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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고양이 주점

  • 승인 2016-10-14 13: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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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고양이 주점

싱글족, 1인 가구가 늘어나며 혼자 즐기는 나홀로 문화가 성장하고 있다. 술도 예외가 아니다. 여럿이 즐기는 한국식 주류 문화가 허물어지며 ‘혼술’이란 말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할 주점 세 곳엔 당신을 맞이해 줄 고양이가 있다. 비록 그들이 술잔을 부딪쳐 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외로움에 사무칠 일은 없을 거다.

[With Beer] 합정 ‘리틀앨리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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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족히 몇 백 마리

리틀앨리캣은 열두 마리 고양이의 훌륭한 집사이며 네 마리 강아지의 든든한 아빠인 이태훈 씨의 취향이 함빡 담긴 곳이다. 카운터 옆에서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에 등장하는 까만 고양이 치치 인형이 방문객들을 흘겨보고, 벽에는 고양이가 그려진 액자, 엽서, 그릇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진열장 안에 자리를 잡은 도자기 재질의 아기자기한 고양이 미니어처들은 일본을 오가며 태훈 씨가 직접 업어 온 귀염둥이들이다.

맥주잔이 놓인 찬장이나 가게의 구석구석 진열된 고양이 인형을 찾는 재미도 있다. 카운터 앞에 위치한 고양이 간식 판매대, 그리고 맥주잔과 티슈, 맥주 받침대의 리틀앨리캣의 로고에도 고양이가 있다. 리틀앨리캣에 있는 고양이는 대체 몇 마리일까. 가지각색의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고양이 쿠션을 안고 앉아 있노라면, ‘냥뽕’에 취해 몸이 노곤하게 풀린다. 술을 좋아하는 냥덕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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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의 맛과 함께

“처음 마시기에는 IPA 계열(도수를 높이고 홉을 많이 넣은 맥주)도 괜찮고, 상큼한 맛이 들어간 맥주도 괜찮겠네요. 일 년에 한두 번만 마셔볼 수 있는 희소성 있는 맥주들도 들여오고 있고요.” 맥주에 대해 물으니 자신 있게 추천 맥주를 말해주는 이태훈 씨. 맥주 초심자이든 둘째가라면 서운한 애주가이든 자신에게 딱 맞는 맥주를 찾아줄 것이다. “11월에는 스타우트 계열의 맥주랑 크림 스피니치를 추천해 드릴게요. 생크림이랑 우유를 혼합한 소스에 빵을 찍어 먹기 좋거든요. 스타우트의 묵직하고 짙은맛이 크림의 단맛이 어우러져서요.”

최근에는 수제 맥주라고 불리는 크래프트 맥주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전에는 해외에서 수입을 많이 했지만, 최근 국내에 양조장을 차리는 업계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맥주의 맛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게 태훈 씨의 설명이다. 운명의 맥주를 찾고 싶다면, 새삼스럽겠지만 한 잔 한 잔 마셔보며 마음에 쏙 드는 맥주를 찾아보기를 권할 수밖에. 물론 혀끝과 나누는 의논의 시간에 고양이가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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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리틀앨리캣의 길손님 1호. 가게 옆에서 돌보던 새끼들을 독립시키고 혼자 단골로 오가기를 벌써 5년. 최근 밤이와의 영역 다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밤이와 싸웠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 중. 앨리를 마주치는지 여부로 다음날 운세를 점쳐 봐도 좋을 듯.

밤이 길손님 2호. 터줏대감 앨리를 위협하며 등장한 신흥 세력. 앨리를 몰아내고 가게를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손님이 드문 밤에만 등장해서 밤이라고 부른다. 매장에서 밤이를 만났다면 어딘가에서 이를 갈고 있을 앨리에게 심심한 위안을 전해주자. 가게 테라스까지만 들어오는, 조심스럽고 예민한 성정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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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로 만든 수제육포와 치즈 햄 견과류.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앨리캣플레이트'

INFO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370-4 / 010-2004-5576

[With Cocktail] 영등포 ‘바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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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고양이

출입문이 열리자, 입구에서 식빵을 굽고 있던 러시안 블루 꿈이가 벌떡 일어나 반겨준다. 아는 얼굴이면 자리까지 쫓아가 인사를 건넨다는 꿈이 옆으로 노르웨이숲 밤이가 나타난다. 밤이는 초면이라도 마음에 들면 손님의 어깨에 몸을 걸친다. 밤이가 어깨에 편하게 몸을 뉘일 수 있도록 다리를 잘 받쳐주고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줘야 하는 것은 손님의 몫이다.

바밤바에 거주하는 고양이는 총 여덟 마리다. 고양이들은 모두 순하고 손님 접대에 능하다. 카페 경영자인 이희영 씨는 처음부터 고양이를 데려올 생각은 아니었다. 고양이를 원래 좋아했던 희영 씨가 어쩌다 11개월인 밤이를 분양받게 됐고, 혼자인 밤이가 외로워 보여 둘째를 데려오고, 그렇게 세 마리, 네 마리 가족이 늘어나게 되었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네 발 달린 가족들을 위해 조용한 음악을 틀고, 은은한 조명을 맞추고, 공연도 그만두게 된 후에 바밤바만의 여유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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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나를 만나주오

바밤바에는 홀로 방문해 고양이와 노닥거리는 단골들이 많은데, 그들의 취향은 참 다양하다. 맥주와 오징어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독한 칵테일이나, 혹은 코스모폴리탄이나 카시스프로펙, 미도리 샤워 등 특정한 칵테일만을 주문하는 손님도 있다. 특히 잘 만든다는 모히또에 반한 사람도 여럿. “줄리엣도 괜찮아요. 안주 없이 한 잔으로도 깔끔하고요.” 9.2°를 자랑하는 줄리엣은 예거, 카시스, 피치트리, 석류시럽, 레몬주스, 애플주스, 우유로 만들어졌다. 다홍빛 얼음에 체리가 한 알 올라가 있고, 줄리엣을 즐길 수 있는 스푼과 컵에 매달려 있는 고양이 피겨가 함께 제공된다.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맛, 칵테일 입문자에게도 행복한 맛이다.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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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숲. 오른쪽 어깨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함.

브리티시 쇼트헤어. 비눗방울 중독묘

아비시니안. 달이 엄마(사람)만 따름.

러시안 블루. 호기심 가득한 수다쟁이

?강 뱅갈. 까칠하지만 간식 앞에서는 강아지.

아메리칸 쇼트헤어. 까칠하지만 고양이계 대표 미녀.

코리안 쇼트헤어. 집중하면 보노보노를 닮은 간식 도둑.

뱅갈. 강이의 장남으로, 아직 아기라 성격은 밝혀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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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엣. 예거, 카시스, 피치트리, 석류시럽, 레몬주스, 애플주스, 우유로 만들었다.

INFO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3가 23-8 2층 / 02-3667-7678

[With Sake] 한남동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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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시도 입은 젠틀한 웨이터?

한남동에 위치한 이자카야 승은 7개월 된 턱시도 고양이 모모의 집이다. 모모는 널찍한 가게에서 퇴근도 마다하고 눌러 사는 워커홀릭(?) 웨이터. 아직 아기 티를 못 벗어난 작은 고양이지만 손으로 쓰다듬으려면 앞발을 들어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정중히 막아선다. 괜스레 무안해지지만 들린 앞발 사이로 잘 정리된 발톱을 확인하는 순간 웨이터의 프로페셔널한 절도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고급 양복을 걸친 듯 윤기 있는 검은 털은 은은한 조명에 비칠 때마다 기품을 자아낸다. 고양이 덕후라면 팁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 솟을 테지만, 그 또한 거절할 게 분명하다.

부천에서 온 유기묘 출신 모모는 가게의 시작과 함께 했다. 6개월 전 새 주인의 손에 의해 리뉴얼된 가게는 머지않아 모모의 거처가 됐다. 손님들이 많을 때는 위험하기도 하고 모든 손님이 고양이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모모를 입구 근처에 묶어 놓는다. 술과 음식을 먹으며 모모와 놀고 싶다면 입구 쪽 1번 테이블에 앉길 바란다. 점점 모모의 팬이 늘고 있다고 하니, 늦게 간다면 경쟁이 치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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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왔다면 Bar로 가자

승의 테이블은 큼직하다. 왁자하지 않은 분위기를 찾는 연인이나 여성 손님이 대다수다. 하지만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오픈되어 있는 주방 바로 앞에 설치된 바 좌석은 다른 곳보다 조금 어둡게 세팅되어 있어, 여러 손님들 틈에서도 섬 안에 있는 것처럼 단절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곳곳에 고양이 용품과 장난감이 장식되어 있어 눈요기하기에도 좋다.

김도현 씨는 강아지만 키워오다가 승을 운영하며 고양이를 처음 입양했다. “사람들이 강아지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 인기가 상당히 많더라”며 은밀히 인간 세계 구석구석을 침투하고 있는 고양이의 위세에 새삼 놀란 도현 씨. 인터뷰 중에도 도도하게 테이블 위를 넘나드는 모모의 모습을 보니 어째 고양이의 집에 세를 내어 가게를 차린 듯 관계가 뒤바뀐 묘한 모습이지만, 빠듯한 가게 운영에 고양이가 한 몫 든든히 거들어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맥주집, 칵테일 바보다 가격대가 높은 메뉴들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다. 그래도 늠름한 모모가 달래줄 테니 걱정 말자. 스산한 늦가을의, 우리 주머니의 적적함을.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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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7개월령 암컷 턱시도 고양이. 유기묘 출신이지만 어두운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발랄함이 포인트. 매장을 자유로이 노니는 모모를 보고 싶다면 오픈시간, 주문 마감 시간에 맞춰 찾아가 보자.

?혼자라면 이렇게! 주인장 추천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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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도쿠리와 오징어 숙회

INFO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사관로34길 9 지하 1층 / 02-797-9598?

CREDIT

김나연 김기웅

사진 박설화

본 기사는 <매거진C>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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