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LTER
길고양이 어울쉼터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도록?
구청 별관의 옥상 문을 열자 푸릇한 나무들과 함께 알록달록한 색감의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동화 속 장난감 집을 옮긴 것 같은 모양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양이들이 풀숲 여기저기에서 냥-하고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낯선 광경이다. 5층짜리 건물 옥상 전체를 아크릴 재질의 담벼락이 둘러싸고 있다. 아스팔트 대신 잔디와 돌, 푸릇푸릇한 나무가 있고, 장난감 집처럼 생긴 건축물이 떡 하니 놓여 있다. 옥상 너머로는 높다란 아파트가 보인다. 알록달록한 캣타워 밑, 수풀 옆에서 고양이들이 방문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상한 섬에 발을 들여놓은 거인이 된 느낌이다.
?이 곳의 시작은 강동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였다. 4년 전, 어린 새끼였던 강동이는 구청 직원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그 품에 꼬물꼬물 들어갔다. 직원으로서는 길거리로 매정히 내보낼 수도, 집으로 데려갈 수도, 안락사가 예정된 보호소로 보낼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궁여지책으로 강동이를 옥상 별관에 들여다 놓았다. 덕분에 강동이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다정한 고양이로 자라났다.?
강동이가 어른이 되는 동안 옥상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강동이를 계기로 옥상에 유기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판자와 스티로폼으로 고양이들의 집을 지었다. 강동구에서 활동하는 캣맘들이 고양이들을 돌봐주었다. 작은 손길은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꽤 커다란 기업의 손길까지 잡아 이끌었다. 건설사에서 열판과 난로, 열적외선 등을 갖춘 알록달록한 집을 지어주었고, 한 사료 회사는 고양이들에게 계속 사료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옥상 공간에는 ‘길고양이 어울쉼터’라는 정식 명칭도 붙었다.
‘어울쉼터’ 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까만 코딱지를 달고 있는 청소년 고양이 시루가 뛰어온다. “시루, 올라올래?” 하고 무릎을 탁탁 치자 그 위로 사뿐, 올라온다. 엣취, 엣취, 하고 기침을 하면서도 골골거리며 팔에 뺨을 부빈다. 이 사랑스러운 무릎냥이에게는 가정집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시루뿐이겠는가. 술 마신 반려인에게 눈을 찔려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은 먼지, ‘잘 키워달라’는 메모와 함께 박스에 담겨 구청에 버려진 설기… ‘어울쉼터’에 있는 모든 고양이들에게 가정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고, 안락사도 없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좋은 건물이 있더라도 평생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테니까.?
쉼터의 고양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이들은 고양이들이 ‘어울쉼터’에 계속 머무르길 바라지 않는다. 좋은 가족을 만나 어화둥둥 업혀서 쉼터를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어울쉼터’는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정류장이니. 평일에도, 주말에도 ‘어울쉼터’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는 이유다. 이따금 키우는 고양이를 어울쉼터에 보내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올때면 ‘어울쉼터’를 돕는 이들의 힘은 푹 빠진다. 그래도 한 마리라도 새로운 묘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은 쉬이 꺼지지 않는다. ‘어울쉼터’가 문을 열고 있는 이상 어떤 고양이가 어떤 사람의 마음 속으로 쏙 들어갈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CREDIT
글 김나연
사진 엄기태 ?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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