한 발짝씩 나아간다. 아파트 단지에 캣맘이 한두 명만 있어도 그곳의 길고양이 삶은 한결 나아지는 걸 알기에, 그림을 통해 고양이를 사랑하는 ‘한두 명’이 자신의 주변에서 늘어날 수 있게 만드는 화가가 되고 싶은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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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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