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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

  • 승인 2017-02-20 10: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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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카라 프로젝트 :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

그 동네, 재개발이 결정되었다. 높고 비싼 아파트가 들어서기로 했다. 주민들은 철거민의 신분으로 하나 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 했다. 길고양이들은 인간들끼리 오간 이야기를 알 리 없다. 곧 무너질 아파트 지하에서 겨울을 기다렸다. 60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을 두고 어쩔 줄 모르던 한 주민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 연락했다. 어떻게, 고양이들을 살릴 방법이 없겠느냐고. 2015년 11월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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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산으로, 산으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재개발 지역은 개포 근린공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철거 공사가 시작되기 전 고양이들이 공원 안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재개발 단지 내에 TNR 과정을 통해 중성화된 개체들이 많아 이주 후에도 부작용이 적을 터였다. 우선 재개발 지역 전역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한 주민에게 부탁해 고양이들을 관찰할 자원봉사단도 꾸렸다. 재개발 관련자들도 만났다. 관할 광역 자치단체, 관할 기초 자치단체, 재개발 조합. 고양이의 안녕을 위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논의 끝에 고양이들의 이사를 위한 협조를 얻었다.

고양이들이 새로운 터전으로 가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했다. 타자에 의해 뜬금없이 새로운 영역에 떨어진 고양이의 생존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몸을 편히 뉘일 수 있는 은신처, 먹이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고 있다면 고양이들은 곧 무너질 아파트를 떠나 안전한 공원 안으로 자리를 옮길 터였다. 특정 지역에 고양이들이 갑자기 밀집된다면 이미 살고 있던 고양이들까지 함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함께 병드는 비극을 만들 수는 없었다.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과 질병 치료가 진행되었고, 포획한 고양이들을 꾸준히 관리하기 위해 칩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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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비극을 넘어서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민들이 떠나며 까마득한 높이의 가림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카라는 재개발 조합에 고양이들이 차도를 건너 다른 동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림벽을 요청한 순서대로 세울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건설사에서도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협조할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가림벽 하나가 근린공원 쪽을 막아버리는 일이 있었어요. 이동을 시도하던 한 고양이 가족이 공원 쪽으로 못 가고 반대편 차도로 가게 됐죠. 길 건너다가 어미는 교통사고로 죽고, 어미 잃어버린 아이들은 영역 다툼에서 밀리고….” 여전히 재개발 지역을 떠나지 못하거나, 근린공원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고양이들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구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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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을 포획해 최소 2~3개월 동안 계류장 내에서 먹이를 공급해 주고 안전하게 방사하는 것. 이 시나리오를 위해 몇 번에 걸쳐 밤을 새는 포획 작업이 진행되었다. 건설사와 협의해 설치한 임시 계류장에 고양이들을 위치시킨 후 정식으로 계류장을 설치하기 위해 강남 구청과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계류장과 고양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누군가 민원을 넣었던 거죠. 불법 건축물이 있다고요. 계 류장에 머물던 고양이들을 포대 자루에 넣어서 데려갔대요.”

고양이들은 강남구청 근처 외딴 공터로 옮겨져 있었다. 카라는 구청으로 달려가 고양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것을 약속받고 다시 돌아와 여태껏 재개발 지역에 머물고 있는 고양이들을 구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아파트 건물 철거 직전, 카라는 봉사자들과 함께 지하 수색에 들어갔다. 쓰레기가 가득한 지하에서 고양이를 찾기 위해 소리를 내고 냄새가 강한 캔으로 고양이를 유혹했다. 제발 나가자, 제발 무사하자… 주문처럼 외며 고양이들을 쫓았다. 이후 중장비들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아파트를 종잇장처럼 깨부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고양이도 있었을까. 근린공원으로 올라간 고양이들도 이 모습을 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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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양이가 알아서 잘 살게

카라가 봉사자들과 함께 관찰하고 관리하는 고양이는 약 50여 마리. 이번 겨울은 대규모 고양이 이동을 마무리하는 시기란다. “2015년 이후로 출산된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어요. 이번 활동으로 재개발 지역의 고양이들이 무사히 영역 이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거죠.” 근린공원 입구에서 산행을 준비하는데, 그 옆으로 슬며시 고등어태비 고양이가 나타났다. 뚱한 얼굴로 분홍색 혀를 내밀고 방문자들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왔냥? 하는 얼굴이다. 고양이의 마중을 받으며 올라간 근린공원 언덕에서는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한창 공사 중인 재개발 지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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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들려오는 굉음을 배경삼아 찾아간 근린공원 곳곳에서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갈하게 위치한 쉘터 안에서 쉬다가 사람의 방문에 어기적거리며 자리를 뜨는 고양이들도 있었다. 카라는 얼어버린 물이 담긴 밥그릇을 정리하고, 계류장 옆에 고양이 화장실용 모래를 갖다 놓았다. 마지막으로 치료가 필요해 포획했던 턱시도 고양이를 잡았던 자리에 방사했다. 고양이는 날쌔게 뛰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팔팔하니 이제 내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이.

CREDIT

김나연

사진 엄기태?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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