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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 세상 가장 온화한 보금자리에서?

  • 승인 2017-02-27 11: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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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 2막

호란, 세상 가장 온화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사랑 받고 있구나 깨닫는 순간은 언제일까. 대부분 거창한 것보다, 소소하지만 진심 어린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를 꼽을 것이다. 고양이 공장에서 구조된 호란이는 형준 씨와 아릭스 씨의 품에서 이제 막 무한의 사랑을 느끼는 중이다. 하얀 털 끝, 수염 한 올에 닿아 오는,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 호란이에게 부부는 아늑한 보금자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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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공장에서 빠져나오기까지


2016년 5월. 생명이 움트고 꽃과 나무가 푸르게 만발하는 시기. 동물권 단체 케어(Care)가 고양이 공장을 적발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제보를 받고 찾아간 곳에는 길 건너 멀리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들이 무색할 만큼 심각한 악취와 오물들로 더럽혀진 조립식 컨테이너가 설치되어 있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가늠하건대 적어도 수십 마리. 강아지 공장의 충격이 얼마 가시지 않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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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으로 운영 중인 고양이 공장 안에는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철장 안에 고양이 여러 마리가 꾹꾹 눌려 갇혀 있었다. 본디 독립적인 성격으로 저 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배설물과 먹다 남긴 음식물 쓰레기의 악취, 딱딱하게 굳은 사료, 냉난방은 물론이고 환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열악한 조립식 컨테이너 속에서 고양이들은 이미 많이 아픈 상태였다.

심한 눈곱으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 오랫동안 비좁고 단조로운 환경에 노출된 나머지 정형행동(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일종의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아이, 사산한 핏덩어리들과 엉켜 붙어있던 아이… 이보다 더한 폭력이 또 어디 있을까. 공장 주인과의 길고 끈질긴 대화, 설득, 싸움 끝에 자그마치 53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의 구조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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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철장 대신 포근한 온기 속으로

호란이는 그 끔찍한 고양이 공장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된 페르시안 믹스의 여자아이다. 수요일마다 강아지들을 산책시키거나 청소를 돕는 등 봉사활동을 하던 아내 아릭스 씨는 구조되어 온 호란이에게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다른 고양이들보다 어른스럽고 조용한 그 물색 눈동자를 어째서인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반려묘와 반려인의 사이에는 흔히 간택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곤 하지만 운명이나 인연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한 이끌림도 존재한다. 언젠가 보호소의 아이들을 입양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남편 형준 씨도 호란이를 데려오는 것을 반대할 리 없었다. 고양이 공장에서 구조되었던 아이들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보호소에 남아 있었던 호란이는 그렇게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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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우리의 집

현재 호란이는 잇몸이 약해서 평생 동안 약을 먹어야 하고, 스스로 등에 낸 상처로 인한 피부병 때문에 털이 더디게 자라고 있는 상황이다. 부부는 호란이가 상처를 핥는 것을 막기 위해 붕대를 감거나 넥카라를 채우는 대신, 그보다 덜 불편하도록 티셔츠를 입혀 줬다. 호란이가 그루밍을 하다가 옷을 물어뜯으면 부부는 다가가 부드럽게 타이른다. 호란아, 그러면 안 되지. 강제적으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걸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 어쩌면 그렇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부는 호란이가 알아서 치유되길 바라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순간 곁에서 함께하며 힘이 되어 주고 싶다. 그래서일까. 아픈 과거를 가진 고양이들이 날카롭거나 겁이 많은 것과 달리 호란이는 사람에게 상냥하다. 처음 보는 방문객의 곁으로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낼 줄도 안다. 애교를 부리는 것에는 아직 조금 서툰 듯하지만 부부에게는 그조차 투박한 귀여움으로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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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호란이가 살금살금 형준 씨의 무릎 위로 기어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호란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형준 씨의 손. 이내 눈이 감기고 고릉거리기 시작하는 호란이는 이 집에 온 지 겨우 한 달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아릭스 씨가 조용히 미소를 띠우고 둘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절절한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풍경. 그렇게 셋은 이미 가족의 형태를 갖추었다.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따스한 체온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모든 갈증은 이제 채워지고 넘쳐난다. 부부의 사랑으로 가득찬 바로 이 장소에서 호란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포근한 보금자리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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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장수연

사진 엄기태

자료협조 케어?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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