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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앞에 드러눕는 소문난 병원 고양…

  • 승인 2016-07-07 12: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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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앞에 드러눕는 소문난 병원 고양이

한 손님이 병원에 맡긴 뒤 찾아가지 않은 어미고양이가 출산한 아기 고양이들 중, 가장 말썽쟁이였던 몽이는 결국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나에겐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아들이 하나 있는데, 어릴 때 집에서 강아지들을 길러 오히려 동물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에 놀러왔다가 고양이들을 보게 되었는데, 몽이가 병원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자 갑자기 집에서 기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집에서 기르는 것도 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집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고양이 몽이 이야기는 지난 5월호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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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선택한 거니


결정이 나자마자 아들이 병원으로 뛰어와 이동장에 고양이를 집어넣으며 이미 이름도 지어 놓았다고 ‘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행인지 혹은 몽이에겐 더 좋은 일인지, 이 녀석이 아파트로 가자마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다. 밤낮으로 우는 것은 기본이고, 방충망을 뚫고 뛰어내리려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막아야 했다. 할 수 없이 아들에게 몽이가 병원을 더 좋아하는 것 같고, 집과 병원이 가까우니 자주자주 만나러 오는 것이 몽이에게 더 좋은 일인 것 같다고 이해시키고 몽이를 다시 병원으로 데려왔다. 병원에 있던 간호사와 미용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짜식, 의리가 있단 말이야. 잘했어. 그럼, 언니들이랑 살아야지, 가긴 어딜 가!” 그렇게 몽이는 동물병원에 확실히 거처를 잡고 살게 되었다.

제 세상이 펼쳐지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몽이는 그냥 병원이 제 세상이었다. 그나마 어릴 때는 안에서 잘 놀았는데, 중성화수술을 시킨 후 성장이 끝나자 조금씩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더니 어느 날 환풍기를 뚫고 사라진 것이었다. 병원 식구들이 깜짝 놀라서 온 동네를 다 찾아다녔지만 도저히 눈에 띄지 않았다. 3일 정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환풍기 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몽이였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당시만 해도 동물 등록도 실시되기 전이라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다치지 않고 돌아와 다행이라 생각하고 목에 튼튼한 목걸이를 달아 동물병원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겨두었다.


그로부터 2년간은 몽이의 독무대였다. 손님들 중에서 몽이의 팬을 자처하시는 분들도 많아져 온갖 사료와 간식으로 왕 대접을 받았고, 미용사나 간호사 언니의 보살핌 속에 편안한 생활을 영위했다. 장난기 많은 나랑은 장난도 많이 쳤는데, 거의 그냥 개였다. 고양이의 성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의문의 전화


당시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아침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병원을 마치는 시간이 되면 주변을 정리하고 불을 끈 후 문을 잠그고 퇴근하는 나와 몽이의 기 싸움이 매일 반복되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몽이가 자꾸 병원을 나가려고 했다. 나는 몽이를 못 나가게 하면서 문을 닫고 퇴근하는데, 그러면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온다. 지나가는 사람인데 고양이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아주지를 않아 목걸이 인식표를 보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분명히 퇴근하면서 병원 안에 두고 문을 잠궜는데 어떻게….


역시, 환풍기를 뚫고 탈출했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몽이 녀석이 아예 퇴근 시간이 되면 밖으로 뛰쳐나가서 멀리 도망쳐 버렸다. 몇 번 실랑이 끝에 포기하고 집에 오면 다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온다. 지나가는 사람인데 이상한 고양이가 자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놀아달라고 드러누워 꼬리를 친다고(고양이면 기분 안 좋을 때 꼬리를 쳐야 하는 거 아니니). 처음에는 벌떡 일어나 몽이를 잡으러 뛰어갔는데 그러면 몽이는 또 줄행랑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시 집에 들어왔다가 제 시간에 출근하면 어느새 병원에서 간호사가 주는 간식을 받아먹고 있었다. 몽이가 언제 왔냐고 물으면 아침에 출근하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오면 이렇게 안내했다. 그냥 가던 길 가시라고, 그 고양이 상습범인데 자기가 심심해서 그러는 거니 말리지 마시라고….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자 동네에 소문이 나서, 아침 출근길에 재미있는 고양이가 돌아다닌다며 병원에 고양이 구경하러 오셨다고 들어오는 분들도 생겼다(……).

어느 날 아침 다시 보게 될까


이러한 소소한 행복과 일상이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다. 병원 식구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무언가 이상했다. 저녁에 밖으로 나가는 몽이를 내가 뒤에서 부르니 쏜살같이 밤 마실 나가는 뒷모습은 그대로였는데… 이른 아침에 전화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아무도 전화를 안 하네, 하며 출근을 했는데 병원에서도 몽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원 식구들 모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가끔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안 들어오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음 날도 들어오지 않자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벽보를 만들어서 이곳저곳 붙이면서 그래도 몽이가 평상시처럼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병원 손님 한 분이 벽보를 보고 전화를 주셨다. 우리 병원 앞에서 낯익은 고양이를 어떤 사람들이 아침 일찍 차에 태워서 데리고 가더라고, 그 고양이가 꼭 몽이 같더라고….


그 이후로 몽이를 볼 수는 없었다. 정말 얼마 동안은 몽이가 다시 병원에 나타나는 꿈도 꾸고, 손님이 안고 들어오는 샴 고양이를 몽이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책도 하고 병원 식구들 모두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몽이가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만을 기도한다. 혹시 알겠는가, 어느 날 아침 이른 출근길에 나를 잡는 개구쟁이 고양이를 만나게 될지….


CREDIT

애니동물병원 김명섭 원장 (blog.naver.com/anicare3375)
일러스트레이션 우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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