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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행복한 고양이의 일생

  • 승인 2016-03-22 11: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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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행복한
고양이의 일생

애니케어 목동점 김명섭 원장 (blog.naver.com/anicare3375)
일러스트레이션 우서진

2000년의 날이 밝았다. 모두들 1999년에 세상이 멸망하리라는 세기말적인 우울함에서 벗어나서, 다가오는 새천년에는 모든일들이 잘되고 행복해지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희망이 샘솟던 시기였다. 그해 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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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첫 만남
병원 문을 열고 키는 아주 자그마하지만 온화한 미소를 띤 40대 후반 정도의 아주머님이 아주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들어오셨다. 병원에서 가까이 있는 초등학교의 선생님이신데 학교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와서 엄마를 찾아주려 했지만 여의치가 않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병원에 데리고 왔다고 하셨다.

이 녀석은 전형적인 코숏으로 흰색과 검은색이 반반씩 섞인 털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모든 게 무서운지 검은 눈망울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나를 바라보던모습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 네코와 나는 자주 만났다. 접종도 했고 고양이에 관심이 없으셨던 네코의 보호자 분도 네코의 재롱에 완전히 빠져서 자주 병원에 들러 고양이들의 습성에 대해서 문의하곤 했다. 애기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다른 평범한 엄마들처럼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길렀다. 중성화 수술도 했고 어린아이 사료에서 성묘용 사료로 바꿔 먹이는 시기도 자연스레 다가왔다. 이제는 병원에 오면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높은 곳에 올라가 간식을 달라며 울어대기도 했다.

행복한 시절이 흘러가고
몇 년이 금세 흘러갔다. 하루는 네코 어머님이 병원을 방문해서 사료와 모래를 잔뜩 주문하시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주문하시는가 여쭤봤더니 이번에 학교를 옮기면서 교감 선생님이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이사를 가게 돼서 앞으로 자주 오질 못할 것 같아 한꺼번에 주문하는 것이라고. 축하를 드리는 동시에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네코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말이다. 다시 시간은 몇 년이 더 흘렀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코 엄마였다. 하지만 안고 있는 고양이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놈은 다름 아닌 비만할 대로 비만해진 네코였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때는 내 손바닥 위에 올라갔는데 10살이 된 네코는 체중 10Kg을 자랑하는 엄청난 돼지가 되어있었고 또한 너무나 얌전해진 모습이었다(무거워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편이 좀 더 솔직한 표현이다).


오랜만이라고 인사하고 네코가 살이 많이 쪘다고 하면서 보호자와 함께 한참을 웃었다. 이제는 교장 선생님이 되어 다시 근처 학교로 발령이 나 네코의 건강상태도 확인할 겸 병원에 들르셨다고 한다. 네코의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 사료를 권해드렸고 몇 가지 건강검진을 실시했지만 대체로 건강한 상태였다.

다만 이제 네코의 나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을 지났다. 과체중으로 인해서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체중조절에 신경 쓰자고 말씀드렸다. 네코 엄마도 밝게 웃으시며 신랑과 자식들도 네코를 너무 귀여워해서 이것저것 주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답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본 네코는 행복해보였다. 정말 행복하게 늙고 있어요, 하고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었다.

어느새 노령묘가 되어
다시 시간은 흘렸다. 이제 네코의 나이는 14살이 되었다. 전화가 왔다. 네코가 요즘 잘 먹지 않는다는 걱정스런 목소리셨다. 일단 내원하시라고 말씀드리며 수화기를 놓는데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병원에 온 네코는 힘이 없는 듯했고 살이 좀 빠진 것 이외에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혈액검사와 x-ray 검사들을 진행했다. 결과는 곧 알 수 있었다. 만성신부전이었다. 신장의 기능이 천천히 조금씩 저하되는 병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고양이과 동물의 경우 비뇨기계 쪽에 질병이 많이 생긴다. 어릴 때 이러한 질병이 생기는 경우도 많이 있다. 네코의 경우 완치는 어렵지만 잘 관리하면서 생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이제부터 네코와 네코의 식구들 그리고 나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정해져 있고 가끔씩 검사를 해야 하고 예전보다 떨어진 식욕에 가족들은 마음 졸이고 안타까워했다. 전혀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면 입원을 해서 수액을 맞고, 다시 식욕이 돌아오면 퇴원해서 약을 먹고 다시 검사를 하는 어려운 과정이 계속되었다.

안녕, 이제
네코는 잘 버티어 주었다. 네코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흐르고 결국 마지막 시간이 왔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은 날이었지만 이제는 네코의 의식이 혼미하고 식욕은 없어진 지 이미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


내가 기다리는 진료실로 네코와 네코의 가족들이 모두 모인 채, 마지막을 함께할 준비를 하는 과정은 침묵이 가슴을 짓눌러 답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까지도 네코와의 이별을 슬퍼하던 네코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엄마의 품속에서 네코는 조용히 마지막 숨을 몰아쉬더니 그렇게 떠나갔다.


이렇게 네코라는 사랑받던 고양이는 인간의 시간으로 15년을 가족들과 함께하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인간에게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없다. 단지 사랑하던 가족들의 추억만 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내 기억 속에 있던 네코도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던 네코의 가족들 가슴속에는 여전히 네코가 사랑스런 눈망울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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