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생 2막
버려진 집에 나도 버려진 건가요
재개발 지역의 모카
집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떠나는 동안 그 길에서 살던 동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중에는 사람들의 터에 조심스레 몸을 기대고 살아가던 길고양이들도 있고, 가족의 품에서 벗어난 적 없다가 별안간 유기묘 처지가 된 아이들도 있었다. 재개발이 결정되고 나서, 500세대가 살던 동네에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는 집은 이제 15채가 되지 않았다. 이제 곧 부서질 그 집들이 남아 있는 동물들의 유일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가족이 버리고 간 고양이
노랑둥이 모카에게도 원래 가족이 있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이사를 가게 된 가족들은 모카를 이곳에 남겨두고 갔다.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길 없는 모카에게 캣맘이 밥을 챙겨주었고, 사람을 경계해본 적 없이 따를 줄만 아는 모카는 때가 되면 냥냥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고는 했다.
주변 이웃들과 다른 캣맘들에게 모카의 사연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딱 한 번, 버리고 간 가족들이 무너진 집터로 돌아와 모카를 보고 간 적이 있었다. 가족들은 모카의 이름을 일러주고는, 모카가 무너져가고 있는 집터에서 그래도 캣맘의 밥을 얻어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 여겼는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모카 역시 버려진 줄을 아는지 찾아온 가족들을 좀처럼 따르지 않고 쭈뼛거렸다. 하지만 늘 불렸던 이름만은 남아서, 캣맘은 이름을 붙여주지 않고 노랑애기야, 라고 불렀지만 모카는 자신의 이름을 더 잘 알아듣는 듯 귀를 쫑긋거렸다. 모카의 가족뿐 아니라 모두가 하나둘 떠난 이곳에는 무너지기 전이거나 무너지는 중의 집들, 철골이 튀어나오고 벽이 반쯤 떨어져 나간 집들을 보금자리 삼은 고양이들만 남았다.
구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모카는 사람을 보면 경계하기보다는 보살펴주는 줄로 알고, 이미 사랑을 주고 받을 줄도 아는 아이였다. 어쩌다 캣맘이 못 나오는 날에나 시간이 늦어지는 날에는 늘 있던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 이 눈에 밟히던 그녀가 결국, 모카가 지내고 있던 집이 부서지기 직전에 모카와 모카의 새끼 한 마리를 함께 구조했다. 모카와 새끼고양이 베라를 구조한 바로 이틀 후에 그 집이 무너졌다.
늘 공사 중인 재개발 지역에 남아 있는 고양이들은 미처 부서지는 집에서 도망나오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이제 막 출산한 고양이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깽이들은 손쓸 도리 없이 별이 되고 만다. 집을 부수는 과정에서 유리 파편이 엄청나게 나오기 때문에 다리를 다치거나 절룩이는 아이들도 생긴다. 공사하는 분들도 그때마다 안타까워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모카는 두세 살 정도 된 성묘로 구조 후 중성화를 마쳤다. 원래 집에서 살던 아이인데다 사람을 따르는 성격이니 어디엔가 꼭 묘연이 있지 않을까, 모카를 구조한 김경희 씨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중성화 후 다시 방사를 하려해도 보낼 곳이 없었다. 이곳은 이미 하루하루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없는 곳이되었다. 그녀도 이미 재개발을 비롯해 다양한 사연을 지닌 다섯 마리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은 많고 사람의 힘은 너무나 부족한 것 이 그저 안타깝다. 구조 후 중성화를 거치고 환경이 바뀐 탓에 놀랐는지 모카는 며칠간 집 피아노 아래에서 꼼짝하지 않고 몸을 웅크리고 있어 모카를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애교냥이, 심지어 개그냥이 기질까지 있는 성격 밝은 모카의 모습을 진짜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마, 다시 가족일 것이다.
아직 행복해도 좋을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는 모카, 버려진 철골 집이 아닌 가족이 품어주는 다정한 집이 모카의 묘생 2막에 찾아올까. 사람들이 만든 터와 사람들이 결정한 일들, 그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길 위의 고양이들에게 인연이 있기를 기다려 본다.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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