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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을 만든 고양이

  • 승인 2017-05-01 09: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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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The Cat Who Invented Bebop

비밥을 만든 고양이

동화책 하나를 발견했다. ‘비밥을 만든 고양이’라는 동화. 독특한 그림체의 이 책은 실존해 있던 뮤지션들을 조금씩 각색해 풀어낸 작품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재즈와 고양이라니, 이렇게 어울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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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를 좋아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학창 시절엔 고양이보단 개를 더 좋아했고 고양이의 존재란 길가의 전봇대처럼 어딘가에 있지도 없지도 않은 관심 바깥의 존재였다. 그러다 3년 전 길고양이 새끼를 데려와 직접 키우면서 그 깊은 매력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이 전에는 고양이 대신 흑인 음악에 취미를 붙이고 살았다. 휴대폰이 바뀔 때마다 두툼한 입술의 언니 오빠들의 사진으로 사진첩을 가득 채우기 바빴다.

그 중에서 유별난 매력을 가지고 다가온 것이 재즈였다. 어려워서 고상한 사람들이나 듣는 음악일 것 같은 편견부터 앞서 지만 사실은 허물없이 서로를 믿고 각자가 원하는 소리를 내는 음악이다. 모두가 똑같은 멜로디를 연주했던 빅밴드 스윙에서 탈출한 음악, 그것이 ‘비밥’이고 비밥은 재즈의 새로운 발자국이다. 겉으로 보면 영험하고 심오해 보이지만 그저 스스로 원하는 것에 충실할 뿐인 고양이의 성질머리와 닮지 않았는가?

마치 재즈처럼,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예측 불가능의 매순간이다. 그들은 내가 아끼는 피겨와 화장품을 아무렇지 않게 떨어트리고 죄책감 또한 느끼지 않는 듯하다. 처음엔 그런 상황과 그들의 막연한 태도에 스트레스 받아 하며 심지어 살짝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작정 훈육해 보겠다고 달려 들어본다 한들, 소귀에 경 읽기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규칙’이라는 그들의 룰을 받아들이는 거였다. 물건이 떨어지고 한밤에 우다다를 한다고 해서 일일이 반응하며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 없었다. 그저 그것들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또 다른 ‘해프닝’으로 맞대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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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아이들이 식탁 위로 올라와 방해를 받으면 그들을 통제하려고 하기보단 나도 장난을 치기 시작 했다. 치약 냄새를 맡게 하거나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는 얄궂은 장난을 말이다. 아니면 먹던 걸 중지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방해하거나 귀찮게 굴었다. 그럴 때면 이 불청객들은 질색을 하면서 도망가지만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식탁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여전히 내 피겨들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뒤죽박죽의 일상은 타인의 눈엔 엉망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나름대로 맞춰가고 있는 이 공존 방식은 그리 나쁘지 않다. 어떤 대응을 하더라도 고양이들은 태연한 태도로 내 예상을 빗나갈 것이며 그것이 본인들에게 주어진 숙제나 과업인 양 끈질기게 내 일상의 크고 작은 규칙들을 방 해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이미 엎질러진 해프닝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정도다. 아주 사사로운 상황부터 생활 패턴에 영향을 끼치는 큰 문제에까지, 나는 매번 다른 대응을 강구한다.

재즈 뮤지션 스테판 해리스는 모든 ‘실수’는 재즈에 있어서 또 다른 기회라고 말했다. 합주 속에 누군가 불협화음을 낸다면? 예측할 수 없는 음의 등장에 모두가 경직될 것이다. 표면적으론 그게 실수가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불청객 같은 소리에 맞춰 반응하기 시작할 때 그들의 합주는 더 강렬하게 바뀐다. 예기치 못한 변화와 이를 향한 두려움 없는 대응은 연주를 보다 창의적으로, 생동감 넘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은 재즈와 무척 닮아있다. 끝없이 잡음이 나고 방해를 받으며 우리 나름의 독특한 재미를 찾게 되는 과정이 말이다.


CREDIT

우서진

그림 지오니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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