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길고양이의 게을러도 좋은 계절, 장수마…

  • 승인 2016-07-01 11:00:51
  •  
  • 댓글 0

길고양이의 게을러도 좋은 계절

장수마을 급식소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렸더니 주변에 건물이 하나도 없다. 낙산공원이라고 쓰인 커다란 글자를 지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구불구불한 계단길이 나온다. 매일 자리에 앉아 컴퓨터만 하던 부실한 체력에 가파른 계단을 따라 긴장하며 걷다 보니 허벅지에 알이 배겼다. 뻣뻣한 인간을 비웃는 듯 유연한 길고양이들은 사뿐히 날아오르듯 장수마을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글 지유 사진 박민성

?e4c9a9ecd533ac86f3c43f2e75e82efa_1467338

같이, 잘 살면 어떨까

길고양이들의 삶은 늘 각박해야 할까. 사람들의 땅이라고 멋대로 선을 그어놓은 탓에, 원래부터 이 땅에 살아가던 생명들은 원래의 방식을 잊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발정기에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은 늘 동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좋아도, 싫어도 고양이들은 그곳에 있다. 장수마을과 동물단체 케어에서는 좀 더 현명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운영자금을 모아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기 위해서 먼저 주민협의회의 결정을 거쳤다. 장수마을은 지리적 특성상 뒤쪽은 성곽이 둘러싸고 있고 앞쪽으로도 많은 고양이가 유입되는 곳은 아니라서, 지금은 약 50~7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머물러 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특별히 길고양이를 좋아하지도, 또 특별히 박하지도 않지만 급식소를 설치하는 데에는 모두 동의했다. 길고양이가 많이 다니는 길 위주로 현재는 약 10여 개의 급식소를 설치한 상태다. 공공기관에서가 아니라 마을 자체적으로, 그리고 주택가를 기준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장수마을 길고양이 급식소는 우리가 공존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슬쩍 제시해본다.

e4c9a9ecd533ac86f3c43f2e75e82efa_1467338

e4c9a9ecd533ac86f3c43f2e75e82efa_1467338

기존 캣맘 중심으로 운영

장수마을에도 원래 캣맘, 캣대디들은 있었다. 고양이들을 돌보고 밥을 주는 것에 대해 어디에나 그렇듯 호의적인 시각도, 반면 좋지 않은 시각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급식소 설치가 결정되고 나서는 공식적으로 기존의 캣맘, 캣대디들이 급식소를 하나씩 맡아 운영, 관리하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캣맘으로 자원하여 급식소 운영을 맡겠다고 나선 주민들도 있었다.

장수마을 내의 동네목수에서 목재 급식소를 제작해주었고, 첫 사업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추럴발란스에서 사료 500kg를 지원했다. 그 외의 비용은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충당했으며, 케어와 협력관계인 VIP 동물병원에서 중성화수술에 도움을 줄 예정이란다.

급식소는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일반인들도 누구나 사료를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가 먹을 수 없는 음식물은 물론 안 되며, 매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음식물이 방치될 염려는 없다.

e4c9a9ecd533ac86f3c43f2e75e82efa_1467338


틀림없이 좋아지는 길


장수마을은 길고양이뿐 아니라 새도 많고 식물도 많은 동네다.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 이 공간 안에서 오로지 사람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장수마을 주민들은 무심히 손을 내밀어 주었다. 또한 캣맘들 역시 동네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 함께 살아온 주민인 만큼, 자연스레 동네 안에 어우러지고 당당히 행동할 수 있게 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사람만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주민들도 대체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양이가 많이 사는 마을인 것이 아니라, 이미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 대해 개체 수 조절과 함께 서로 장기적으로 공존하는 방향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배정학 장수마을 대표와 케어의 박소연 대표는 이것이 길고양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 모두의 자연스러운 생태와 공존을 위한 것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덕분에 올해 장수마을 길고양이들의 여름은 조금 게을러져도 좋을 것 같다. 제2의 마을급식소는 어디가 될까, 좀 더 많은 생명들의 평안한 여름을 기대한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