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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마을 | ② 호랑이 사라진 인왕…

  • 승인 2016-09-05 10: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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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②

호랑이 사라진 인왕산 어귀엔… 홍제동 개미마을 기행

개미마을은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다녀간 출사 명소다. 도시에서 좀체 보기 힘든 산동네의 정경과 알록달록 채색된 벽화의 거리가 그들을 불러들였다. 모여든 발걸음은 새로운 소문을 낳았다. 그들의 렌즈를 통해, 마을 안에서 사람들과 공존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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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어디에


홍제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산비탈을 오르면, 인왕산을 등지고 위치한 개미마을 꼭대기에 도착한다. 정거장 위쪽은 산 속 트래킹코스로 통하는 길목이고, 아래로는 중앙의 널찍한 길 주변으로 나지막한 집들이 들어서 있다. 곳곳에서 조우할 고양이들 생각에 두근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차, 문자 착신음이 울렸다. 폭염특보를 알리는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였다. 글자 그대로 재난에 가까운 더위. 꽤 둘러봤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지붕 위마다 고양이들이 오간다는 풍문은 전설처럼 증발했다.

“고양이? 이제 없어. 다 어디로 가버렸어.” 개미마을 정거장 바로 앞집에 거주하는 할머니가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푸념처럼 답했다. 일단 더위 때문에 인왕산 숲 속으로 피신했다가 밤이 되어야 삼삼오오 나타난다는 얘기까지는 얻어냈다. 하지만 말 이면에 느껴지는 여운이 있었다. 정거장 바로 아래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가 나온다. 그 뒤쪽은 얕은 울타리와 작은 교회. 이 주변은 고양이가 자주 출몰해 여행자들 사이에서 ‘고양이 존’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몇 마리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휘파람을 불며 준비해 간 먹이를 여기저기 놓았지만,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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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손님은 맞으러


마을 중앙에 난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오른쪽에 노인정이 보이는 언덕 길이 있다. 그 위에 정자가 있어 잠시 쉬러 오르던 차, 옆쪽 숲에서 치즈 태비 한 마리와 턱시도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한 시간을 배회하다 처음으로 만난 고양이였다.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방문기에 줄곧 등장하는 녀석들이었는데, 낯선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와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서 이 마을 고양이들이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슬쩍 엿볼 수 있었다. 애교를 부리거나 경계하지 않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원하는 곳에 가 웅크려 앉을 뿐이었으니.

두 마리가 나타난 쪽의 풀숲을 따라 오르니 발자국이 찍힌 시멘트 바닥과 근처 사람들이 음식을 배급하는 작은 사료통이 보였다. 그 안쪽 풀 사이로 덩치가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시원한 수풀 코트를 둘러 따가운 볕을 피하는 영특한 녀석. 마을을 내려오다 마을 입구 쪽 가정집 펜스 사이로 지나가는 턱시도 고양이까지, 개미마을에서 만난 고양이는 총 네 마리였다. 무더운 날에도 모습을 비춰준 고양이들에게 고마웠지만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 많던 고양이,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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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가지 벽화의 그림자


개미마을은 열심히 일하는 주민들의 모습 때문에 1983년 정식으로 붙여진 이름인데, 마을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계기가 두 번 있었다. 2009년 가을 미술 전공 학생들이 남루한 마을 곳곳에 51개의 그림을 입혔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는 용구와 딸 예승이가 살던 동네로 등장했다. 근사한 벽화와 영화의 메가 히트. 방문객은 개미처럼 꼬였다. 취재하러 간 날도 무더운 여름의 평일 낮이었지만 카메라를 들고 마을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이곳 주민들로선 일하고 쉬어온 평범한 삶의 터전이 어느 날 현란한 색을 입더니, 마당 벽돌담 틈으로 외지인의 렌즈가 불쑥 들어오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개미마을엔 아직도 많은 기초수급 대상자들이 살고 있다. 마을을 자유로이 활보하던 고양이들은 중성화 수술을 받아 한쪽 귀가 조금 잘린 채 ‘관리’를 받는다. 정말 늘어난 발걸음 때문에 이곳 고양이의 개체 수가 줄어든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페인트칠과 미디어의 조명, ‘개미마을 데이트 코스’ 포스트들이 마을 사람과 고양이의 삶에 그다지 큰 축복이 아니었단 것은 알겠다. 열심히 일하고 자유 안에서 공존하던 마을 고유의 모습은 도시인과 도시 계획에 의해 조금씩 풍화되어가는 듯했다. 동물원에 오듯 별세계를 기대하며 찾아오는 발걸음과 마주하며 고양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려움 없이 사람들 앞을 거니는 개미마을의 고양이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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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웅 사진 박설화

본 기사는 <매거진C>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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