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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육묘 중 | 4화 교감의 단계

  • 승인 2017-07-04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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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육묘 중

4화 교감의 단계?

동물을 키우거나 가까이해 본 사람은 동물도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감정들은 쉽게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울 수도 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고양이의 경우는 더더욱. 태어나 성장하기까지 시간만큼 더딘 교감의 과정이지만 드라마틱한 어떤 순간들이 오냐와 제인이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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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교감

우리 감정의 미묘한 변화까지 알아채는 놀라운 육감을 가진 오냐는 제인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새 생명의 잉태와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의 배가 불러올수록 엄마 배에 붙어 골골송을 부르는 횟수가 잦아졌고, 진통이 시작될 때도 엄마 옆에서 힘을 불어주었다. 뱃속의 제인이에게도 오냐의 목울림 소리가 분명히 전해졌으리라. 그것이 제인이와 오냐의 첫 번째 교감이었다.

신생아 제인이를 처음 만난 오냐는 마치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무덤덤했고, 행동거지가 무척 조신해졌다. 그동안 집안을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뛰어다녔지만, 이제 제인이가 누워있는 곳은 살금살금 피해 다니며, 먼발치서 엄마 아빠의 사람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다 한 번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집안을 우다다 뛰어다닐 때에도 제인이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아예 하늘다람쥐처럼 높이 멀리 뛰어 넘어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기는 건드리면 안 돼’라는 결연한 의지가 온 몸에 배어 있었다. 그렇게 시킨 적도 없거니와 시킨다고 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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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말동무

제인이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오냐가 제인이를 ‘보호의 대상’으로 여겼다. 제인이가 기어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제인이를 지켜보고, 무슨 일이 생기거나 잠투정 때문에 울기라도 하면 냉큼 달려와 제인이 옆에서 같이 울었다. 간혹 제인이에게 꼬리를 잡히거나 털이 뜯겨 나가도 오냐는 전혀 개의치 않고 한없이 너그러운 맏언니 같이 다 받아주었다. 아빠인 내가 그랬다면 십상 물리거나 발길질을 당했을 터.

제인이가 두 발로 일어설 수 있게 되면서 오냐와 제인이는 서로의 첫 번째 친구이자 둘도 없는 자매가 되었다. 둘 다 말은 없지만 함께 놀고 마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쩌면 오냐에게 아빠엄마보다 더 말이 잘 통하는 존재가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제인이 역시 이성과 언어보다는 본능과 육감에 의존하는 한 살의 아기였기에, 합리적 사고와 이성에 길들여진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는 감정의 교류가 둘 사이에 수없이 오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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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벽

오냐는 제인이와 교감을 하면서도 같은 극의 자석처럼 더 이상은 절대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는 ‘거리감’을 항상 유지해왔다. 틈만 나면 아빠나 엄마 품에 착 달라붙어 사.랑.해.주.세.요. 라며 부비부비하는 오냐이지만 제인이 품에는 절대 다가가지 않았다. 항상 제인이가 먼저 오냐에게 다가가야 했고 오냐가 먼저 스킨십을 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제인이가 아파서 오냐가 퍼링을 하며 간호를 할 때에도 10cm 이상의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제인이 곁을 지켰을 뿐이다.

이것은 오냐가 인식하는 ‘신뢰’와 마음의 안정을 얻는 ‘의지’의 대상과 관계가 깊다. 오냐는 새끼고양이였을 때부터 함께 살았던 아빠와 엄마를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며, 우리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얻어왔다. 제인이를 자신과 동등한 서열로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맏이인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동생으로 여겼다. 그래서 ‘당신을 한없이 신뢰하며, 의지를 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 오냐의 ‘부비부비’는 오직 아빠, 엄마에게만 하는 행동이었고, 자신과 동급인 동생들에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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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순간

그런 오냐가 제인이가 5살이 된 해 어느 날 갑자기 처음으로 제인이에게 먼저 다가가 품에 안기어 부비부비를 했다. 오냐의 갑작스런 모습에 제인이 역시 굉장히 놀라 당황하고 감격스러워했다. 제인이가 부비부비하는 오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오냐도 골골거리며 애교를 떨었다. 이것은 여러가지로 큰 의미가 있다. 오냐가 더 이상 제인이를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인이를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이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니까. 오냐는 그렇게 마음의 마지막 문을 활짝 열어 보이지 않던 벽을 없앴다. 우리 가족의 역사적인 터닝포인트였다.

오냐의 잠자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로 아빠의 다리 옆이나 따뜻한 아랫목 혹은 상자 같은 곳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오냐는 제인이 옆에 붙어 잠을 잔다. 제인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없는 낮에는 제인이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불 위에서 잠을 청한다.

이제 오냐는 우리 가족 중 제인이 품을 가장 좋아한다. 오냐는 제인이 품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안정되고, 제인이 역시 가족 중 가장 오냐를 따뜻하게 대하고 사랑해 주고 있다. 교감은 굳이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어적 사고는 감정을 나누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아이들처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진심이 더해진다면 감정은 오롯이 전해지고 교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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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사진 우지욱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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