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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집에 나도 버려진 건가요

  • 승인 2016-03-11 09: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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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 2막

버려진 집에 나도 버려진 건가요
재개발 지역의 모카

집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떠나는 동안 그 길에서 살던 동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중에는 사람들의 터에 조심스레 몸을 기대고 살아가던 길고양이들도 있고, 가족의 품에서 벗어난 적 없다가 별안간 유기묘 처지가 된 아이들도 있었다. 재개발이 결정되고 나서, 500세대가 살던 동네에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는 집은 이제 15채가 되지 않았다. 이제 곧 부서질 그 집들이 남아 있는 동물들의 유일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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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버리고 간 고양이


노랑둥이 모카에게도 원래 가족이 있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이사를 가게 된 가족들은 모카를 이곳에 남겨두고 갔다.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길 없는 모카에게 캣맘이 밥을 챙겨주었고, 사람을 경계해본 적 없이 따를 줄만 아는 모카는 때가 되면 냥냥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고는 했다.


주변 이웃들과 다른 캣맘들에게 모카의 사연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딱 한 번, 버리고 간 가족들이 무너진 집터로 돌아와 모카를 보고 간 적이 있었다. 가족들은 모카의 이름을 일러주고는, 모카가 무너져가고 있는 집터에서 그래도 캣맘의 밥을 얻어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 여겼는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모카 역시 버려진 줄을 아는지 찾아온 가족들을 좀처럼 따르지 않고 쭈뼛거렸다. 하지만 늘 불렸던 이름만은 남아서, 캣맘은 이름을 붙여주지 않고 노랑애기야, 라고 불렀지만 모카는 자신의 이름을 더 잘 알아듣는 듯 귀를 쫑긋거렸다. 모카의 가족뿐 아니라 모두가 하나둘 떠난 이곳에는 무너지기 전이거나 무너지는 중의 집들, 철골이 튀어나오고 벽이 반쯤 떨어져 나간 집들을 보금자리 삼은 고양이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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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모카는 사람을 보면 경계하기보다는 보살펴주는 줄로 알고, 이미 사랑을 주고 받을 줄도 아는 아이였다. 어쩌다 캣맘이 못 나오는 날에나 시간이 늦어지는 날에는 늘 있던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 이 눈에 밟히던 그녀가 결국, 모카가 지내고 있던 집이 부서지기 직전에 모카와 모카의 새끼 한 마리를 함께 구조했다. 모카와 새끼고양이 베라를 구조한 바로 이틀 후에 그 집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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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공사 중인 재개발 지역에 남아 있는 고양이들은 미처 부서지는 집에서 도망나오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이제 막 출산한 고양이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깽이들은 손쓸 도리 없이 별이 되고 만다. 집을 부수는 과정에서 유리 파편이 엄청나게 나오기 때문에 다리를 다치거나 절룩이는 아이들도 생긴다. 공사하는 분들도 그때마다 안타까워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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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모카는 두세 살 정도 된 성묘로 구조 후 중성화를 마쳤다. 원래 집에서 살던 아이인데다 사람을 따르는 성격이니 어디엔가 꼭 묘연이 있지 않을까, 모카를 구조한 김경희 씨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중성화 후 다시 방사를 하려해도 보낼 곳이 없었다. 이곳은 이미 하루하루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없는 곳이되었다. 그녀도 이미 재개발을 비롯해 다양한 사연을 지닌 다섯 마리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은 많고 사람의 힘은 너무나 부족한 것 이 그저 안타깝다. 구조 후 중성화를 거치고 환경이 바뀐 탓에 놀랐는지 모카는 며칠간 집 피아노 아래에서 꼼짝하지 않고 몸을 웅크리고 있어 모카를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애교냥이, 심지어 개그냥이 기질까지 있는 성격 밝은 모카의 모습을 진짜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마, 다시 가족일 것이다.


아직 행복해도 좋을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는 모카, 버려진 철골 집이 아닌 가족이 품어주는 다정한 집이 모카의 묘생 2막에 찾아올까. 사람들이 만든 터와 사람들이 결정한 일들, 그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길 위의 고양이들에게 인연이 있기를 기다려 본다.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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