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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바람을 품고 이곳, 제주 바람 …

  • 승인 2016-01-12 18: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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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바람을 품고 이곳,
제주 바람 카페

글·사진 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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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오후에 도착한 제주에는 벌써 이른 어둠이 내려앉으려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바람 카페로 가는 길에도 외로운 겨울만 혼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오순도순 다정하거나 혹은 소란스럽기도 한 다른 계절에 비하면 겨울은 유난히 말이 없다. 부드러운 불빛이 새어나오는 공간과 부드러운 고양이털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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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자리에 좀 앉아도 될까?

나무 테이블 몇 개가 놓인 자그마한 카페 안에서는 모두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몇 개의 빈자리에 고양이들이 누워서 자고 있는 중이라, 늦게 들어선 사람들은 고양이 옆자리나 맞은편을 골라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러는 와중에 아기 고양이들은 오래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짧은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는 사람들 사이를 탐색하러 돌아다녔다. 테이블 위의 빈 핫초코 잔에 관심을 보이거나, 자고 있는 어미 고양이 품을 파고들며 잠을 깨우기도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멀리서 벗이 보내온 엽서의 장면 속을 찾아와 다소 설레며 차분히 이야기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이제부터 바람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의 도입부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할 참이었다. 어둠이 깊어지니 카페 창문에 달려 있는 불빛들이 더 반짝였다. 고양이들이 이곳에서 몇 세대를 거쳐 오는 내내 바람 카페는 조용히 그들의 집이자 쉼터가 되어 주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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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이끌어주는 길

이 근처를 지나던 이들 중 몇몇은 얼굴 색깔이 정확히 반은 검정, 반은 치즈인 묘한 고양이를 발견하고 홀린 듯이 따라 걷다가 바람 카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카페에 도착해 보면 의자나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하나 둘, 고양이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양이를 보고 놀랐다가도 워낙 사람을 따르는 애교 많은 성격들에 반해 결국 집사가 되어버린 사람들도 많다.


“처음부터 고양이가 많았던 건 아니에요. 2010년에 오픈하고 두 달 정도 후에 첫 고양이가 생겼어요. 원래 제가 키우던 봉자씨라는 비글 믹스 강아지를 누가 훔쳐가는 바람에 너무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봉자씨라는 똑같은 이름의 고양이를 알게 된 거예요. 앞뒤 생각도 안 하고 일단 키우기로 했고, 그렇게 얼떨결에 고양이 엄마가 되었죠.”


고양이는 또 다른 고양이를 불러온다던가, 운명처럼 만난 봉자씨를 시작으로 그렇게 고양이들이 늘어갔다. 바람 카페의 현예지 씨가 직접 산파를 해서 아기들을 받다 보니 정이 들어 벌써 4대째 고양이 가족들이 함께하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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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바람, 바람에서 공항

이곳에서의 바람은 ‘windy’이기도 하고 ‘wish’이기도 하다. 카페를 열기 전, 이 공간 자체에 반했던 그녀가 정말 자신의 ‘바람’을 이룬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바람 카페이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분들 역시 크든 작든 자신의 바람을 이루었으면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여태껏 몇 개의 바람들이 거쳐 갔을지는 알 수 없지만, 쉼을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은 틀림없이 뜻밖의 위안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꼬물거리는 고양이들이 엎치락뒤치락 소파 위에 쌓여 있는 와중에, 근심이 소복하게 가려지지 않고 배길 수야 있었을까. 자신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만 메뉴로 선보인다는 예지 씨의 드립 커피와 핫초코도 마음을 따끈하게 덥혀준다.


그래서 바람 카페는 공항을 오가기 전에 들르는 코스로 추천한다. 공항에서 바람에 들러 제주를 만날 준비를 하고, 공항에 가기 전에 바람에 들러 제주와의 차분한 작별을 나누는 것이다. 완전한 휴식을 가져본 게 언제였나 싶은 이들, 도시의 짐을 내려놓고 고요한 제주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채 하지 못하고 소란하게 도착한 이들에게 좋은 시작과 끝이 되어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어떤 바람을 품고 왔다면 고양이들의 말없는 눈빛에 속삭여두자, 배부르고 따뜻하며 사랑받고 싶은 그들의 바람은 매일매일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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