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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큼 강인하게, 앞을 향해 소룡아

  • 승인 2016-12-19 10: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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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 2막

이름만큼 강인하게

앞을 향해 소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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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말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이름대로 살게 된다고. 그래서인지 예부터 우리는 늘 크고 작은 소망을 이름 안에 담아왔다. 소룡이의 이름에도 운명의 힘이 깃든 것일까. 안락사 직전까지 내몰렸던 비극의 끝에서 살아남은 소룡이는, 살아남은 것으로도 부족하여 이제는 또랑또랑 앞을 마주하며 제 힘으로 일어선다. 이미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소룡이는 그 이름만큼이나, 어쩌면 이름보다도 더 멋지고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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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니

모든 일의 발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지희 씨가 일하는 곳에서 갑자기 구조되어 온 아기 고양이 역시 그랬다. 앙상하게 마른 몸과 흙과 먼지, 오물들이 달라붙어 더러워진 털. 미미하게 들리는 숨소리. 한쪽으로 쓰러져 일어서지 못하고 네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의 왼쪽 귀 안에서는 끊임없이 누런 농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계속 누워 움직이지 않고 제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모습에 병원에서는 뇌 손상에서 오는 마비를 의심했다. 교통사고보다는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해 이 지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어쩌면 던진 돌에 강하게 맞았거나 누군가가 직접 내리친 것 같기도 하다는 그 말을 들으면서 지희 씨는 안 그래도 무거운 마음이 더 깊숙하게 가라앉았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두 달 정도로 추정되는 아기 고양이. 이 작은 아이가 무슨 잘못을 그리도 크게 했다고 악의와 분노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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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결국엔 안락사 이야기가 오갔다. 막대한 치료비와 온전한 몸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수의사의 소견에 구조자는 울며 마음 아파했지만 달리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지희 씨는 임보와 안락사 사이에서 갈등했다. 아픈 아이를 데려와 보호하고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분과 인연을 맺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을까. 감히 그래도 되는 일일까. 6년을 캣맘으로 살아온 지희 씨였기에 오히려 생명에 대한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 과거에 구조했던 고양이 두 마리를 고양이 별로 떠나보낸 아픈 기억도 발목을 붙잡았다. 지희 씨의 가족들 역시 고양이 구조로 크고 작은 상처들에 지쳐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망설임은 잠시였다. 습식사료를 갈아 넣은 주사기를 힘차게 빨며 곧게 자신을 쳐다보는 아기 고양이의 맑은 눈동자에서 지희 씨는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았다. 냐오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울음소리는 가냘프긴 했지만 끊길 줄 몰랐다. 지희 씨의 망설임은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해보자. 그렇게 아기 고양이는 그 이름도 든든한 ‘소룡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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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씩씩하게


소룡이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왼쪽 귀 안에 깊은 상처가 있어 심각한 염증과 괴사가 진행된 상태였기에 그 부분을 모두 긁어내고 드레인을 연결해 남은 농까지 전부 빠져나오게 했다. 1kg도 채 되지 않는 몸으로 무사히 수술을 견뎌 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기특한데 소룡이는 누운 채로 꼬박꼬박 밥도 잘 먹고 배변을 본 후에는 패드를 바꿔달라며 큰 소리로 울기도 했다. 귀 안쪽의 상처가 깊어 뇌쪽 신경에도 영향을 미쳤기에 비록 여전히 부자유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확실한 차도였다.

지희 씨는 고양이 마사지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활치료를 위해 소룡이의 아픈 발을 조심스럽게 몇 번이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소룡이는 지희 씨의 마음이 한가득 담긴 손길을 양분 삼아 차츰 회복되어 갔다. 햇살을 담뿍이 받아 이윽고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소룡이는 처음에는 아예 움직이지도 못했던 앞발을 조금씩 펴고 굽히며 그 작은 혓바닥으로 제 앞가슴을 그루밍하기도 했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을 다루는 데도 익숙해졌는지 용케 몸을 굴려 조금씩 이동하기도 했다. 아아, 기적이다. 누가 이소룡 아니랄까봐! 그렇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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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지희 씨 집에는 구구와 치즈라는 두 마리의 성묘가 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소룡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고마운 형들이다. 특히 첫째인 구구는 검은색과 흰색의 얼룩무늬가 소룡이와 꼭 닮아 지희 씨가 소룡이를 임보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기하게도 소룡이는 저보다 몇 배는 큰 구구에게 살갑게 먼저 다가가 온 몸을 부대끼며 애정을 표현한다. 그루밍은 덤이다. 구구 역시 소룡이가 아픈 것을 아는지 늘 유심히 지켜본다.

“더 이상 바라는 건 없어요.” 지희 씨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웃었다. 지금에 대한 감사와 소룡이에 대한 차고 넘치는 사랑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소룡이는 발견되던 당시와 비교하면 같은 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잘생긴 꼬마 턱시도 고양이가 되었다. 아직 몸이 온전하지 못하기에 여기 쿵 저기 쿵 부딪히기 일쑤지만 그런대로 우다다 시늉도 할 줄 안다. 비록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고개가 여전히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고 왼쪽 귀는 여전히 들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룡이는 제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다. 상처, 만남, 치유, 재생.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하고 마침내 지금 여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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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 씨의 등 뒤로 소룡이가 신나게 뛰어간다 싶다가 역시나 데구르르 넘어졌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발딱 일어나 장난감을 물어든다. 호기심 대마왕이란다. 아뵤! 얼마든지 덤벼보라고! 애꿎은 어묵꼬치와 격렬한 싸움을 시작한다. 불편한 몸 따위 천하의 이소룡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놀던 소룡이는 문득 그리운 듯 지희 씨의 포근한 스웨터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룡이에게 지희 씨는, 이름에 깃든 운명의 힘보다 더 강력한 구원자였다. ?

CREDIT

장수연

사진 엄기태

자료협조 이지희?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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