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CATS
노란 빛으로 잔잔히 채우다
단풍이네 레트로 하우스
작년 가을, 전형준·박정은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린 치즈태비 고양이를 만났다. 훗날 ‘단풍이’라 이름 붙이게 된 그 고양이는 허리 높이의 담장에서 부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이리 와’라는 말에 형준 씨의 품에 덥석 안겼다고. 집으로 올 때까지 얌전히 품에 안겨있던 고양이는 그렇게 부부의 아들이 됐다. 기역 자 모양 베란다를 가로질러 복층 끝까지 달리는 삶을 사는, 그 집의 인테리어 배치를 완성시키고 있는 에너지 가득한 아들이.
로망은 힘을 내어 쟁취하는 것
부부는 ‘할머니네 집’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을 꿈꿨다. 힘 들고 벅찬 삶에서 사랑하는 공간에 몸을 따뜻이 뉘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의미를 가지니까. 자본금과 추후 자녀 양육 계획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줄곧 살아왔던 동네에 낡은 빌라를 계약하고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그간 인터넷 서핑을 하며 수집 한 인테리어 레퍼런스, 업체 목록 등이 부부의 결의를 북돋아 주었다. 다만 23년 된 빌라에서 수도배관과 난방배관을 책임지면서 부부의 인테리어 욕구도 꽃피워줄 업체를 찾는 데는 많은 발품이 들었다. 더군다나 부부는 빌라의 천장 위에 자그마치 1.5m는 더 되는 공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는데, 부부와 합을 맞춰 이곳을 개조할 전문가를 찾는 게 힘겨운 작업이었다고. 결국 서로의 조건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업체를 찾고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부가 로망의 집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트로 하우스를 뜯어보자
현관ㅣ좁은 집임에도 중문을 설치했다. 현관의 먼지 차단과 겨울 추위 차단에 굉장한 효과가 있다. 크고 깔끔한 신발장이 들어섰다.
거실ㅣ 4m는 되는 천장과 최소한의 벽만 남겨 놓음으로써 탁 트인 공간을 얻었다. 흰 벽 또한 개방감에 한 몫 하고 있다. 집 안의 추위와 더위를 대비해 커다란 실링 펜을 매달았다.
다이닝룸ㅣ주방과 거실과의 매끄러운 연결성을 위해 모서리 부분을 잘라 오픈된 문을 갖추고 있다. 거실과 통하는 창문이 있어 답답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천장 라인을 따라 선반을 높게 달았고, 그 자리에 잘 쓰지 않는 서류나 책 등을 놓았다. 눈에 보이는 위치는 애정을 받고 있는 물건들의 자리다. 바닥에는 먼지와 털이 잘 엉기지 않는 키치적인 카펫을 깔고, 따뜻한 색감의 목재 테이블로 집 전체 분위기를 맞추었다.
부엌ㅣ상부 수납장은 2단으로 높지 않게 제작해 답답한 느낌 을 최소화했고, 하부장은 기역자로 꺾어 제작함으로써 거실과 구별된 공간감을 얻었다. 스프링포켓 선반 아래에는 주방도구 걸이를 설치했다. 가스렌지와 냉장고 맞은편에는 아일랜드 식 탁을 주방가전 배치용으로 놓았다.
침실ㅣ가장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공간이다. 침대와 스탠드 가 들어가고서 남은 공간에 가벽을 두 개 둘러 작은 드레스룸을 만들었다. 덕분에 침대는 집에서 가장 아늑한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다락이 있는 방ㅣ미래의 아이를 위해 비운 방인데, 현재는 단 풍이가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베란다ㅣ화분을 키우고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가, 최근에는 단풍이를 위해 캣워커를 설치했다. 단풍이는 이곳에서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세상 구경을 한다.
너를 위해 바꾸었어, 정말이야
어느 날 부부의 품 안에 똑 떨어진 단풍이는 부부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인도해 주고 있다. 우선 단풍이는 집안의 소품 배치를 바꾸는 데 일조한다. 다이닝룸 창문에 올려놓았던 화분과 피겨들은 다른 자리를 찾아 이사를 갔고, 부부가 사랑하는 드라이플라워는 단풍이의 먹잇감이 되 기 좋아 벽에 걸게 됐다.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정은 씨의 알러지 반응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로봇 청소기와 전기 건조기를 구매했다. 덕분에 아침 11시마다 로봇 청소기가 털과 먼지를 수집하고 다니고, 옷과 수건 등은 고양이 털을 비롯한 이물이 묻지 않고 뽀송하게 말라서 삶의 쾌적함을 더 높였다. 침실을 단풍이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했기에 침실 문 을 자유롭게 열지 못하는 건 불편하지만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기쁨이라고 한다.
짙은 체리색 몰딩에 나무로 만든 바닥재를 배경으로 노란 전구가 따뜻하게 반짝이는 따뜻한 집. 부부의 헌신으로 빚어낸 노란빛 공간에서 단풍이는 보호색을 입은 것 같다. 이 집의 색과 닮은 고양이는 오늘도 베란다를 가로지르고 부엌과 다이닝룸을 뛰어넘어 다락방까지 달려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테이블야자를 뜯어먹는 등 집 안의 식물들을 숱하게 위협하는 단풍이지만, 따뜻한 부부의 집을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완성시키는 것도 역시나 단풍이다. 그리고 다정하고 상냥한 빛깔의 이 집에서, 두 사람과 고양이 하나가 계속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믿을 이야기다.
CREDIT
글 김나연
사진 엄기태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