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②?
집사는 행복했어요
고양이에게 쓰는 연하장
당신의 반려묘를 위해 아끼는 펜을 꺼내자. 예쁜 편지지, 깨끗한 종이 혹은 낡은 노트도 함께 하자. 그 어느 곳에든 애틋한 마음을 손글씨로 빗대어 옮기다보면 반려묘에 대한 사랑도 새삼 퐁퐁 솟아날 터. 그렇게 올해에도 힘내서 사랑하기 위한 준비, 네 반려인이 시작했다.
#1 중년의 동생에게 건네는 마음 (from 김지선 님)
지금 이 시간, 굳이 내 침대 시트 아래에 파고들어가 잠을 자고 있는 내 동생 망고에게.
이 누나는 네가 없어진 줄 알고 놀라서 한참을 찾다가 불룩 튀어나온 침대 시트를 보고 겨우 한숨을 돌린 채 이 편지를 쓰는 중이야. 분명히 집 안 어딘가에 있을 걸 알면서도 네가 안 보이는 그 순간에는 왜 그리도 심장이 덜컹하는지 모르겠어. 들추어낸 시트 아래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뭐? 왜?’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네가 얄미우면서도 왜 이리 귀엽던지.
네가 올해 여덟 살이라는 얘기를 하면 누나 친구들이 얼마나 놀라는지 아니? 그 손바닥만 한 아가가 너희 집에 처음 찾아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여덟 살이나 됐냐고, 정말이냐고, 반복해서 물어보더라. 네가 태어난 연도를 말해주니까 곧장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더라고. 그만큼 그 친구들의 8년도, 나의 8년도 순식간에 흐른 거겠지. 널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열여섯 중학생이었는데, 어느새 대학교 졸업을 앞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야. 2009년생인 네가 만약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텐데 ― 이렇게 생각해보면 너랑 나랑 꽤나 오랫동안 함께 지냈구나, 싶어서 괜히 자고 있는 너의 등을 한 번 더 쓰다듬어주게 돼. 여전히 부드럽지만 8년 전에 비하면 상당히 억세진 너의 털을.
2017년 새해가 밝았어. 너와 내가 함께 보내는 아홉 번째 해야. 최근 들어 너의 몸 곳곳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월의 흔적이 자주 발견되곤 하는데, 내색은 안 하지만 사실 걱정이 많이 돼. 내 검은 옷을 네 털로 뒤덮어도 좋고, 침대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잠을 자도 좋으니 내 동생아, 앞으로도 오랫동안 누나랑 같이 살아 주지 않을래?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활발하고, 먹성 좋고 건강한 고양이로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하자. ♥
#2 그렇게 부모가 된다 (from 김소영?김용삼 님)
사랑하는 우리 김산에게
산아~ 너를 데려 오기 전 엄마 아빠는 고양이에 대해서는 참 무지한 초보 집사였단다.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처음에는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었지만 맞벌이 부부인 우리 생활패턴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 고양이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기적인 우리였다고 돌아보게 되는구나.
산이 너를 만나고 입양한 첫날, 이제 막 2개월이 된 너를 안아들고 우리 부부는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스러움에 어쩔 줄 몰랐단다. 마냥 좋기만 했지~ 우리 착한 산이가 기특하게도 집에 오자마자 집을 탐색하고 화장실도 성공하고 무릎 위에서 골골송을 부르고. 고양이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얼마나 네가 기특하고 고마운지 모른단다.
첫 예방 접종 날, 네 울음소리에 같이 울고, 엄마 심장 약을 삼킨 줄 알고 널 응급실로 안고 뛰었던 그날 “이제 정말 산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우리 부부는 이야기했어. 서로 두 손 맞잡고 너에게 아무 일 없기만을 기도했지. 네가 중성화 수술 받는 날도 기억난다. 수술을 맡기고 마음 졸이다 기다리다 널 데리러 갔을 때 힘없이 고개 들며 아빠 손을 핥는 너를 보며 또 한 번 울컥하고, 그렇게 우리는 너의 부모가 된 것 같다.
산아, 우리가 네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그냥 지금처럼 엄마 아빠 옆에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엄마, 아빠의 아들로 우리 곁에 와줘서 너무 고맙다. 산아! 사랑하고 축복한다.
#3 위로가 되는 내 사랑, 내 아들 (from 손희경 님)
사랑하는 내 아들 봄이에게
1986년 4월 30일 태어난 엄마와 2016년 4월 30일에 태어난 우리 봄이. 사람들이 말하던 묘연 이라는 게, 너에게 진짜 있었던 것 같아.
엄마에게 진짜 아기같이, 아들같이 있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아직 어리디 어린 네가 엄마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13년을 내 동생으로 살다 별이 된 앙이가 떠났던 날… 8시간을 내내 통곡하며 울기만 하는 엄마 옆에서 너는 고사리 같은 앞발 하나만 엄마의 무릎에 놓고 가만히 있었지. 네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마음을 겨우 추스를 수 있었어.
네가 하루하루 커 가는 모습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엄마는 너무 행복하단다. 너로 인해 다른 고양이들의 삶을 생각하게 됐고, 주변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었고, 보드라운 털과 따뜻한 체온을 알게 됐고….
2017년은 우리 아들이 첫 번째로 맞는 생일도 있고, 봄이랑 엄마가 함께 맞이하는 첫 봄과 여름도 있어. 접종도 꼼꼼히 다 맞고 있으니까 내년에는 더 씩씩하고 당당해지자. 엄마는 새해엔 더 많이 교감할 수 있는 집사가 될게. 사랑하고, 또 사랑해.
주인 봄봄의 집사 엄마가.
#4 세 번의 겨울을 보내며 (from 윤지선 님)
나비 3호.
만남 3년이 넘었다. 네가 오기 전 가게에 머물던 나비 2호가 고양이별로 갈 때 내가 너무 울었기에, 다시는 고양이를 못 키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 가게 앞, 좁고 지저분한 구석에서 새끼들을 키우던 비쩍 마른 너를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동네 고양이 너는 길냥이, 그러면서 가게냥이. 사람들은 별 소리를 다 했다. 고양이는 주인 모르지 않냐, 무섭지 않냐, 그런 걸 왜 키우냐. 그러나 너는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눈을 맞춰주고, 친해진 사람은 집까지 찾아가면서 동네의 고양이가 되었다. 이제는 가게에 온 사람들이 너부터 찾고, 너에게 인사를 건넨다.
잘린 귀 TNR을 시킨 것을 여태 후회한다. 큰 돈을 주고 수술하기에는 정이 덜 들었다는 이유로 다른 이의 손에 맡긴 나를 자책한다. 너는 정말 많이 무서웠을 텐데, 아팠을 텐데.
가족 엄마는 네가 가게에도 못 들어오게 했다. 내가 몰래 네 자리를 만들고 조금씩 가게 안에 들였다. 너는 엄마에게 애교를 부렸다. 그러다 어느새 엄마는 네게 먼저 말을 건네고, 밥을 챙기고 매번 물그릇을 씻어가며 깨끗한 물을 챙겨주고 있다. 너를 챙기는 나에게 아빠는 유난을 떤다고 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너의 병원비와 사료값을 찔러주고는 한다.
2017 우리 가게의 난로 앞에 네 자리를 마련한지도 세 번째 겨울. 지금의 겨울도, 내년도, 내 후년에도, 네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특별할 것 없이 함께 맞도록 하자. 새로운 해, 새로운 날들.
CREDIT
사진 장수연
편집 김나연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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