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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 구조기 ① 신월동 재개발 지역에…

  • 승인 2017-02-13 10: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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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 구조기 ①

: 신월동 재개발 지역에서

제보가 왔다. 저는 철거지역의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입니다. 오래 끌어 왔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현재 동네 전체는 건물 잔해와 쓰레기, 유리 파편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제 곧,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 지하실에 숨어 있던 고양이들이 매몰되기도 한답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죽음으로 내몰릴 고양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해 주셔서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 주세요. 장소는 양천구 신월동의 재개발 지역이었다. 다급한 요청에 일단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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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 위 발자국의 주인

뒤늦게 찾아온 동장군은 더 난폭하게 기승을 부렸다. 1월 말 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 제보를 준 캣맘 이지성 씨(가명)를 신월동 현장에서 만났다. 동네 주민이었다가 재개발이 확정되어 얼마 전 이사를 간 지성 씨는 밥을 주던 아이들이 눈에 밟혀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을 찾고 있다. 흠 없이 하얗게 덮인 마을이었지만, 집 가까이 다가가자 작고 앙증맞은 발자국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작은 발자국의 주인들을 찾아 다녔다.

지성 씨는 밥을 주는 포인트에 도착하자 아롱아, 라 외치며 발을 쿵쿵 두드렸다. 아롱이는 그가 이 일대의 길고양이들을 부르는 품 넓은 이름이다. 기척을 느낀 고양이들은 하나둘 얼굴을 내밀거나 야옹 소리로 화답했다. 어느 쪽이든 대번에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은 없었다. 배가 고프고 목도 마를 텐데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이 더 큰 듯 했다. 길고양이가 사람을 경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고 지성 씨의 부름이 이어지자 신월동의 아롱이들은 주춤주춤 먹이 근처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몇 군데의 포인트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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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얘네만큼은

그러다 만난, 지성 씨가 ‘얘네만큼은’이라 힘주어 말한 턱시도 아롱이 다섯 형제. 추위 탓에 코가 벌겋고 짜게 먹어서인지 몸이 다소 부어 있었다. 사실 본지에는 별도의 구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다만 홍보 채널과 복지 단체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 황급히 채비를 하고 나오게 된 것이다. 일단 상황을 담을 사진과 영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씩 꽁무니를 내뺐다. 긴장과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곧 무너질 2층 집 곳곳을 누비며 앵글과 포커스를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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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맞은편에서 고함이 들렸다. 짧고 저급한 말들이 이어졌다. 철거 업체 측 용역 직원들이었다. 카메라와 캠코더에 민감한 반응이었다. 거침없이 달려오는 그들을 지성 씨의 팔이 막아섰다. 지성 씨는 사정을 말했다. 고양이 구조를 위해 나온 분들이라고. 당신들도 추위에 떠는 고양이들 불쌍한 마음 없냐고. 이 지역 주민이었고 오랫동안 캣맘으로 활동해 온 지성 씨는 이미 업체 직원들과 안면이 있는 상태였다. 직원들은 재개발-철거 과정을 취재하러 온 사람들로 오인했다며 외려 멋쩍어했다. 고양이들이 다른 곳으로 어서 자리를 옮기길 바란다는 말까지 전했다. 길고양이를 구조할 때 캣맘들의 협조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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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 구조의 기록

현장 상황을 파악한 후 사무실로 들어와 일정을 점검했다. 아무래도 구조는 필수인 듯 했다. 여력을 모아 턱시도 형제들만큼은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반려인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두니, 협조가 필요한 구조 과정은 세 부분이었다. 포획, 검진, 그리고 임시보호.

손을 내미니 다행히 잡아주는 곳이 있었다. 일단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맺어온 애니동물병원이 기본 검진과 아이들 일부의 임시보호를 맡기로 했다. 매거진 취재로 연을 맺은 팅커벨프로젝트 측은 포획을 위한 통덫을 지원해 줬다. 인터넷에 올라온, 고양이를 쉽게 포획할 수 있는 팁들까지 숙지한 후 다시 지성 씨와 현장으로 향했다. 지성 씨는 도움이 될까 토끼장 하나를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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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시도 형제들은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일단 토끼장부터 쓰기로 했다. 폐가 앞에 토끼장을 열고 그 안에 캔을 까 두었다. 고양이가 들어오면 지성 씨가 재빨리 문을 닫는 계획이었다. 취재진은 외부인을 경계하는 고양이들의 시야에서 잠시 벗어나 있기로 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니 고양이들은 철장 쪽으로는 쉬이 다가왔지만 철장에 들어가지 않고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캔을 찍어 먹어댔다. 저 나름의 지혜인지 구조 기술의 미흡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혼란한 사이 식탐 많은 고양이 한 마리가 철장 안으로 몸을 넣었지만 지성 씨가 한 발자국 움직이자 토끼장에서 멀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다음은 통덫이었다. 통덫을 설치한 후 안쪽 깊숙이 캔 하나를 밀어 넣고 차로 돌아와 창문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꽤 시간이 흐르고 고양이 한 마리가 우물쭈물 통덫 내로 들어가더니 탁,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가자 형제가 잡힌 걸 알았는지 긴장하는 고양이들이 주위를 서성거렸다. 통덫 안에는 호박색 눈이 영롱한, 토실토실한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구조 도중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아 사람과 사는 데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머지않아 이 생각은 오산으로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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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김기웅, 김나연

사진 엄기태

구조협조 애니동물병원, 팅커벨프로젝트?

아롱이 구조기

② 구조에서 방사까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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