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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다들 조용히 걷자 뜻밖의 보금자리…

  • 승인 2016-05-16 12: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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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다들 조용히 걷자
뜻밖의 보금자리 용산도서관에서

지유 사진 박민성

서울N타워가 커다랗게 보이는 용산도서관의 평일 낮 시간은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거의 찾지 않았던 도서관에 발을 디디는 것이 낯설었다. 시험기간에 부스럭부스럭 과자를 까먹으며 공부했던 기억, 책을 읽기보다는 낡은 책 더미에 둘러싸여 느릿느릿 책 냄새를 맡았던 시간, 그런 추억들이 발소리에 맞춰 울렸다. 도서관은 지역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길고양이 한 마리가 대뜸 도서관 휴게소를 차지하고 터를 잡을 줄은, 도서관도 짐작하지 못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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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혼자 여기에 있니?
겨우 태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기 고양이가 용산도서관 3층 옥외 휴게소에 처음 등장했을 때, 도서관에서는 아주 곤란했다. 5층짜리 건물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한 구조의 3층 휴게소는 위아래로 절벽이라 길고양이가 드나들기에 그리 편리한 구조라고는 할 수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양이는 도서관의 숙제처럼 등장했고, 아깽이 혼자 어쩔 줄 모르고 떨궈진 걸 보니 어미가 버리고 간 녀석이 아닐까 사람들은 추측했다. 이 동네 길고양이 인심이 그리 나쁜 건 아니지만 공공기관인 만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이 고양이에 대한 의견은 양극으로 갈렸다. 왜 고양이가 있느냐는 불평, 도서관에서 보호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 그 와중에 몇몇 도서관 이용객들이 나서서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살라는 애정을 담아 해피라고 이름을 붙이고, 잘 보이지 않는 휴게소 구석에 집을 놓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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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을 지나다
작년 여름에 처음 발견된 해피에게 닥친 첫 겨울은 너무나 길었다. 물그릇에 담아놓은 물이 두어 시간만 지나도 꽁꽁 얼어버리는 추위에 고양이 해피를 걱정하는 이용객들이 하나둘 늘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자야 하는 해피에게 집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도 했다. 도서관에서는 해피에게 이미 집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비로소 숨겨져 있던 집을 보이는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해피는 3층 휴게소의 공식 ‘금연 반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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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저리 가라며 위협하고 발을 굴렀다가도, 해피의 애교에 마음이 녹아 어느덧 다정하게 말을 건네게 된 이들도 있었다. 조용히 도서관에 머물렀다 가는 이들에게, 해피는 보드라운 휴식을 권할 줄 알았다. 어찌 보면 해피가 스스로 이곳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듯해, 용산도서관의 최석남 씨는 해피가 그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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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쉽게 변하니
도서관에서 직접 해피의 잠자리나 먹거리를 챙겨주는 최석남 씨뿐만 아니라, 해피에게 먹을 걸 사다 주고, 보호 차원에서 목걸이를 주문 제작해 걸어주고, 기꺼이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무릎을 내어주던 이들은 최근 해피가 변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초 아깽이대란에 해피도 건강한 아기고양이를 네 마리나 출산했다. 어쩜 네 마리가 다 무늬가 제각각이라 아빠가 누구일지 영 짐작이 안 간다.
야무진 엄마가 된 해피는 예전처럼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리고 금연 반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보다, 아기들을 돌보고 지키느라 바빠졌다. 좀 서운하기는 하지만 대신 아기 고양이들의 꼬물거림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그 귀여움 어필 덕분인지 요즘은 왜 고양이가 있느냐는 민원도 거의 없다고. 아기를 낳고 지킬 게 많아진 해피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이용객들도 조용히 쉼터를 이용하고 다시 하던 일을 하러 가곤 한다. 도서관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고양이를 어찌해야 하나, 난감했던 최석남 씨는 이제 해피의 아기들을 입양 보내야 하는데 정이 들어서 어떡하나, 하고 고민 중이다. 용산도서관의 고요한 쉼터는 이전보다 조금은 소란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해피와 아기 고양이들이 가만히 꼬물거리는 동안 햇볕은 당분간 포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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