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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간을 걸어간다는 것

  • 승인 2016-01-05 16: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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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간을 걸어간다는 것

애니케어 목동점 김명섭 원장 (blog.naver.com/anicare3375)
일러스트레이션 전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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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쯤 한가한 오전 시간에 스코티시폴드의 피가 섞인 고양이 루이가 방문했다. 전형적인 장난꾸러기의 얼굴에 크고 동그란 눈은 애교가 넘쳤고, 보호자 분의 품에서 내 품으로 조금의 스스럼도 없이 안기는 것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개냥이과 고양이였다

왜 밥을 안 먹는 거니?


진료대 위와 내 손 사이를 오가며 티 없이 장난치는 루이의 모습과 달리 보호자 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한 살밖에 되지 않은 루이가 한 달 전부터 식욕이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잘 먹지를 않아서 집 근처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했고, 다시 식욕이 돌아왔다가도 또 먹지 않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일단 루이를 잘 관찰해 보니, 장난은 잘 치지만 힘이 없어서 높은 곳에 기어오르려 하지 않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드는지 쉬었다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어제 오늘은 거의 먹지 않았다는데 배가 홀쭉하지는 않았다.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좋지 않은 생각을 애써 억누르며, 보호자 분께 일단 이전에도 수액 치료를 받고 식욕이 좋아진 적이 있다고 하니 수액 치료 후에 상태를 더 관찰해보자고 설명했다. 그렇게 치료 후 집으로 돌아간 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그리고 오늘 보호자 분이 그 전보다 더 걱정스러운 얼굴로 루이와 함께 내원해 주셨다. 또 식욕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에 일단 몇 가지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기로 했다. 마침내 검사 결과가 나오고 보호자 분에게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데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다. 수의사라는 일이 이럴 때는 참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검사의 결과로는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이 의심되었다.

답을 찾지 못한 질병


전염성 복막염을 쉽게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특정 바이러스가 감염된 뒤에 시간이 지나 무서운 바이러스로 변해서 고양이의 여러 장기들을 망가뜨리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검사마저도 확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검사법이 개발된 것이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증상과 광범위한 검사를 통해 수의사들은 간접적으로 병을 진단하게 된다. 또한 아직 효과적인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백신 또한 개발되어 있지 않다. 현재 시중에 복막염 예방 백신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복막염을 막을 수 있느냐는 수의사와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다. 그렇다면 치료는? 시험적으로 몇몇 약품들이 약간의 효과를 본다는 보고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법은 개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의 불치병이나 난치병처럼, 민간요법이나 어디가 치료를 잘하고 낫게 할 수 있다더라 하는 카더라 광고나 정보에 희망을 걸어보는 분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수의사들이 공부하는 책에서도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사례는 결국 자연 치유나 오진을 했기 때문이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SF영화에서 나온 카피인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인력과 자본이 전염성 복막염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렇게 무서운 전염성 복막염을 당장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는 것이다. 주로 발병하는 고양이들은 어릴 때 대량 번식된 고양이거나 유기 고양이들이 많이 모여 있는 센터 등에서 온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가능한 고양이를 유기하지 않는 환경, 그리고 고양이를 입양할 때 유기묘를 데려오는 환경 등이 복막염을 줄일 수 있는 광범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고양이들의 전염성 복막염에 인간들의 책임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
어찌 되었건 루이의 보호자 분에게는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설명드렸고, 최대한 루이와의 예정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또한 나의 의무라 생각된다. 비록 내 능력이 아직 작고 미약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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