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남겨진 사람들 | 철쭉과 함께 잠든 코…

  • 승인 2017-02-10 11:18:13
  •  
  • 댓글 0

PETLOSS : 남겨진 사람들

철쭉과 함께 잠든 코코

삶과 죽음의 개수는 같습니다. 생명의 불꽃은 반드시 꺼집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계시다면 여러분도 언젠가 맞게 될 시간입니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아프고 슬프기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회자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에서는 이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보려 합니다. 이미 떠나보낸 이들에겐 위로와 격려가, 그 시간을 앞둔 이들에겐 마음다짐의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9afbd4651b886cf2c74499507c8eb967_1491879

저는 세 마리 냥이의 집사였습니다. 코코는 생후 8개월 차에 떠났습니다. 입이 짧고 엄청 얌전한 아이였어요. 모두 예쁘고 소중하지만 그중에 제일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애교가 제일 많았거든요. 퇴근 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면 어느새 문 앞에 와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만져주면 바로 골골송을 부르고, 잘 때면 언제나 슬쩍 어깨 옆으로 와 같이 잠을 청했는데…

2016년 12월 10일


- 식욕 부진 및 조금 묽은 변. 평소 입도 짧고 잘 안 먹는 아이라 바로 병원 내방. 일 때문에 토요일에 움직이기 쉽지 않지만 왠지 오늘 안 가면 안 될 것 같다.

- 증상을 이야기하니 고양이가 아프면 이것만으론 어떤 질병이라 확답하기는 힘들단다. 현재 코코는 3차 접종까지 다 끝낸 상태로 내 맘 편하고자 범백, 에이즈 등 검사 실시. 다 음성 반응이 나와 안도했다.

2016년 12월 24일


-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불빛 축제에 갔다 왔더니 코코의 눈이 이상하다. 순막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행히 집 10분 거리에 24시 응급병원이 있어 피검사를 받았는데 큰 문제없다. 증상은 건식 복막염 같으니 시간이 좀 지나 재검사를 하거나,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2016년 12월 28일


- 코코가 바닥에서 침대까지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수의사 선생님께 동영상, 사진을 보내고 문의를 하자 데리고 와보라신다. 설마 진짜 복막염인 건가. 그럴 리가…

- 재차 피검사를 했다. 건식 복막염 확률이 85프로 이상이라고 했다. 펑펑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코코가 이렇게 아픈 거지…

2016년 12월 30일


- 코코의 몸무게가 2.8kg에서 2.1kg까지 빠졌다. 왠지 앞을 못 보는 거 같아 선생님께 묻자 시력을 90% 잃었다고 한다. 뒷다리는 이제 전혀 못 쓴다. 눕거나 앉을 수 있는 코코를 보게 되다니… 선생님께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 집에 오는 길에 코코가 좋아하는 챠오 탈탈 털어 15만원치 샀다. 이걸 다 먹을 때까지만 코코가 버텨 주었으면 좋겠다.

2017년 1월 1일


- 종소리 들으면서 기도했다. 코코랑 1월만 같이 보내게 해 달라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기도는 무의미했다. 아침부터 코코는 가슴 부분까지 마비가 왔고 온몸이 굳었다가 풀리는 증상이 하루에 2번 정도 일어났다. 서거나 앉지 못해 그 자리에 배변 실수를 했다.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아프다고 울지도 못한다.

2017년 1월 5일


- 밤 11시, 갑자기 코코가 발작을 했다. 4분 정도 온몸을 떨며 침을 많이 흘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고 코코야, 코코야 불러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2017년 1월 6일


- 오전 11시 쯤 또 경련을 했고, 그 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경련으로 흐른 침이 얼굴을 다 적셨고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 오후 3시쯤엔 아무 소리도 못 내던 코코가 계속 이상한 소리를 냈다. 병원에 전화해서 선생님께 오늘 코코를 보내줘야 할 거 같다고 했다.

- 코코에겐 “조금만 참자”라고 이야기했는데 4시 30분부터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며 입을 벌리며 숨을 색색거렸다. 50분쯤엔 눈과 입을 벌리고 숨을 더 이상 쉬지 않았다. 울면서 인공호흡과 심장마사지를 했다. 다시 잠깐 숨을 쉬었지만 결국 눈을 감았다.

- 코코는 집 1층에 있는 화단에 묻어 주었다. 미리 맞춰둔 수의를 입히고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다는 철쭉도 같이 묻었다.

9afbd4651b886cf2c74499507c8eb967_1491878

사랑하는 코코야.

코코보다는 ‘블랙’, ‘야!’ 이렇게 더 자주 불렀는데 예쁜 이름 많이 못 불러 줘서 미안해. 이제 나한테 머리를 들이밀면서 긁어달라고 하는 녀석도 없고, 내 옆에서 같이 잠드는 아이도 없어.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 미칠 거 같아서 불도 못 끄겠더라. 너 먹이려고 산 챠오도 저렇게 많이 남아있는데… 안락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조금만 일찍 널 보내줄 걸. 이 후회가 가장 크다. 마지막 날 고통스러웠던 네 모습을 잊을 수가 없거든. 내가 널 고통 속에 가둔 거 같아 정말 미안해. 거기서는 제발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

요즘은 안 울어! 그래도 하루에 열 번은 더 네 생각하는 거 같아. 회사에 아직 네 패드랑 기저귀가 있고 집에 가면 빨래 건조대에 네가 입던 옷, 좋아하던 장난감이 남아 있어. 보고 싶어서 땅을 파서 너를 꺼내고 싶을 때도 많아.

코코야, 거기서는 네 발로 잘 뛰어다니고! 다른 고양이들이랑 사이좋게 잘 지내. 기회가 된다면 꼭, 꼭 다시 만나고 싶다.

* 광주 서구의 박현구 씨 사연입니다.

* 반려동물의 죽음에 관한 사연을 받고 있습니다. edit@petzzi.com로 보내 주세요. ?

CREDIT

박현구

그림 우서진

편집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