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제주라서 행복한 고양이 | ‘김녕 금속…

  • 승인 2016-11-08 10:42:38
  •  
  • 댓글 0

제주라서 행복한 고양이

‘김녕 금속공예마을’ 편

초가을 제주도를 강타한 제18호 태풍 ‘차바’가 지나간 뒤 황금빛 억새가 휘날리는 본격적인 가을이 찾아왔다.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지역의 아픈 흔적들이 지워져갈 때쯤 차가운 길 위에서 외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길 고양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이번엔 좀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나들이도 할 겸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구좌읍 김녕으로 떠났다.

d51d68b05206a7f420bc279d5eb9eab1_1478569


꽃이 핀 길을 걸으며 만나다


구좌읍에 위치한 김녕리에는 지난 2013년 제주로 이주해 온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금속공예벽화마을’이 있는데, 이 길은 김녕로 1~21길을 따라 총 3km에 달하는 일명 ‘GNG(GimNyeonG) 아트빌리지- 고장 난 길’이다. 총 34점의 금속벽화가 새겨진 이 길의 이름인 ‘고장난 길’은 제주어로, ‘고장’은 꽃, ‘난’은 피우다는 의미로 ‘꽃이 핀 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색이 옅어지고 구부러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그리고 고달프게만 생각해왔던 해녀의 일상을 아름답게 표현해 따뜻함을 건네준다.

d51d68b05206a7f420bc279d5eb9eab1_1478569

천천히 동네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배고픔에 울부짖는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가늘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 가니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진 까만 돌 위로 움직이는 노란 실뭉치가보였다. 드디어 만나게 된 길 위의 고양이가 너무 반가워 천천히 다가갔다. 처음에는 조금 경계하는 듯 멀리서 지켜보더니 어슬렁어슬렁 다가와서는 무심하게 하던 일에 몰두하는 고양이. 돌맹이 사이에 뭘 숨겨 놓았는지 주위를 살피더니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쏙 집어넣고 뭔가를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먹고 있는 중이라 다가갈 수가 없어 나중에 확인해보니 사료 부스러기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저 구멍에 사료를 넣어두고 간 모양이다. 이 고양이가 사료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한두 번 먹어본 것이 아니란 얘기다. 아무래도 길냥이들의 밥그릇 대용으로 돌 위의 구멍을 선택하고 정기적으로 사료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d51d68b05206a7f420bc279d5eb9eab1_1478569

평온한 고양이들의 쉼터


그렇게 이곳저곳 여러 돌 틈을 살피며 배를 채우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저 멀리서 또 다른 치즈색 고양이가 입맛을 다시며 유유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카리스마 있는 표정과 걸어오는 행색을 보아하니 동네에서 대장 역할을 하고 있을 법한 고양이였다. 이 고양이는 해안가 돌 틈에 있는 사료를 먹는 고양이를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더니 자기는 이미 배를 채웠다는 듯 입 주위를 혓바닥으로 계속 날름날름하며 몸 닦기에 바쁘다.

열심히 몸단장을 하는 고양이 옆으로 놀라지 않게 슬금슬금 다가갔더니,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고 몸단장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길 위의 고양이들은 사람이 다가오면 잽싸게 도망가서 몸을 숨기기 바쁜데 너무나도 여유롭게 앉아 그루밍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 동네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고양이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낯선 사람의 손길은 싫었던지 만지려고 손을 드니 경계를 하는 듯 위쪽으로 올라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고양이가 가는 방향으로 천천히 따라가니 돌담 아래 작은 벤치 위에서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너무나도 평화롭게 낮잠을 청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찌나 경계가 없었으면 그처럼 노출된 공간에서 혓바닥까지 내밀고 잘 수 있는지…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d51d68b05206a7f420bc279d5eb9eab1_1478569

길 위에서도 행복할 수 있기에


한참을 그 세 마리의 고양이에게 홀려 셔터를 눌러댄 것 같다. 바다가 맞닿은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너무나도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이곳 길 고양이들의 표정이 온화해보이기까지 했다. 도심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매일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 위를 오가며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달아나기 바쁜데, 이곳에서는 고양이들의 걸음걸이가 너무나도 여유롭게 느껴졌다.

이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살지 않고 마을 전체를 누비며,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나무벤치와 경계심 없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평화로운 일이 아닐까? 그저 예쁘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고양이를 집에 데려와 따뜻한 공간에서 자고,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들어놓고선, 귀찮아졌다거나 말썽을 부렸다는 이유로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상처받는 고양이들의 삶 보다 길 위의 이런 삶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d51d68b05206a7f420bc279d5eb9eab1_1478569

CREDIT?

글·사진 조아라?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