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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고양이 꼬미, 그래도 살아간…

  • 승인 2016-10-10 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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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 2막

헬렌 켈러 고양이 꼬미,

그래도 살아간다

헬렌 켈러는 두 살 때 앓은 뇌척수염으로 눈과 귀가 멀고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얻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잡아준 건 가정교사 앤 설리번 선생이다. 설리번은 글자 그대로 그의 손을 잡은 채 물을 적시고 바람을 불며 또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왔다.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양이 ‘꼬미’의 사연을 담기에 앞서 헬렌 켈러의 일화를 언급한 건 이보다 더 꼬미의 상황에 들어맞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꼬미는 작년 눈과 귀가 먼 채 거리 위에서 상처투성이로 구조됐다. 아사의 지경에서 꼬미를 건져내고, 치료하고, 양육한 평범한 반려인 부부의 1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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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의 재구성 : 2015년 7월


덥고 습한 아침이었다. 그날도 지우 씨는 카페를 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오픈 준비에 한창이었다. 건물이 낡아서 에어컨을 켠 후 실외기가 잘 돌아가는지 밖으로 나가 확인하는 것도 아침 일과 중 하나였다. 팬은 무사히 돌아갔지만, 그 뒤에 뭔가 이질적인 물체가 보였다. 고양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벽돌 벽과 실외기 사이에 끼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보통 손으로 휘휘 저으면 잽싸게 도망가는데 이 녀석은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의아한 마음에 마침 옆을 지나가던 단골손님 한 분의 손을 빌려 고무장갑을 끼고 고양이를 꺼내들었다.

지우 씨는 그 즈음 고양이와 생활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러시안 블루 두 마리에 임시보호하다 거두게 된 셋째까지 세 마리의 고양이와 알콩달콩 지내던 지우 씨는, 셋째 고양이와 똑 닮은 고양이의 얼굴을 보자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아주 마르고 지저분한데다 기운이 빠졌는지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고양이를 동물병원으로 옮긴 지우 씨는 그 때까지만 해도 조만간 이 아이가 좋은 가정으로 순탄히 입양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병원에 들어간 고양이는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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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의 재구성 : 2015년 8월


지우 씨의 남편 홍철 씨는 오열하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이미 아내가 구조한 고양이의 소식을 알고 있었고, 줄곧 병원을 오가며 고양이의 상태를 살펴온 홍철 씨였다. 아내는 엉엉 울며 고양이의 안락사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철 씨는 병원에서 처음 본 고양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등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고양이는 털도 없고, 초점도 없었다. 상처투성이에 힘이 없어 울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니 ‘일단 살리고 보자’는 아내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의사가 24시간 고양이 옆에 붙어 있어도 좀처럼 차도가 없었고 수혈을 계속 했지만 신체 수치가 오르지 않아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됐다.

안락사를 고려하자는 견해에도 홍철 씨와 지우 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몇 시간이라도 늦게 발견됐으면 이미 저 세상에 갔을 거라는 진단은 오히려 이 아이가 우리 손에 구조될 운명이라는 것을 확신케 했다. 고양이는 20일 이상 산소 방에서 사경을 헤매다 한 달이 넘어서야 조금씩 회복세를 띄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고양이의 상태에만 몰입하던 두 부부는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고양이가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자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며 의사는 가정 보호를 권유했다. 별 고민 없이 지우 씨 부부는 집으로 고양이를 데리고 갔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고양이는 ‘꼬미’라 불리고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꼬미를 불러봤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박수도 쳐봤지만… 꼬미는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듯 정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부는 퇴원한 날 알게 되었다. 꼬미의 눈과 귀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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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젠트리피케이션이 덮치다


홍대 근방에서 10년 가까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지우 씨는 이즈음 월세를 두 배 가까이 올려달라는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다. 도심이 성장해 임대료가 올라,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이 외곽으로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직격으로 맞은 것이다. 꼬미의 참담한 상태를 알아차리고 가슴앓이를 하던 시기였다. 지우 씨 부부는 서둘러 카페를 이전할 곳을 찾는 동시에 꼬미의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이중고에 부딪쳤다.

그래도 부부는 굴하지 않았다. 꼬미에게 혹시 다른 문제가 없을까 싶어 사비를 털어 MRI 등 추가 검사까지 시행했다. 중성화 수술도 해주려다 이미 중성화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것도 이 때였다. TNR의 표식인 귀 커팅이 없던 꼬미는,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었던 것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고양이가 갑자기 거리 위로 던져진 상황을 떠올리니 다시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도시 속 길고양이의 생태는 나약한 고양이를 거둬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꼬미가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채 카페의 실외기 뒤에 은신한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부부는 꼬미에게서 자신들의 상황을 엿보았다. 어찌할 수 없는 풍파 속에 휘말리다 어딘가로 밀려나야만 하는 가혹한 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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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다


바쁜 연말연시를 지나 지우 씨와 홍철 씨는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실버라이닝 커피로스터스’ 카페를 열었다. 물론 꼬미도 함께였다.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벅찬 마음이 들 만했지만, 부부는 여전히 심란했다. 집에서 꼬미는 밤마다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냈다. 겨우 죽음에서 건져냈건만 꼬미의 감각과 기억은 거리에서 신음하던 그 때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부는 죄의식이 들었다. 사람도 자신의 병이 극심하면 죽음을 갈구하게 되고, 치료하는 손길을 저주하지 않는가. 어쩌면 꼬미의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닐까? 죽고자 하는 아이를 우리가 억지로 살려낸 것은 아닐까? 미안한 마음을 거둘 길이 없었다.

꼬미는 집에 있는 고양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했고, 너른 마음으로도 견디기 힘든 울음소리에 결국 카페로 자리를 옮겨 키우게 되었다. 다행히 카페는 꼬미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손님들을 귀찮게 할 이유가 없었고, 꼬미의 사정을 들은 손님들도 꼬미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배려를 보였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동네 길고양이 커뮤니티, 고양이 보호단체 등 관련 업계와 연이 닿기 시작했다. 부부는 시기를 놓쳐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보호센터의 고양이들을 카페에 들여 본격적인 임시보호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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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는 외로울까, 행복할까


카페에 들어서면 입구 바로 왼편에 고양이를 위한 널찍한 공간이 있다. 매장에 입장한 손님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건 메뉴판이 아니라 입구 앞에 놓인, 보호 중인 고양이들의 프로필이다. 세정제로 손을 씻고 신발을 갈아 신으면 고양이 세 마리가 쉬고 있는 공간에 들어가 잠시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의아해하지 말자. 거기에 꼬미는 없으니. 꼬미는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관리를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지우 씨 부부는 꼬미가 집 고양이뿐 아니라 모든 고양이들과 원만히 지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서열을 정하려는 다툼이 있는데 꼬미는 그 속에서 언제나 패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거리 위에서 상처 입은 트라우마가 맞물려 다른 고양이의 접근을 극도로 꺼리는 듯 했다. 오로지 인간의 손길만, 그것도 여전히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어렵사리 받아들이는 꼬미의 묘생 2막은, 지우 씨 부부의 걱정대로 그리 찬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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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부는 아직도 가끔씩 꼬미에게, 널 살려서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슬퍼하지만 말고 그 마음을 품고서 최대한 즐겁게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울고, 걷다가 부딪치고, 배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도 같던 꼬미는 건강과 함께 시력도 아주 조금 회복한 상태다. 앞발로 기어가듯 걷던 꼬미가 어수룩하게나마 걷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지우 씨 부부에게서 헬렌 켈러의 평생 은사로 남은 설리번의 모습이 비춰졌다. 꼬미는 정말 여전히 외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이 생겼다. 꼬미의 눈 속에 깃든 미세한 빛. 그 희망의 빛을 따라 일단 걸어가 보면 되지 않을까. 헬렌 켈러 꼬미와 설리번 부부가 끝까지 지치지 않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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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김기웅 사진 박설화 사진협조 남지우

본 기사는 <매거진C>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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